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안 Jul 30. 2021

서울의 문화생활 VS 제주도의 문화생활

-아이유와도 절친!, 잘 나가는 음악 PD였던사람이라고!-

필자는 지난 25년 동안, 서울 MBC 라디오에서 프로그램 제작 PD로 생활했었다. MBC 라디오에는 AM과 FM 두 채널에 인기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필자가 재직하는 동안 진행자로 있었던(혹은 아직도 진행자인) 사람들의 이름을 몇몇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배철수/이문세/양희은/유희열/이적/윤종신/이소라(가수)/손석희/이종환/신해철/타블로/최유라(방송인)/태연/성시경/강석/김혜영/윤도현/배유정(영화음악)/김창완(산울림)/김원희/김신영/박경림/옥주현(핑클)/김이나(작사가)....... ( X 100배 ~~ )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들의 목소리를 라디오를 통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필자 역시 위에 언급된 라디오 진행자 중,
배철수/이소라/손석희/타블로/윤종신/박경림/김이나........( X 10배 ~) 등의
진행자들과 매일 한 공간에서 2시간 이상씩 PD와 DJ의 자격으로 만났고
서로의 은밀한 사생활(?)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고
음악을 함께 들었고, 대한민국의 오늘에 대해서 얘기했었다.     


지금이야 MBC 라디오의 영향력이나 청취율이 바닥이지만, 필자가 근무할 때만 해도 MBC 라디오의 시장 점유율은 전체 라디오 시장에서 60%가 넘었기 때문에, 한국의 정치, 시사, 문화, 음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했었다.      


필자에 관한 자랑 같아서 좀 재수 없게 들릴 수 있겠지만, 지난 25년 동안 MBC 라디오에 근무하면서 국내 가요 차트 20위권 밖의 뮤지션들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었다. MBC 라디오에는 20위권 안에 들었던 최고의 인기 뮤지션들만을 초대하기에도 프로그램이 부족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오늘 HOT를 만났다면, 내일은 젝스키스를 만났고, 오늘 에픽하이의 타블로로 만났다면, 내일은 드렁큰타이거의 타이거 JK를 초대했고, 오늘 토이의 유희열을 봤다면, 내일은 박효신이나 성시경 혹은 이적을 만날 수 있던 시절이었다.      


사랑스러운 걸그룹 동생들은 말해서 무엇하랴? 오늘 소녀시대를 만났다면, 내일은 원더걸스를 만났고 오후에 샤이니가 출연했다면, 밤에는 엑소가 출연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을 보내던 꿈같은 시간들 속에서는 가장 핫한 문화의 트렌드에서 내가 소외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다. 늘 대한민국의 대중문화 혹은 고급문화(문화, 정보 프로그램의 담당 PD였을 당시)의 트렌드 세터로 살아왔기에 문화 관련 가장 중요한 정보와 인물의 중심에 있었다.      


넘쳐나는 문화의 혜택 속에서 하루 24시간이 부족해서, 오늘은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어떤 문화 콘텐츠로

2시간 동안의 생방송을 채워야 할까? 행복한 고민을 매일 했었다.      


하지만 작년 2월 제주도로 내려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던 나의 아내가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면서, 헤어질 것을 요구했을 때, 이미 내 인생에서 벼랑길 같은 급추락은 예정되어 있었던 거 같다.      


아내와 헤어지게 된다면 더 이상은 서울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을 거 같아서, 충동적으로 라디오 PD직에서 사퇴를 하고 회사도 그만두기로 작정했었다. 어쩌면 매일매일의 생방송이라는 긴장 속에서, 유명 스타 연예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게 힘에 부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우연히 인터넷 뉴스 보니까, “이혼한 축구 국가대표 송종국 산에서 약초 캔다”라는 기사가 있던데, 나 역시 늘 가슴속에서는 ‘나도 자연인이다~~!’라는 외침이 있었고, 아내와 헤어지게 되었으니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외딴곳으로 가서 살리라 결심했었다.     


< 2021년 7월 제주도 용담 해안도로. 사진출처 : 제주 MBC 교양 PD 김지은 처자 >


그래서 2020년 2월의 마지막 날 미지의 땅에 도착해서 눈을 떠보니, 피터팬 PD(필자의 예명)는 제주도 성산읍 앞바다에 서 있었다. 그리고 80대 제주 토박이 노부부가 내게 오셔서 물으셨다.     

 

제주 할머니 : 니, 정치 좀 아나?

피터팬 : 예? 정... 정치요? 저로 말씀드릴 거 같으면 서울 MBC에서 손석희 선배님하고 [시선집중]이라는 최고의 시사 프로그램의 총연출로....

제주 할머니 :됐어~ 됐고. 그럼 니 '당'중에서 가장 센 '당'이 뭔지 아나?

피터팬 : 예? 당.. 당이요? 지금은 민주당이 집권당이니까...

제주 할머니 : 이러 바보 멍청이. 당에서 제일 센 당은 '괸당'이다 '괸당'!

피터팬 : 네? 괴... 괴? 뭐요?  

   

제주 하르방 : 니 그렇게 많던 제주도 구렁이가 왜 다 없어졌는지 아나?

피터팬 : 예? 구... 구렁이요? 구렁이는... 뱀의 사촌... 그거 말씀하시는 거죠?

제주 하르방 : 이런 바보 멍청이. 니 서울에서 뭘 했길래, 이리 아는 게 하나도 없냐?

피터팬 : 예? 제가 나름 서울에서 잘 나가던 가요 PD 중에서도, 스타 PD로, 저로 말씀드리자면 초절정의 인가가수 아이유로부터 존경을 받는...


제주 하르방 : 됐어~ 됐고. 구렁이가 왜 없어졌냐면,,,6.25 때 실향민들이 다 제주도로 왔거든. 그때 실향민들한테 뭐가 있어? 아무것도 없잖아? 그래서 제주도 구렁이를 다 잡아먹었다. 알겠나?

피터팬 : 네? 저는 구렁이보다는,,, 소녀시대와 아이유 그리고 방탄소년단과 동거 동락하면서....

할머니 : 이런 바보. 니 저게 고구마 잎인지 콩잎인지 아나?

피터팬 : 네? 상... 상추 같아 보이는데요..

하르방, 할머니 : 깔깔깔깔 바보 바보.. 니 서울 바보 아이가?     


피터팬 PD의 눈앞에 느닷없이 펼쳐진 제주도 1년살이는, 이렇게 난데없는 질문으로 시작됐다.

그래도 나름 한국가요계 꿰뚫고 있으며, 많은 스타들과의 인터뷰를 직접 섭외해서 생방송으로 성공시켰으며... 수많은 뮤지션들과 공개방송을 진행했던.... 따위의 경력은 제주도 살이에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다.


여름에 제주 숲에 들어가면 수시로 나타난다는 뱀과 각종 식물에 관한 지식, 그리고 제주도 특유의 문화

(괸당: 괸당은 제주말로 자기 사람이란 뜻이다. 쉽게 풀이해서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건데, 원희룡 제주지사가 사람은 좀 띨띨해도 도지사로 뽑힌 건, 제주사람이라서 됐다는 게 제주도 80년 토박이 할아버지의 설명이다. 제주도에서는 민주당/국힘당 등의 온갖 당이 필요 없고, '괸당' 즉 우리 편이 최고라는 것이다)에 적응하는 게 훨씬 더 중요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광화문과 경복궁을 찾아 왕궁의 향기 속을 걷고,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
문화의 향기를 맡았으며,
주중에는 인기톱스타들과 함께 생활했고,
주말이면 콘서트장을 찾거나
갤러리를 찾아서 미술작품을 감상하던
나의 서울 문화생활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이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는 여의도 CGV가 걸어갈 수 있는, 엎어지며 코 닿을 거리에 있었는데,

제주도에서는 1시간 동안 차를 몰아서 제주시로 나아가야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었다.      


<제주도 여름 바다에 점점이 박힌 저녁 불빛들이 어둠 속에서 빛나기 시작하고 있다 >


---------(피터팬 PD의 서울생활 VS 제주생활 내일 계속)------

작가의 이전글 왜 인도로 떠났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