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표선항에서 흔들리던 까만 바다를 볼 수 없었고, 바닷물결의 잔잔한 흐름을 따라서 박자를 맞추듯 삐그덕 거리며 표선 항구를 일렁이게 만들었던 선박의 새벽 불빛을 볼 수 없어서였다.
더 이상 서울의 아이들과 아내를 볼 수 없을 거라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던, 해 질 녘의 한라산을 타고 오르던 붉은 노을을 볼 수 없었고, 번져나가던 노을을 따라서 눈이 시리던 파란 하늘이 붉음과 노랑 사이의 어느 아름다운 색깔로 물들어 가던 석양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동쪽 하늘에서 반가운 별들이 하나 둘 떠오를 때에 울적한 마음을 달랠 수 없는 날이면, 표선항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길냥이 코코를 만나러 가던 설레던 저녁의 어스름이 서울에서는 더 이상없었다. 이안 작가가 먹이를 건네줄 무렵이면 배고픔과 세상의 모든 귀여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던 코코와 코코의 엄마를 볼 수 없었다.
<2년 전, 제주도 표선면에서 이안 작가에게 소중한 인연이 되어준 아기 고양이 코코>
제주도 표선면의 이 모든 소중한 것들을 뒤로하고 내가 서울에서 잘 살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고, 표선면에서 끝끝내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떠났던 것처럼, 서울 생활에서도 적응을 하지 못하고 결국은 어딘가로 멀리 떠나게 될 거라는 생각만으로 1년여를 보냈다.
제주도 표선에서의 밤은, 늘 그랬었다.
어김없이 저녁 무렵이면 바다로부터 불어오던 여유로워진 바람이 붉은 노을보다 먼저 찾아와서 곧 어둠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었고, 대진 유토피아 단지네 초등학생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코로나 시국에 집에만 붙어있어야 하는 허기진 무료함을 달랬다.
"하루 종일 혼자 살면 심심하지 않으세요? 서울에 있는 아저씨의 아이들은 보고 싶지 않으세요?"
라며 걱정스레 안부를 물어봐주던 초등학생 초원이와 초원이의 4살 동생 하늘이를 만나러 하루 종일 외출을 삼가던 침묵을 깨고 집 밖으로 나가곤 했던 밤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내 저녁을 먹으러 들어오라는 엄마의 부름에 각자의 집으로 삼삼오오 흩어져 갔고 혼자 남겨진 이안 작가는, ‘그럼 이젠 표선항에 코코나 보러 가야겠다’면서 먼지를 툴툴 떨어내며, 떨구어 내던 게 홀로 남은 이의 서러움인지, 한라산 너머로 작은 귤처럼 또르르 떨어지며 사라져 가던 태양의 눈물 같은 그리움인지 모를 그런 밤이기도 했다.
서울 생활중에도 불쑥 그런 밤이 잊힌 기억처럼 다시 찾아와서 나를 제주로 보내게 될까 봐 도망치듯 잊고자 했던 밤이기도 했다.
<도저히 잊히지 않을 듯했던 표선면의 슬프고도 아름답던 밤들>
15개월 만에 찾아온 표선항에서 <바다그림 펜션>의 사장님은 코코가 이젠 많이 컸다면서, 그새 다른 형제들은 다 죽고 혼자만 남았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코코의 아빠로 추정되는 수컷 고양이는 자신의 새끼도 못 알아본 채 밤마다 찾아와 싸움을 걸었지만, 엄마는 어딘가로 사라졌다고 했다. 그래도 코코는 또 다른 암컷 고양이의 두 번째 새끼들을 이끌면서 이 영역의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고도 하였다.
코코는 지난 15개월을 나보다 외롭지만, 스스로와 표선항을 지켜내며 나보다 훨씬 더 듬직하게 살아오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15개월 만에 다시 찾은 표선항에서 이제 어른이 된 '아기 고양이 코코'는 만날 수 없었고, 코코의 배 다른 형제인 듯한 비슷한 또래의 다른 고양이를 볼 수 있었다>
15개월 전 나의 밤들은,
오늘 밤처럼 바람이 차가웠고 새벽 1시를 향해가는 시간에도 잠을 이룰 수 없어 핸드폰의 조명등을 켜고 코코를 찾아 나서던 밤이었다. 오늘 또다시 찾은 표선의 밤에 조명을 켜고 표선의 바다와 바다의 모래사장 위로 켜켜이 쌓아 올린 현무암 바위 틈새들을 둘러봤지만 코코를 만날 수 없었다. 사라져 간 추억, 그리고 잊힌 과거와 조우할 수 없는 것처럼 코코를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찾은 표선항의 밤에는,
여전히 항구에 정박된 배들은 바람에 흔들렸고, 자신을 흔드는 게 바람인지, 파도인지 아니면 내일 어딘가로 고기잡이를 떠날 어부의 잠 못 이루는 불안한 마음 때문인지이유를 알 수 없었고, 어둠 속에 홀로 남은 시간들이 어서 빨리 흘러가기만을 바라며 새벽까지 잠 못 이루던 정적이 자꾸만 깊은 밤 속으로 내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