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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Jul 15. 2021

극한 더위와 제주바다, 그리고...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 같은, 무더위의 한가운데서-

작년 여름에 제주바다에서 살았다. 

갑자기 닥친 명퇴 등으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혼자 쓸쓸히 제주도로 내려간 건 작년 2월이었다. 처음에는 정말로 딱 한 달만 살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서울에 올라가더라도 더 이상 다닐 직장도 없다는 상실감에 제주도에 아예 눌러앉기로 했던 거다.     

 

2월의 매섭던 바닷바람, 3월의 유채꽃과 청보리의 물결, 그리고 4월부터 시작된 울창한 제주도 나무들의 푸릇푸릇한 생명력은 6월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7월의 무더위가 시작되고, 에어컨 없이 제주도에서 여름을 보낸다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래도 천성이 워낙 게으른 탓에, 연세살이(한해살이) 집에 설치되어 있던 에어컨의 필터를 청소하기 싫어서, 선풍기 하나로 7~8월 열대우림 같던 제주도의 여름을 버텨냈다.      


대신 한낮의 해가 머리 꼭대기까지 솟아오르고, 방안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등 뒤로 전기밥솥의 증기 같은 뜨거운 땀이 흘러내릴 때면, 무작정 표선 해수욕장으로 나갔다. 그렇다고 시원한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수영을 즐긴 것도 아니었다. 사실 제주도에서 작년 한 해 동안 1년을 살았지만, 바닷물에 처음으로 몸을 담근 건 9월이 되어서였다.


그전까지는 코로나 방역 등의 문제로 해수욕장에도 어느 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있었고, 통제가 좀 여유로와진 상황에서는, "바다에는 뭐, 언제라도 갈 수 있는데 뭐..." 하는 심정으로 딱히 수영을 즐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서울에 살 때 15년 가까이 여의도에 살았지만, 여의도 한강 고수부지에 나간 건,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았던 것과 같은 이유였다.


무언가가 늘 곁에 있다는 건 사람을 이토록 무심하게 만든다.(나의 이런 성향을 보면 언제나 곁에 있었던 가족의 소중함도 모르고 살아왔기에 결국 가족의 미움을 받았던 듯도 하다! )      


<하늘이 쨍~하게 빛나면, 두 눈이 찡~하도록 눈부시던 제주의 여름 바다 >


작년 여름 제주바다의 기억을 새삼스레 떠올리는 건, 이번 주부터 서울에서도 극한 더위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어제도 눈을 비비고 일어났던 오전 9시부터 벌써 30도가 넘게 기온이 오르더니, 새벽 2시가 다 되어가는 지금도 29도에서 28도를 오르락 내리락이다.      


피터팬 PD가 지금 살고 있는 서울 평창동 월세집은, 단독주택의 3층에 있는 작은 공간인데 오전 11부터 집의 외벽으로부터 뜨거운 열기가 전달되기 시작해서 오후 3시를 넘기면 내벽이 뜨끈뜨끈 해지는 게, 마치 달걀을 하나 깨뜨려 놓으면 금세 프라이가 될 듯하다. 하지만 서울 집에도 에어컨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정확히 말하면 에어컨이 없는 건 아니고, 올봄에 [당근 마켓]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삼성 에어컨을 아직도 실외기와 연결 하지 않았다. 한 여름에 구슬땀을 흘리실 설치기사 아저씨를 부르는 게 미안하기도 했고, 에어컨이란 게 중독성이 강해서 한번 틀기 시작하면 7월~8월 내내 계속 틀어야 될 거 같은데, 어마 무시할 전기료가 감당이 되지 않을 거 같았다.      

< 아! 여름 >


그 대신 제주도에서 선풍기 한 대로 작년의 무덥던 7월과 8월을 버틴 것처럼, 서울에서도 중국산 저가 선풍기를 한 대 구입했다. 무더위를 쫒고자 밤이고 낮이고 열심히 돌려대고 있는데, 시원한 바람이라기보다는 제법 뜨뜻한 바람이 나와서 마치 헤어드라이기를 틀어 놓은 거 같다. 젖은 머리 말리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이처럼 새벽까지 등 뒤로 ‘축구공 만한 크기의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여름엔, 인도에서 머물렀던 3개월의 무덥던 더위가 생각난다. 물론 에어컨 같은 건 당연히 없었고, 겨울이었지만 한낮의 기온이 40도가 넘는 건 예사였다. 열대지방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천장에 붙은 날개가 제법 컸던 선풍기가 돌아가는 숙소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도시의 성벽을 모두 핑크색으로 칠해서 '핑크시티'라고도 불리는 인도의 서북부 사막에 세워진 자이푸르에 머물 때는, 사막에서 사우나의 증기 같은 바람이 훅 하고 한번 불어오면, 숨이 턱 막히면서 열사병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휘청이며 현기증 나는 시간들을 버텨야 했다.      


이런 극한 더위에도 사람들마다 다 제 살길을 찾아갈 나름의 방법은 있는 건지, 아니면 무더위에도 생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는 건지, 아무튼 정신줄을 놓지 않기 위해서 나름의 '루틴' 같은 걸 찾았다.  

    

제주도에서는 오후 내내 누적된 더위가 폭발하기 직전인 오후 4시가 되면, 무조건 표선해수욕장에서 가장 럭셔리한 카페인 [코코띠에]로 차를 몰아, 오후 내내 달궈진 몸의 온도를 식혀댔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표선면 코코띠에 카페에 앉아서, 제일 비싼 8,000원짜리 수박주스를 하나 시켜서 마시면, 에이콘 없이 하루를 보낸 나의 고생에 대한 보상이 다 되는 듯했다.      


<제주도 표선 해수욕장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코코띠에]의 앞바다와 뒤로 보이는 한라산의 낙조 >


그리고 카페 창밖으로 눈이 시리도록 푸른 표선해수욕장의 바다와, 하늘거리는 뭉게구름을 바라볼 때면, 더위가 다 날아갈 거 같은 기분이 들...... 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바다 옆에 사니까 너무 습해서, 정말 너~~~~~~무 습해서, 거위털 겨울 파커에 곰팡이가 덕지덕지 생겨나는 것에 짜증만 났다. (당시에 겨울 외투들이 다 망가지는 것을 막으려고 드라이클리닝을 하러 세탁소에 자주 들렀었는데, 도대체 그 더운 곳에서 세탁소 사장님들은 어떻게 무더운 여름을 견디시는지.. 진짜루~ 리스펙!!!!)     


실외에서 10분만 돌아다녀도 현기증을 느끼면서 체력 약한 사람들이 픽픽 쓰러져 나가던 인도 자이푸르의 여름도, 나름의 루틴으로 견뎌낼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석가모니가 했던 깊은 명상을 따라 하면서 마인트 컨트롤을 하는 건데, 이런 식이다.      

“인도를 떠나서 한국에 도착하는 첫날, [배스킨 떨이원]으로 직행하고야
말테닷!! 그리고 딸기 아이스크림을 주문한 다음, 3박 4일 동안 먹을 것이다.
먹고야 말테야. 정말 먹을 거야. 진짜라고!!!”    

  

사람의 의지는 생각보다 강해서 이렇게 고급진 명상을 하고 나면, 3초 정도쯤은 무더위를 잊을 수 있다. 그럼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날 거 같은 현기증이 잠시 멈춘다. 그리고 3초 뒤에 다시 김이 피어오르면, 이번엔 죠스바, 메로나, 캔디바, 수박바, 보석바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이스크림의 브랜드들을 스크류바처럼 베베 꼬아 연달아 연상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무더위의 현기증으로 인한 발작 증상을 계속 3초씩 미루다 보면, 어느덧 저녁 무렵에 지는 석양 사이로 핑크빛 자이푸르의 성벽이 붉게 물들어 가는 걸 볼 수 있었고, 그런 순간은 황홀경에 무아지경을 느낄 수 있었다.     

 

“석가모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려 했던, [절대 무아]의 경지가
바로 이것이구나.
역시 명상할 때는 아이스크림을 떠올리는 게 최고였어!!!”     


<인도 대륙의 서북부에 위치한 라자스탄주의 주도 자이푸르(Jaipur). 핑크시티라고도 불리는 아름다운 성벽으로 유명하다 >


올여름엔 이상하게도 한여름의 무더위를 잠시나마 식혀주던 장마는, '누구 코에 붙이라고!' 다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 같은 무더위가 에어컨 없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무르익는 더위가 봉숭아라면 따서 먹기라도 하겠지만, 이건 함부로 먹다가는 목구멍이 데일 듯하여 먹지도 못하고, 그저 온몸의 끈적대는 땀으로 견뎌낼 뿐이다.      


불타듯 맹렬했던 인도 사막의 무더위와, 한증탕처럼 습하던 제주도의 무더위도 견뎌냈던 피터팬 PD인데, '서울 더위쯤이야....' 라며 냉정을 찾고 싶지만, 더위와의 처절한 사투에서 내가 이길 것 같은 기미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저 다만, 

잠시나마 청량감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을 크게 들으면서 유쾌한 마음을 가져보려고 노력해보는 것이 전부다. 애정 하는 [블랙핑크] 동생들의 메들리나, 어여쁜 [트와이스] 조카들의 신나는 댄스곡이면 더욱 좋다. 한낮 내내 달궈진 월세 옥탑방의 열기는 새벽 2~3시가 넘어도 좀처럼 식지 않으니까, 밖으로 나가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 달밤 아래서 맞는 여름의 새벽은 더욱 시원해진다. 그리고 인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명상을 해보는 거다.      


“코로나가 끝나면 알래스카로 이민 갈 거야!! 아니야 아이슬란드가 더 춥대~~
아니다. 대기권 밖으로 갈 거야. 마블 영화 [어벤저스] 보니까 우주공간에서는
3초 만에 토르 같은 히어로도 꽁꽁 얼어버리더라고~~~”   

   

그래서 오늘 음악이 흐르는 풍경에서 듣고 싶은 음악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여름의 무더위를 얼려줄 블랙핑크 동생들의 [아이스크림]이다.


<사랑스러운 걸그룹 블랙핑크의 [아이스크림]은, 무덥던 2020년 8월에 발표되었는데, 미국의 팝스타 셀레나 고메즈(Selena Gomez)가 콜라보를 해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아~ 정말 덥다.
알래스카에서 딸기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만 종일 보고 싶은,
절대 더위의 중심에 우리는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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