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행지로 어디 추천하고 싶으세요?

-떠나보내기 위한, 혹은 돌아기가위한 한달간의 봄 여행-

by 이안

일요일 밤에 내가 키우고 있는 100여 그루의 나무들에게 물을 충분히 줬다.

원래 1주일에 한 번씩 물을 주고 각 나무의 특성에 따라서 - 물을 좋아하는 해피트리, 녹보수, 파키라, 율마, 벤자민 등에게는 물을 충분히 주고, 반음지 식물인 고무나무에게는 적당량, 그리고 겨울 내내 웬만해선 물을 주지 않았던 여러 종의 다육이, 봄이 되면서 실외로 내놓은 30여 그루의 나무에게는 따로 물을 주지 않았다. 봄비가 충분히 내렸으므로. - 각각의 반려식물들에게 물을 주었었다.


하지만 일요일 밤에는, 여러 가지 특성을 무시하고 무조건 물을 충분히 주었다. 한 달가량 집을 비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 달 내내 물을 줄 수 없는 건 아니고, 근처에 사는 대학 동기에게 '종종 들여다 봐주겠다'라는 약속을 받아냈다.


하마도 한 달 혹은, 두 달 여의 일정으로 떠나는 지방여행이 될 것이다.

이혼 후 제주도와 순천에서 1년,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4달여를 살아냈지만 그동안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미 이혼 경험이 있는 대학 친구들은, '이혼 후 3년여 동안은 상실감이 클 테니, 아무 생각나지 않게 미친 듯이 일을 하면서 아픈 기억이 떠오르지 않게 살라'고 조언해 주었지만, 나의 경우 이혼과 함께 실직을 했기 때문에 '기억을 잊어버릴 만큼' 매진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가장 많이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다.


그 남아도는 시간에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대부문의 글 소재가, [음악 PD 피터팬의 혼자 사는 제주], [홀아비의 평창동 살아내기] 등, 거의가 나의 아픈 과거와 괴로운 현실을 반추하는 글이었다. 글을 쓰면서 치유가 된다기보다 상처를 더 심하게 도지게 해곤 했었다.

< 제주도에 머물고 있는 친구가 피터팬에게 보내준 제주의 청보리밭 >


이젠 혼자되었고, 부모님도 연로하시니까, 나중에 나도 죽으면 '이 지구별 위에는 그 누구도 나를 기억해주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내 삶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데, 과정이 너무 쓰라렸다. 그리고 지난 15개월 여 동안, 다른 일은 일절 할 수가 없었다. 매번 덧나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순간순간이 내게는 너무 큰 무게였기 때문이다.


잠시 유튜브 방송에 몸을 담아보기도 했지만, 지난 25년 동안 생활했던 [MBC 라디오 본부]와는 상황이 너무도 달랐기에, 제대로 버텨내기가 어려웠다. 이런 식으로 계속 살아도 되나? 불안하고 걱정도 되었다. 대학 친구들은 '어떤 일이던 규칙적으로 할 수 있고, 정기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시작해보라'라고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대학 친구 : 피터팬! 나도 경험을 했지만 이혼을 하고, 함께 지내던 아내와 자식들과 헤어지고 나면, 한 3년 정도는 마음을 추스르기가 힘들더라. 그러니까 그럴 때는 이런저런 우울한 생각에 빠지에 않게 바쁘게 살아야 해
피터팬 : 너는 이혼했을 때도 대학 교수였으니까 연구에 매진했을지 몰라도, 나는 이혼과 함께 실직까지 해서 몰두할 일이 없어. 요즘 남아도는 게 시간이야.
대학 친구 : 그러니까 규칙적으로 일하면서, 정기적인 소득이 생길 수 있는 어떤 일이라도 찾아봐야지!
피터팬 : 나도 생각을 안 해본건 아니야. 하지만 방송국 라디오 PD라는 게 특수 직종이라서, 지난 경험을 살려서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없더라고...
대학 친구 : 그러니까 눈높이를 낮춰야지. 방송국에서 너 잘 나갈 때 대우받던 것을 기대하면 안 되지.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고 야간 대리기사라도 뛰어봐. 너는 글을 쓰니까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 얘기도 들을 수 있잖아.
피터팬 : (서울에서 운전 경력만 25년이 넘었는데, 해보겠다고 마음먹으면 대리운전이 아니라 택시기사도 할 수 있을 테지만...). 나 운전 잘 못해. 밤에 운전하면 사고 낼 거 같아.


'쿠팡 이츠'에서 배달을 해보라는 조언도 있었는데, 나는 '이런저런 내가 할 수 없다는 이유'를 찾기 바빴다.

그 모든 핑계의 결론은 자신이 없다는 거였다. 혹은, 아직은 배가 덜 고팠거나 나태하거나.


< 당분간은 서울 평창동, 이 곳의 풍경도 그리워질 거 같아서 뒷산인 북한산에 올라 사진을 찍었다>


< 뒷산을 오르기 길에 옆집 개인, 켈리가 함께 있어 주었다. >


결국 쿠팡 이츠 배달기사던, 대리운전이던 새로운 직업을 택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돈을 버는 것과는 전혀 다른 오히려 지출을 늘려야 하는, 한~두 달 간의 일정으로 지방 여행을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여행을 통해서 지난 15개월 여동안 혼란스럽던 시간들을 이젠 좀 정리할 수 있기 바라고 있다.


이혼 전에 아내와 두 아들과 종종 가족 여행으로 떠났던 곳도 들러보고, MBC PD로 바쁘게 일하던 시절 짬짬이 연애를 하면서, 첫사랑 같은 감정을 키웠던 여행지에도 다시 들러보기로 했다. 30년도 더 전에 대학 동기들과 떠났었던 속초의 수학 여행지를 갔다 올지도 모르겠다.


여행지들 속에 함께 묻어 두었던 그 시절의 소중한 기억들이, 나름 내 삶에 충실해보려고 노력하던 나의 예전 모습을 찾게 해 줄지도 모르겠다. 오늘 밤 반려식물들에게 물을 주면서 되뇌었다.


"내가 없는 잠시 동안만 잘 버텨내면서 있어다오,

나도 그 시절 속, 그 시간 속 나와 대면하게 된다면, 다시는 좌절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어 돌아올게..."


< 필자가 키우고 있는 반려 식물들. 오늘 밤 물을 주고 나면, 당분간은 볼 수 없겠지? >


* 혹시, 브런치 독자분들께도 추억 속의 아름답던 여행지가 있으신지요?

제게 추천해주시면 제가 그곳에 들러 여행기와 함께 사진을 올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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