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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May 28. 2021

피터팬의 버려진 개 길들이기(1)

-'들개'라고 이름 붙여진 이들에 관한 이야기-

피터팬이 살고 있는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은 식물자원이 풍부하다. 

이 동네가 서울에 있는 국립공원인 북한산과 북악산 사이에 포옥 파묻혀있다 보니, 울창한 산속에서 자라는 이런저런 나무와 꽃의 씨앗들이 바람에 실려와서 자생적으로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이 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오랜 세월 이 동네에서 살아온 토박이 주민들은 조금이라도 남는 땅이 보이면 나무와 꽃을 많이 심기도 한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의 막바지인 요즘, 피터팬이 살고 있는 3층 옥탑방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마당이 제법 넓은 이웃집 – 얼마 전 jtbc 드라마 [공작 도시]의 촬영을 위해서 무려 여배우 '수애'님이 친히 납시었던- 의 담장에는 벚꽃나무와 목련 옆으로 나란히 서있는 백장미가 한창 아름답게 피어있다. 동네 입구에 있는 <부흥 떡방앗간> 옆 담장에는 다섯 손가락 모양의 단풍이 멋스럽다. 떡방앗간 맞은편 [평창터]라는 비석 - 1712년(숙종 38)에 북한산성 군량창고를 탕춘대에 설치하여 평창이라 하였다. 여기서 평창동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앞에는 '미국 제비꽃'이 피어있다.

<조선시대 역사의 현장인 [평창터]를 알리는 비석 앞에는 미국 제비꽃이 심어져 있다 >

 

은행나무는 어떠한가?

가을의 차가운 바람에 황금색으로 물들기 전의 은행나무잎들은 탐스러운 열매를 만들기 위해서 늦봄의 햇볕을 축적하고 있다. 길가의 들꽃들도 빼어나게 아름답다. 잎은 어긋나기로 자라며 깃모양으로 갈라지고, 가장자리에 예리한 톱니가 있는 '산국화'는 노란색 꽃을 피워내기 위해 한창 키높이를 올리고 있고, 얼마 전까지 하얀색 꽃을 피워냈던 장미과의 '병아리 꽃나무'에는 빨갛고 작은 열매가 동글동글 맺혀있다.      


주 골목에서 살짝 안으로 들어가는 삼겹살 식당 앞에는, 한국 특산종으로 울릉도가 원산지이면서 연한 자줏빛에 짙은 점이 박혀있는 '섬초롱꽃'이 피어있다. 동네 입구 세븐 일레븐 앞에는, 수령이 백 년은 훌쩍 넘긴 듯한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서있고, 느티나무 옆 언덕 비탈에서는 꽃말이 [절실한 사랑]인 '바위취'의 흰색 꽃이 앙증맞다. 바위취는 꽃받침이 5장, 꽃잎이 5장에다가, 잎과 줄기 전체에 붉은빛을 띤 갈색 털이 빽빽이 나고, 잎이 없는 줄기 끝에서 새싹이 난다.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라는 꽃말을 가진, 노란색 꽃잎이 4장인 '애기똥풀'도 자주 눈에 뜨이는데, 애기똥풀은 독성이 있어서 식용불가이지만 벌레와 뱀에 물렸을 때 치료제로 쓰인다. 평창동의 그 흔한 비탈길 어디에서도 굴참나무가 서있고, 그 아래서 어린 라일락이 자라고 있고, 하얀색 꽃을 피운 '쥐똥나무'도 지천이다. 흔한 잡풀 중 하나인 '별꽃'은, 바람에 실려와서 마당에 하얀색 별밭을 만들어 놓았고, 불꽃처럼 타오르는 영산홍의 아름다운 꽃잎이 찬란하고, 오동나무의 보라색 꽃은 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아 연두색 잎이 무성하다. 조금이라도 빈 땅이 보이면 어느새 '바위취'가 날아와 빼곡히 자리를 잡는 건 물론이다.      

<'절실한 사랑'이란 꽃말의 바위취. 흔한 풀이지만 작고 앙증맞은 하얀색 꽃이 아름답다. >


평창동 스타벅스 앞으로는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데, 계곡물에는 어느 곳에나 청둥오리들이 자신의 깃털 색을 뽐내며 짝짓기에 열중이고, 계곡 옆에 나 있는 작은 땅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풀과 작은 꽃들이 계곡물 사이사이로 그늘을 만들어서 그늘 안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청둥오리를 피해 숨어있다.  


6월 초여름을 맞으려는 북한산의 아랫동네 평창동의 늦봄은 이처럼 아름답지만, 요즘 우리 동네 주민들에게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정확히 말하면 걱정거리라기보다는 좀 안타까운 일인데, 들개 몇 마리가 밤마다 나타나서 어슬렁거린다는 거다.      


정확히 말하면 밤마다가 아니고, 하루에 3~4번 정도 들개 3마리가 이 동네를 한 바퀴씩 순찰하고 다니신다. 이 들개들이 목격된 것은 두 달 정도 되었는데, 처음에는 두 마리 커플이었는데 어제부터는 나머지 한 마리의 들개도 합류하면서 3마리의 무리가 되었다.   

   

또 한 가지 수정할 게 있는데, 이 동물들을 지칭하는 용어를 '들개'라고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에게는 원래의 주인이 있었으나, 어떤 이유에선지 주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외톨이가 된, 과거에는 사람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던 사랑스러운 애완견들이었을 것이다.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수컷 개는 짙은 갈색과 검은색이 섞여 있다. 그래서 외관으로만 보기에는 좀 위협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은 자상한지, 자신의 짝인 하얀색 암컷 개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두 달 전에는 하얀색 암컷 개가 심장사상충에라도 걸린 건지, 아니면 더러운 물을 먹다가 기생충에 감염된 건지 상당히 말라 있었고 털의 빛깔도 탁해 보였다.      

<검은색 수컷에 비해 몸이 훨씬 마른 하얀색 암컷 들개. 다행히 동네 주민분들이 들고양이들을 위해서 마련해둔 사료통을 발견해서 주린 배를 채우고 있다>


하지만 수컷 개는 몸이 부실해서 느리게 걷는 암컷 개를 늘 보호하며 다녔다. 앞장서 걷다 가도, 하얀 개가 늦게 오면 돌아가서 암컷 개와 함께 걸었다. 이런 모습은 피터팬 말고도 동네 갤러리에 계시던 지인 화가 분도 몇 번 보셨는데,

“어머, 어머, 검정개의 사랑이 지극정성이네...”


라며 쯧쯧 혀를 차기도 했다.   

   

검정개와 하얀 개 커플은 항상 평창 파출소 맞은편으로 뻗어있는, 세븐 일레븐과 출판사 [열린 책들]의 자회사인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건물 사잇길을 하루에 3~4번 정도 오가는데, 이 길을 통해서 뒤편 언덕길로 올랐다가 다른 동네로 이동을 한다. 같은 자리에서 배회를 하면 동네 개들이 사납게 짖어대기 때문에,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늘 이동을 한다.   


<검은색 수컷 들개는 보기에는 좀 무섭게도 생겼지만, 암컷에게 항상 사료를 양보한다. 암컷이 사료통을 다 비울 때까지 뒤에서 믿음직스럽게 지켜준다. >


하루 종일 이동을 하면서 제대로 먹지를 못하면, 금세 지치거나 굶주림에 병이 들 거 같았다. 

그리고 상황이 더 악화되면 최악의 경우에 사람한테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더구나 이들 커플 개들이 다니는 길은 평창 초등학교와 각종 학원으로 이어지는 통학로이기도 해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도 혼자 걸어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어린아이들은 겁을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굶주림에 지친 들개들이 위협적인 존재로 변하게 될까 봐 피터팬은 주인 없는 개들에게 먹일 육포를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오랜 기간 동안 반려동물 전문점을 운영했던 대학 동기의 말로는, 이미 야생화된 개들은 사람들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먹이를 줘도 먹지 않을 거라고도 했다.      


“일단 편의점에서 육포 같은 걸 사서, 네가 주는 먹이를 받아먹나 살펴봐봐
만약에 성공한다면 다음에는 사료를 먹일 수도 있을 거야.
그런데 그 개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물이야.
사람의 손을 벗어난 개들은 신선한 물을 구할 방법이 없으니까
구정물 같은 걸 먹고 감염돼서 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거든”    
 


---피터팬의 버려진 개 길들이기 (2)에서 계속---


<참고로 우리 동네에서 가장 예쁜 댕댕이중 하나인 사모예드 숙이(암컷). 주인에게 사랑을 받는 개들은 이렇게 평화로운 눈을 갖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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