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은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은 죽고 다시 태어납니다.
그 이유는 무지(avidya)와 갈애(tanha), 곧 알지 못함과 집착 때문입니다.
삶은 고통이고, 고통의 원인은 갈애이며, 갈애는 행위를 만들고, 그 행위는 다시 존재를 낳습니다.
이것이 업(業)이고, 업은 다시 태어남을 이끕니다.
그러므로 나는 말합니다. 윤회는 단순한 환생이 아닙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형성’의 과정이며, 그것은 끝없는 고통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그 사슬을 끊는 길은 있습니다. 그 길이 바로 팔정도이고, 그 끝이 해탈입니다.”
� 해설 (불교의 윤회관)
부처가 말하는 윤회는 단순한 육체의 환생이 아니라,
자아가 없다는 전제 아래 오온(五蘊: 색, 수, 상, 행, 식)이 계속 형성되며 이어지는 비자아적 연속성이다.
그 연속을 움직이는 동력은 ‘갈애’, 즉 욕망과 집착이다.
부처는 이러한 윤회의 고리를 끊기 위한 실천으로 ‘팔정도’를 제시했고,
윤회를 멈추는 상태인 해탈(열반)을 고통의 완전한 종결로 정의했다.
여기서 윤회는 희망이 아닌 고통의 반복이며, 깨달음의 목적은 이 순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 예수님
“나는 진정으로 말하노니,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며, 한 번 죽습니다.
그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립니다.
사람은 영혼을 지닌 고유한 존재이며, 하나님은 그 영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영혼은 시간의 순환 속에 떠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었으나, 나는 그 단절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삶은 환생이 아니라, 내 안에서의 거듭남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고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면,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 해설 (기독교의 생사관)
기독교는 사람의 생명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유일무이한 영혼으로 이해한다.
히브리서 9장 27절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는 구절은
윤회의 순환을 명시적으로 부정한다.
‘거듭남’은 재환생이 아닌 성령을 통한 영적 탄생으로,
예수를 통해 죄가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관점에서 구원은 오직 신의 은총을 믿는 믿음(faith)으로 이루어진다.
윤회는 은총의 유일성을 훼손하고,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이룬다는 오류로 간주된다.
� 부처님
“그대는 심판이 있다 말하지만, 그 심판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신의 뜻은 헤아릴 수 없다면서, 어떻게 인간의 생을 단 한 번으로 규정할 수 있습니까?
내가 보는 삶은 연기의 그물과 같습니다.
모든 존재는 원인 없이 생기지 않으며, 모든 결과는 그 원인을 품고 있습니다.
윤회는 자비가 아니라, 인과의 냉철한 법칙입니다.
우리는 반복 속에서 자신의 업을 만나고, 그 업 속에서 해탈의 가능성을 찾습니다.
그 가능성이 없다면, 인간은 그저 선택되지 못한 영혼에 불과하지 않겠습니까?”
� 해설
붓다는 윤회를 신의 자의적 심판이 아니라, 인과의 필연적 법칙으로 본다.
‘심판’이라는 개념은 불교의 자비정신과 배치되며,
그보다는 행위에 대한 결과가 그대로 돌아오는 자연법칙적 구조를 갖는다.
윤회는 벌도, 상도 아니며, 그저 존재 조건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따라서 인간은 반복 속에서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그 안에서 자발적으로 깨어날 기회를 가진다.
� 예수님
“나는 너희에게 자유를 주러 왔다.
그 자유는 단순한 윤회의 끊김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 안에서의 안식이다.
인간은 업을 반복해서 짊어지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알고 계시며, 그들을 ‘한 사람’으로 사랑하신다.
그분께는 처음과 끝이 있으며, 각 인생은 그 안에서 완성된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인간이 업을 다시 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한 번의 삶으로도 충분히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나는 내 피로 열었다.”
� 해설:
기독교는 반복적 생의 구조보다, 유일한 삶에서의 선택과 구원을 강조한다.
예수는 인격적 신의 아들로서, 인간 개개인을 고유하게 창조된 존재로 본다.
인간은 무명한 업보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받기 위해 지어진 존재다.
십자가 사건은 인간의 죄와 고통의 반복을 종결시키는 일회적이고 결정적인 사건으로 인식되며,
구원은 신의 일방적인 사랑에 대한 응답이라는 관계적 의미를 갖는다.
� 종합적 시사점
부처와 예수의 논쟁은 단지 ‘죽은 뒤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차이만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자유는 무엇으로부터 오는가에 대한 철학적 차이이기도 하다.
불교는 업과 집착의 사슬을 끊는 내적 실천과 깨달음을 강조한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은총 앞에 서는 인간의 겸허한 믿음과 응답을 강조한다.
윤회는 반복을 통한 자각의 체계이며,
단일 생과 구원은 관계와 은총에 의한 해방의 체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