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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Jul 05. 2021

누가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가 ?

윤석열의 무지와 조선일보의 역사 왜곡을 비판한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한국 현대사에 관한 발언이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조선일보는 물 만난 물고기 마냥 신이 났다. 우선 이 문제의 사실관계를 따져보자.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1일 경북 안동의 이육사문학관을 방문해서,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 정부 수립 단계와는 좀 달라 친일 청산을 못하고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그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나.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조선일보가 발끈했다. "친일세력"이란 말은 일제로부터 대한민국이 해방된 이후, 지난 70년 역사에서 조선일보가 가장 두려워 해왔던 말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자신들의 친일행위가 부끄럽기 때문일 거다.
 
전국 57개의 시민단체로 구성된 시민행동은 2020년 1월부터, “조선일보 100년 최악의 보도” 10선을 전시했는데, 그중 첫째가 일제 왕실에 대한 찬양 기사다. 조선일보는 1938년부터 1월 1일이면 1면에서, ‘천황폐하의 어성덕(임금의 덕을 높여 부르는 말)’, ‘천황폐하의 어위덕(임금의 위엄과 덕)’ 등의 제목 아래, 일왕 부부 사진을 대대적으로 실었다. 둘째도 친일의 증거인 일왕 생일 축하다. 일왕 생일인 4월 29일이면 1면에 ‘봉축 천장 가절’ 사설로 충성을 맹세했다. 셋째는 윤봉길 의사 의거를 ‘흉악한 행동’으로 칭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1938년부터 1월 1일이면 1면에 ‘천황폐하의 어성덕’ ‘천황폐하의 어위덕’ 등 제목 아래 일왕 부부 사진을 대대적으로 실었다. 출처 : 시민행동 >

윤석열 전 총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광복회장의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황당무계한 망언을 집권세력의 차기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지사가 이어받았다”며 “셀프 역사 왜곡, 절대 용납할 수 없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7월 3일 자 사설에서, “대한민국 초대 정부의 이승만은 반일은 지나칠 정도였다. 초대 내각 대부분이 항일 인사로 채워졌다. 대한민국 초대 정부가 일부 친일 인사를 실무급 관료로 기용한 것은 사실이다. 신생 국가로서 불가피한 일이었다. 2차 대전 후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이 우리를 일제로부터 해방시켰는데 미군이 해방군이지 어떻게 점령군인가?”라고 적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윤 전 총장의 발언에 대해서,  "북한 진주 소련군이 해방군이라고 생각한 일도 없고 그렇게 표현한 바도 없다", "또 미군의 포고령에도 점령군임이 명시되어 있고, 윤 전 총장이 숭상하실 이승만 대통령, 내가 존경하는 김대중 대통령도 점령군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했을 뿐 아니라", "독립을 방해하고 독립운동을 탄압하며 일제에 부역하던 세력이 청산은커녕 새로 출발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주요 요직을 차지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반민특위도 이들에 의해 강제 해산되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럼, 이재명 vs <윤석열 그리고 조선일보> 누구의 말이 맞을까?      


1. 일제로부터 해방된 남한에 들어온 미군은 점령군이었나? -> 이건 이재명 지사의 말이 맞다.


1949년 9월 하지 장군이 이끈 미군이 한국에 들어올 때 공식 명칭이 점령군이었다. 맥아더 장군의 포고문에서도 “점령”이라는 표현을 4번이나 쓰고 있다. (이재명 지사를 공격하는 측은 단지 미군의 포고령에 담긴 표현이 “점령”이었을 뿐, 미군의 행위는 점령군의 행동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후술 하는 미군정의 친일파에 관한 정책을 살펴보고 독자 스스로 판단해보시길 바란다. )


당시에 태평양 미 육군 총사령부는 포고 제1호에서, “점령군에 대하여 반항 행동을 하거나 질서 보안을 교란하는 행위를 자는 용서 없이 엄벌에 처함”이라고 경고했었다. 아울러 패전국인 일본에 대해서는 간접 통치를 한 반면, 남한에는 미군정을 설치해서 직접 통치를 했다.  


<출처 : 2021년 7월 5일 자 한겨레 신문 >

    

2.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쓴, 해방 후 친일세력에 대한 주장은 맞나? --> 이건 조선일보의 의도적인 역사 왜곡이다. 일부의 사실만을 들어서 자신들의 주장에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1) 일부 친일 인사만을 기용했다? 

"해방 후 한국에서 미군정 사령관이었던 하지 장군이 이끈 <24군단>의 매 그린 대령이 브리핑한 자료에 따르면, 미군은 한국인을 괴롭힌 일본인 관리들을 상당기간 그대로 근무하게 했다. 또한 친일 행위가 명백한 한국인 관리와 경찰을 그대로 근무하게 했고, 일제의 통치 기구도 대부분 존속시켰다. 이와 같은 미군정의 현상유지 정책으로 인해서, 해방 직후 잠시 숨죽였던 친일파 세력들이 다시 득세를 할 수 있었고, 해방 후 한국 정국에서는 혼란과 좌우 갈등이 더욱 심해지게 된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국 현대사에 관한 논문으로 서울대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 현대사 전문가)-


해방 후 남한에서 친일 경력의 경찰 수는 다음과 같다. 경사(806명, 83%), 경감(104명, 75%), 총경(25명, 83%), 도경국장(8명, 80%), 관구장(5명, 63%), 총감(1명, 100%). 조선일보가 총애하는 미군정이 직접 브리핑한 공식 자료이니만큼 조선일보가 모를 리 없을 텐데, 7월 3일 자 사설에서 해방 후에, “일부” 친일인사를 기용했다는 주장은 명백한 역사왜곡이다. 한글에서는 70~80%의 수치를 지칭할 때 “대다수”라고 하지, “일부”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2) 이승만은 철저한 반일(反日)주의자였다? 

조선일보의 이 주장이 맞기 위해서는, 1945년 10월에 귀국한 후에 이승만이 보인 행적에 대한 많은 거짓말을 보태야 한다.  당시 남한에는 많은 정당이 난립했지만 특히 한민당이 위세를 떨쳤는데, 한민당은 검찰과 재판부의 요직뿐만 아니라 도지사, 군수 등 지방 관직도 많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한민당이 위세를 떨칠 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보면, 이재명 지사가 말한 “깨끗하지 못하게 나라가 출발했다”는 주장을 이해할 수 있는데, 한민당은 일제강점기에 이어서, 70% 이상이 그대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경찰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이승만이 철저한 반일 주의자였다 “ 주장하는 것은, 해방 후 이승만이 한민당의 친일파를 정치적 기반으로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명백히 왜곡하고 있다.  

    

게다가 친일파를 단죄하기 위해서 제헌국회에서 통과시킨 반민법(반민족 행위 처벌법)의 반민특위에 대해서, 이승만이 ”(친일) 경찰을 체포하여 경찰의 동요를 일으킴은 치안의 혼란을 조장하는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비난한 행위, 아울러, 1949년 6월 6일 친일파였던 중부경찰서장이 경찰을 이끌고 반민특위를 습격한 것에 대해서, 이승만 대통령이 ”자신이 습격을 지시했다 “고 외신에게 밝힌 것에 대해서도, 조선일보는 설명을 해야 한다. 결국 간부 대다수가 친일파였던 경찰의 <6.6 반민특위 습격 사건>으로 우리나라에서 친일파에 대한 처단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조선일보는 또한 같은 날짜 사설에서, "2차대 후 독일도 상황이 비슷했다"라고 적었으나, 이 역시 의도적인 역사왜곡이다. 2차 대전 후에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독일 법조계의 상당수 판사들이, 히틀러 통치하에서도 판사였던 사람들임은 맞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와 달리, 이후 독일 정부는 끊임없이 나치 세력을 처단해왔고 아직도 그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승만 정부의 정통성에 대해서도 줄기차게 주장을 하는데,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 1948년 5월 10일에 치러진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둘러싼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지면이 짧아 이에 대한 논의는 다음으로 미룬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총장 그리고 조선일보의 논쟁을 지켜보면서 오늘 <음악이 흐르는 풍경>에서 듣고 싶은 노래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 4집에 실린 [끝나지 않는 노래]이다. 미디엄 템포에 듣기 편한 익숙한 멜로디라서 마치 사랑노래 같지만, 필자에게는 "거짓을 이기려는 진실의 싸움은, 느긋하게 하지만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는 것과도 같다"는 깨우침을 주는 노래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 의병에 관한 사진 중 거의 유일한 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기자 매킨지가 찍은 의병 사진을 표지 사진으로 하고 있는 노찾사 4집. [끝나지 않는 노래]는 노찾사 출신의 스타 가수들인 김광석, 안치환, 권진원 등이 한 소절씩 합창 형식으로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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