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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Jul 31. 2021

26세기의 성냥팔이 소녀

[* 이 글은 브런치에서 진행 중인 [작가와 함께하는 다시 쓰는 안데르센 동화 공모전]에 출품할 목적으로 쓰였습니다. 동화이니 만큼 내용이 유치하더라고 너무 나무라지 마시고 애정을 갖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25세기. 

[지구별 과학부]는 우리 은하계 최초 물질 생성의 비밀을 밝혀내게 된다. 

이로써 인류에게는 무엇이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가 생긴 것이다. 

최초 물질 생성의 원리를 밝혀냄으로써 심지어 상상 속의 그 어떤 것이라도 

현실에서 살아 숨 쉬게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건 빅뱅을 통해서 최초 우주가 만들어진 것처럼 

상상 속의 물체를 현실로 불러내려면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필요했다.

태양보다 백 만배 큰 초신성이 폭발할 때 만들어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에너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구별 정치부]는, 서기 2500년, 즉 26세기 새해 첫날, 

지구별에서 가장 가까운 초신성이 폭발하는 날에 맞춰, 상상 속의 물체를 만들어 내기로 결정했다. 

은하계에서 초신성은 백 년에 한 번 폭발하기 때문에, 

인류는 백 년에 한 번 꼴로 상상 속의 물체를 현실로 소환해내는 마법을 부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또다시 문제가 생겼다. [지구별 언론 조사부]에 따르면, 

백명의 지구별 인구 중 - 25세기 지구별에서는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인해 인구가 급격히 감소했고, 

25세기에는 단지 백 명의 어린아이만이 생존하게 되었다 – 

지구별의 주인이 된 어린아이들은 동화 속 주인공을 현실로 불러내자는 주장 했는데, 

백명의 아이들 마음속에는 저마다 원하는 주인공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별 선거부]는 인류 투표를 하기로 결정했고, 

마침내 투표 결과 인류 역사상 최초로 현실로 소환될 동화 속 인물은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 속, 

가여운 소녀로 정해지게 되었다.      


지구별의 많은 어린이들이 가장 돕고 싶은 동화 속 주인공으로 성냥팔이 소녀를 꼽았고, 

그 소녀를 현실로 불러낸다면 소녀에게 따뜻한 잠자리와 맛있는 음식을 나눠주고, 

다정한 친구도 되어주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별 정치부]는 또다시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는데 

동화 속 소녀를 현실로 불러낸다 하더라도 소녀는 현실 속에서 하루밖에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는 추운 겨울날 밤 성냥을 켜고 꽁꽁 언 몸을 겨우 녹이며, 

꿈속에서도 그리던 할머니와 만나게 되지만, 

바로 그날 밤 할머니와 함께 하늘나라로 돌아가야 할 운명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별 정치부]는 지구별 어린이들에게 의견을 다시 물었는데,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19세기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을 불러내서
[성냥팔이 소녀]를 다시 쓰게 한다.   


  

[지구별 정치부]의 이런 결정에 따라서, 26세기의 첫날 지구별로 동화작가 안데르센이 소환되었고 

안데르센은 지구별 정치부의 결정에 따라서 동화를 다시 쓰게 되었다. 


소녀는 마지막 성냥을 켜면서 하느님한테 기도했다.      



”... 이 마지막 성냥이 꺼지면 제가 행복한 겨울 왕국에 사는, ‘눈의 요정’이 되게 해 주세요. 

춥고 어두운 겨울밤을 보내는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나눠주는 

눈의 요정이 되고 싶어요... “ 

 

”... 그래서 겨울밤이 되면 가로등 바로 아래에서, 수은등 불빛의 동그란 그림자가 만들어졌고, 

불빛이 만들어놓은 동그라미 주위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며 지나갔다. 

겨울에 세찬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칠 때도 수은등은 꺼지지 않고 켜져 있었는데, 

그 불빛은 얼음 여왕의 매서운 눈빛처럼 밤의 공간을 가르며 ‘발사’를 외치고 있었다..."

      

"... 겨울왕국에서 컴컴한 밤하늘을 눈송이들이 빼곡히 채워가는 걸 보면, 

마치 여름밤 은하수가 세상을 포근히 덮고 밤하늘에 찬란한 장식을 해놓은 것처럼 보였는데, 

그런 설레는 밤엔 파란 색칠을 한 동화 속 궁궐의 성벽 문의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고, 

왕국 속 어린아이들은 거리를 뒤덮은 눈 위에 커다란 신발 자국을 찍으며 뛰어다녔다..."

      

"... 아이들의 발자국은 여름날 개울에서 첨벙첨벙 발장난을 치는 아이들의 신난 발차기처럼 

눈 위에 어지럽게 찍혔다. 신기한 건, 눈이 내리는 밤엔 혼자 서 있는 수은등도 

느릿느릿 마치 잠에 취한 듯, 내리는 눈의 속도처럼 천천히 불빛을 발사했다. 


눈이 내리는 속도에 장단을 맞추는 수은등은 

하늘에서 내리다, 다시 올라가다, 옆으로 기며 내리는 눈송이들을 붉게 비추었고, 

그럴 때면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들도 한밤의 무도회에 초대된 붉은 무희 같았는데, 

붉은 조명을 받은 무희들은 춤을 추듯 허공 위를 날아다녔다.      


수은등의 붉은색 시야를 겨우 벗어난 하얀 얼굴의 예쁜 눈(雪) 요정과 

검은 정장을 입은 거 같은 멋쟁이 나무 수은등 요정은 

무도회의 조연 같은 모습으로 아름다운 무희를 지켜보는 행복한 겨울밤이었다... “     


26세기에 소환된 성냥팔이 소녀는 이처럼 아름다운 눈의 요정의 모습으로 

지구별 어린이들에게 행복한 겨울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구별 아이들은 새로 태어난 성냥팔이 소녀였던, 눈의 요정을 사랑했고, 

다음세기, 27세기에는 동화 속 누구를 새로 태어나게 할까,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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