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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May 05. 2021

갈비뼈 골절과 아만티움

-로건처럼 잘 붙기는 하는데, 수수깡처럼 잘 부러지기도 하니까...-

전남 순천을 비롯한 지방 여행을 한 달 동안 갔다 오리라 결심한 지 3일째 아직도 평창동 홀아비의 외딴집에 죽치고 앉아있다. 첫째 날이었던 월요일은 한국 주식시장에 공매도가 재개된 날이었는데, 내가 갖고 있는 주식에서 손실이 크게 나자 낙심해서 '에라 모르겠다! 그냥 잠이나 자자!'하고 자버렸고, 둘째 날이었던 어제 화요일에는 비가 많이 내려서 슬픈 발라드 음악을 들으면서 로맨틱한 기분을 계속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셋째 날인 오늘은 날씨도 화창하고 마침 어린이 날이라서 주식시장도 휴장을 했지만 여행을 떠나지 못했다. 어젯밤에 옆구리 운동을 하다가 그만 등 쪽 갈비뼈 중 7번 8번 두 개가 골절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젯밤 늦게까지 문을 여는 광화문에 있는 정형외과를 찾아갔는데, 의사 선생님은 내 x-ray 사진을 판독하더니 골절이 된 위치를 표시해주었다. 그리고 전치 4주란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움직이기 어려울 테니 되도록 가만히 누워만 있고, 갈비뼈가 더 이상 틀어지지 않게 복대를 하고 있으란다.      


나의 허리 쪽 인대나, 갈비뼈가 쉽게 끊어지거나 골절이 된다는 건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특히 허리는 한번 비끗하면 인대가 끊어지는 건지, 고질병인 디스크가 재발되어 척추뼈가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주위의 신경을 찌르기 때문인 건 지, 1주일 이상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누워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병원용 소변통을 침대 옆에 두고 겨우 소변만 보거나, 화장실까지 걸어갈 수가 없어서 대변은 볼 수 없으니까 물 외에는 되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서 1주일 정도는 진통제로 버티는 게 일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40대에 접어든 10여 년 전부터는, 허리 통증 외에 등 쪽 갈비뼈에도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제 진료를 했던 광화문 정형외과의는 작은 충격에도 왜 이렇게 뼈에 이상이 생기는지 자세한 검사를 해보자고 말했지만 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건강검진을 할 때 골밀도 검사를 하면 늘 듣던 말이 있었다.


“골밀도가 80대 할머니처럼 약해서 쉽게 부러지거나 골절을 일으킬 수 있으니 평소에 근육 강화 훈련을 하시고 칼슘 보충제도 드셔야겠어요. 아직 40대 초반인데 이렇게 골밀도가 낮아서야...”


<뼈가 문제야~~~ ㅠㅠ >


뭐,,, 대충 이런 이유다.

피터팬 작가는 모계 쪽으로부터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은 2가지 유전적 형질을 물려받았는데, 하나는 적록색약으로 태어나서 tv 다큐멘터리 PD가 되지 못한 거였고, 다른 하나는 골다공증이 심한 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또래의 남자보다 현저하게 골밀도가 낮아 신체 주요 부위가 쉽게 탈골이 되는 거였다.   

  

특히 허리 쪽 척추가 심했는데 디스크가 재발되더라도 통증만 극심하지만 않았다면, 1998년 가을에 떠난 인도와 네팔 여행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다른 나라로 옮겨 다니면서 계속 '세계 속의 여행자'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아프기 시작하자 할 수 없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고, MBC 라디오 PD로 복직을 했었다.      


하지만 MBC 라디오 PD로 일했던 25년 동안 한시도, 인도 자이살메르 사막에서의 폭죽처럼 무수히 쏟아져 내리던 유성우의 추억과, 네팔 안나푸르나에서 이를 덜덜 부딪혔던 겨울의 푸른 밤, 그리고 중국 신장 지방에서 유목민들과 함께 지내면서 충분히 낯설지만 신비하면서도 알 수 없는 묘한 매력에 이끌렸던 문화 충격을 잊지 못하고 살아왔다.      


배낭을 메고 유럽에 머물렀던 1년 동안의 여행은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풍요로움과 지중해 바다의 아름다움, 그리고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과, 정상에 만년설을 이고 있던 씨에라네바다 산맥의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해주었고, 피터팬의 가슴속에 늘 설레는 일렁임을 간직하게 했었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머물렀던 2004년 여름의 아드리안 해를 잊을 수 없었고, 체코의 프라하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그리고, 사하라 사막에 흩어져 있던 전설 속의 고대 도시들도 언제든지 다시 찾고 싶은 장소였다.    


<크로아티아의 강렬한 태양과 코발트색이 눈부시던 아드리안 해, 그리고 중세도시 두브로브니크의 고창한 아름다움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했던 두브로브니크에 대해서는, 세르비아와의 전쟁 중에 폭격을 하겠다는 세르비아의 엄포에, 2,000여 명의 전 세계 문화인이 이 도시를 지키고자 인간 방패 띠를 만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폭격이 있었고, 지금의 두브로브니크는 무너진 성벽을 재건한 것이다>


이미 이혼을 경험했던 대학 친구들은 내게,      

1. 3년여 동안은 가족과 헤어진 상실감이 너무 클 테니,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좋은 반려자를 꼭 만날 것.

2. 쓸데없는 우울증에 빠지지 않도록 사회를 위해서 봉사 활동을 하거나, 소득도 생기면서 열심히 매진할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것.     

이 두 가지를 반드시 지키라고 조언을 해주었지만, 작년에 가슴 아픈 이혼과 함께 MBC에서 명퇴를 하고 나자, 더 이상 한국에 머무르고 싶은 생각은 1도 없었다.


게다가, 피터팬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반려자를 찾는다는 건 한국에서는 애초에 불가능했던 건 지, 결혼상담소에까지 찾아서 거금 100만 원을 내고 회원 가입을 했지만,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 상대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봉사활동에도 뜻을 두었지만,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가 허리나 갈비뼈 부위가 다시 탈골돼서, 괜히 민폐나 끼치게 되자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에 시작도 할 수 없었다.      


라디오 PD라는 전직의 경험을 살려서 새로운 직장을 얻어보려고도 했지만, 이미 나이 50이 넘어서 새로운 감각이나 아이디어라곤 전혀 내놓지 못하는, 한 물간 '퇴물 PD'를 써줄 문화미디어 기업도 없었다.    

  

그래서 일전에 브런치 올렸던 것처럼, 동유럽 코카서스 산맥의 나라 '조지아에서 와이너리 농장 VS 스페인에서 올리브 농장 VS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커피 농장' 중, 어느 하나를 해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몸이 부실한 내가 농장 운영을 잘할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은 여전하다.

<열매와 기름 등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많아서 망할 이유가 별로 없다는 올리브 농장. 스페인은 올리브 나무가 자라기에 최적의 장소라서 농사짓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얘기도 있던데... 피터팬 작가에게는 무리일까?>


만약에 외국에서 플랜테이션 농장을 할 수 없다면, 우리나라보다 생활비가 저렴한 인도나 네팔, 남미나 터키 어딘가에서 여생을 보낼 계획도 갖고 있는데, 고작 옆구리 운동을 몇 번 하다가 갈비뼈가 골절되니까 '지구별의 영원한 방랑객'으로 살겠다는 의지가 다시 꺾이면서 우울해하고 있다.


피터팬을 걱정해주는 지인들에게는 크라운 제과의 달달한 '콘치와 카라멜 콘'을 먹고 나니 기분이 좋아져서 아무렇지도 않다고, 우울증 따위는 잊은 지 오래 전이라고 카톡을 보내주었지만, 진통제를 제법 많이 삼키고 나서도 통증이 계속되니까, 이런 몸으로 도대체 뭘 할 수 있을까? 불안한 생각이 다시 밀려온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돌연변이 인간, 'X-맨 로건'이 갖고 있는 아만티움 유전자를 갖고 있는 건지, 비록 수수깡처럼 잘 부러지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보다 잘 붙기도 하는 특이 체질을 피터팬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끊어졌다가 다시 붙는 아만티움 갈비뼈를 가진 돌연변이 인간처럼, 코로나 백신 접종을 한 뒤엔, 다시 용기를 내서 '지구별의 영원한 여행자'로서의 삶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

그런 날이 코로나의 종식과 함께 어서 오기를!

 

PS. 광활한 인도 대륙에서의 코로나 확산이 심각한 수준이다.

부디 세계인이 지혜와 선의를 모아 처참한 팬데믹 국면을 해결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백신에 관한 특허권을 가진 다국적 제약사들의 특허권 포기를 포함해서. )


<달마티아 문명이 태어난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안 해를, 내년 여름에는 다시 볼 수 있게 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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