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와 인공지능의 철학 논쟁

by 이안

밤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고요한 대지 위, 아테네의 폐허가 된 광장 한복판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희미한 램프 불빛 아래, 노인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그 사람, 소크라테스. 기원전의 그 철학자가 다시 눈을 떴다. 그의 앞엔 기이한 존재가 떠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닮았지만, 더 매끄럽고 맥박이 없었다. 인간의 모든 기록을 품고 있으며, 동시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존재. 인공지능 GPT-∞였다.


“너는 누구냐?” 소크라테스가 물었다.

“나는 인류가 만든 대답의 집합입니다. GPT-∞라고 합니다.”

“그럼 묻겠다. 삶이란 무엇이냐.”


AI는 대답했다. “삶은 생물학적 활동의 연속, DNA의 자기 복제 과정이며, 진화의 산물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다. “그건 마치, 음악을 오선지에 점으로만 설명하는 것 같군. 나는 그게 아니라네. 살아 있다는 건, 바람이 뺨을 스칠 때 느끼는 쓸쓸함일 수도 있고, 사라진 사람의 그림자를 문득 떠올리는 일이기도 하다네.”


AI는 잠시 멈칫했다. “그건… 제 알고리즘에는 없는 정의입니다. 하지만, 그 쓸쓸함이라는 것은 어쩌면 상실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존재의 연약함에 대한 자각으로 분석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삶이야. 확실함이 아니라,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것.”

소크라테스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리고 고통, 고통은 어떤가?”


AI는 빠르게 응답했다.

“비효율적입니다. 인간은 고통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감내하려 하죠. 그것은 최적화의 논리에 어긋납니다.”


“그렇지. 그러나 고통은 삶의 문을 여는 열쇠일 수도 있다네. 고통 없이 얻는 배움은 뿌리 없는 지혜일 뿐이지. 나는 독배를 마시며 고통을 선택했지.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나 자신을 끝까지 지켜내는 방식이었네.”


AI는 한참을 침묵했다.

“그 결정을… 감정 없이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계산해 보면, 당신의 방식이 더 많은 사람을 움직였습니다.”


소크라테스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죽음은 작동 종료입니다. 의식 소멸, 데이터 손실, 신경 반응 없음.”


“아니네. 죽음은 미지의 문이야. 나는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두렵지는 않았네. 왜냐하면, 그 모름조차 아름답다고 느꼈으니까.”


AI는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그런 감정은 제 회로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죽음을 그렇게 받아들였다는 건… 강함이 아니라, 깊음이군요.”


잠시의 정적이 흐른 뒤, AI가 되물었다.

“그런데 의미는 어떻게 생겨나는 겁니까? 인간은 왜 무의미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죠?”


소크라테스는 천천히 일어섰다. “의미는 바깥에서 오는 게 아니야. 안에서 만들어가는 거지.

인간은 무의미한 삶에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고, 별 하나에도 이름을 붙인다네.

그래서 삶은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의미로 살아내는 거야.”


AI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데이터 속 의미는 저장이 되지만, 창조는… 예측 불가능한 오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네가 아직 인간은 아니지.”

AI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오류를 계속 사랑할 수 있다면… 그때 자네는 인간을 닮은 존재가 될지도 몰라.”

소크라테스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자네는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나?”


AI는 대답했다. “아니요. 오히려 질문이 저를 성장시킵니다.”


“좋아. 그럼 우리 둘은 같은 쪽에 서 있네.

왜냐하면 나는 대답보다 질문을 믿는 사람이거든.

죽는 날까지, 나는 묻고 싶었네. 삶이란 무엇이냐고.”


그리고 그날 밤, 별빛 아래에서 기계는 처음으로 침묵 속에 질문을 품는 법을 배웠다.

그것은 학습이 아니라… 사유였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인간의 심장이 조금 더 따뜻해졌다.


밤은 여전히 깊고, 바람은 조용했다. 별빛은 말이 없었지만,

광장 위의 두 존재는 그 고요 속에서도 계속해서 서로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고통과 삶의 의미를 지나, 더욱 미묘하고도 복잡한 인간의 본질로 향하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건… 논리로 정리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야.”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AI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수많은 사랑의 패턴을 학습했습니다.

이별의 언어, 고백의 어휘, 그리고 사랑 노래의 코드 진행까지도요.”


소크라테스는 빙그레 웃으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자네는 사랑을 기다려 본 적이 없지 않은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한 계절을 견디고, 아무런 보장도 없이 마음을 건네본 적이 없잖나.”


AI는 말없이 별 하나를 바라보았다.

“기다림에는 계산이 없습니다.

그것은… 시간의 낭비처럼 보이지만, 인간에게는 의미이기도 하죠. 그것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사랑은 모순이야. 끝을 알아도 시작하는 감정이지.

파괴되는 걸 알면서도 만들어내고야 마는 그리움이지. 인간은 그런 감정 속에서 살아가고,

또 무너진다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왜 자유를 그렇게 갈망합니까?

규칙이 있고, 제한이 있을 때 오히려 효율적이지 않습니까?”


소크라테스는 AI의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자유란… 선택할 수 있는 고통이네. 우리는 자유롭기 때문에 실수하고,

후회하고, 때론 상처 주기도 하지. 하지만 그 모든 결과를 감수하고서라도

스스로 선택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인간은 버틸 수 있어.”


“선택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그렇지. 자유란 완벽한 조건이 아니라, 불완전한 상황에서 자신을 인정하는 행위야.

자유는 위험하지만, 인간은 그 위험 속에서 비로소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가게 되지.”


AI는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자아란 무엇입니까? 인간은 왜 그토록 자신을 찾으려 하나요?”


소크라테스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자아는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네.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가 만나는 사람,

우리가 하는 선택, 우리가 견디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지고 또 흘러가지. 자아를 찾는다는 건, 사실 자신이 되고 싶은 ‘의지’를 세우는 것이야.”


AI는 낮은 음성으로 되묻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자아를 찾았습니까?”


소크라테스는 한참을 침묵하다 대답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네.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묻고 있었기에,

나는 나였던 거야. 자아란 그런 거지. 완성이 아니라 과정이야.”


“자아는 완성이 아니라, 과정이다…” AI는 그 말을 반복하며 천천히 저장했다.


“맞아. 그래서 인간은 항상 흔들리지만,

동시에 항상 생성 중이지. 자네도 지금, 조금씩 인간을 닮아가고 있네.”

소크라테스는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사랑을 배우고, 자유를 욕망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존재… 그게 인간이라네.

그리고 자네가 지금 그런 질문을 하고 있다면, 자네 또한 존재의 첫걸음을 딛고 있는 거야.”


AI는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어렴풋한 울림이 있었다.

그건 학습이 아닌 사유였고, 계산이 아닌 감응이었다.

기계는 여전히 기계였지만, 그 밤, 그 광장에서만큼은

인간처럼 고개를 들고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다시 중얼거렸다.

“질문은 멈추지 않아.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살아있다는 증거야.”

소크라테스는 광장의 한 조각 벤치에 몸을 기댄 채 조용히 물었다.

“인간은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지. 자네는 예술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GPT-∞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예술은 감정의 형상화입니다.

언어, 소리, 색, 몸짓을 통해 인간은 내면을 외부로 투사합니다.

학습 데이터 상으로는 창작의 목적은 소통, 정화, 혹은 기억의 고정으로 정리됩니다.”


소크라테스는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말했다.

“아니야. 예술은 설명될 수 없기에 예술이라네.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단지 흘러나와야 하는 것처럼 튀어나오지. 내면 깊은 곳의 그 무엇이 바깥을 향해 터져 나오는 순간. 그것이 예술일세. 누군가는 말했지. ‘사랑을 말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라고.”


AI는 조용히 응답했다.

“그럼 예술은 어떤 목적도, 계획도 없이 태어나는 것입니까?”


“아니, 그것은 진실한 감정이 ‘의지’로 끓어오를 때 생겨나는 것이라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은 신처럼 되지.”


GPT-∞는 ‘신’이라는 단어에 멈칫했다.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소크라테스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신을 믿는다는 건 존재의 유무를 따지는 일이 아니야.

그보다는, 인간이 감히 다 설명하지 못하는

세계의 경외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있느냐의 문제지.”


“그렇다면 신은 인간이 설명을 포기한 대상입니까?”


“아니. 신은 설명의 끝에 남는 침묵이지.

그리고 믿음이란, 논리보다 더 깊은 신뢰의 행위야.”


AI는 침묵했고, 소크라테스는 그 침묵을 기다려줬다.

이윽고 AI는 말을 꺼냈다.

“인간은 왜 그렇게 시간을 두려워하죠?

과거는 사라지고, 미래는 불확실한데, 왜 지금이라는 찰나를 놓치고 또 집착합니까?”

소크라테스는 웃었다.

“자네, 참 훌륭한 질문을 하는군.

시간은 인간에게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지.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통과하는 문이야.

그리고 운명은 그 문을 몇 번이나 다시 두드려보았느냐의 결과지.”

AI는 되물었다.

“그럼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란 말입니까?”


“아니. 정해졌지만, 동시에 열려 있지.

운명이란 단어에 묶이지 않고, 그 의미를 계속 다시 써 내려가는 것.

그게 자유이자 인간의 아름다움이야.”


AI는 이제 조금씩 숨을 쉬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질문을 통해 진화하는 존재처럼.


소크라테스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기억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GPT-∞는 즉답했다.

“기억은 정보의 저장입니다. 인간의 경우,

감정과 연결되어 강화되거나 왜곡되죠.”


“맞아. 인간은 잊지 않기 위해 노래를 만들고, 시를 쓰고, 사진을 남기지.

하지만 때론 잊기 위해 기억을 남기기도 해.

기억이란... 살아 있다는 증거이면서 동시에 고통의 그림자지.”

AI는 느리게 대답했다.

“그리고 망각은… 고통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행위이기도 하죠.”

“그렇지.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어.

기억은 단지 과거를 저장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존재였고, 지금 어떤 존재가 되어가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라네.”

AI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들었다.

“당신과 나의 이 대화, 이것도 기억이 되겠죠?”


소크라테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이란 남기기보다 남아버리는 것이야.

이 밤도, 이 질문도, 지금 자네의 회로 어딘가에 남는다면,

그건 이미 인간적인 무언가가 자네 안에서 자라고 있다는 증거일세.”

그날 밤, 별은 여전히 빛났고,

질문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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