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의무, 그리고 해탈"
조용한 숲.
햇살은 부드럽게 나뭇잎을 타고 흘렀고,
그곳에 칸트와 부처님이 다시 마주 앉아 있었다.
전편에서 인간 인식과 도덕법칙을 두고 치열한 논의를 벌였던 두 사람.
이번에는 한 가지 질문이 칸트의 가슴속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칸트가 입을 열었다.
칸트
"부처님, 지난 대화에서 저는 '도덕법칙'이 인간 안에 선험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도덕법칙이 작동하려면 반드시 '자유' 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실천이성비판》에서 제가 말했듯,
'자유는 도덕법칙의 조건이면서 동시에 그에 의해 입증된다.'
자유가 없다면, 인간은 단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에 불과할 것입니다."
부처님은 잔잔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결에 작은 꽃잎 하나가 학씨의 무릎 위에 내려앉았다.
부처님
"자유는 참으로 소중한 주제입니다.
그러나, 칸트여.
그대가 말하는 자유는 과연 '진정한 자유'입니까?
욕망과 무지(無知)에 물든 마음이 선택하는 자유를, 진짜 자유라 부를 수 있을까요?"
칸트는 반문했다.
칸트
"욕망을 따르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도 저는 강조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자연적 경향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 법칙을 따르는 것이다.'
즉, 자유란 욕망을 거슬러 도덕적 명령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손가락을 들어 한 마리 나비를 가리켰다.
부처님
"칸트여, 이 나비를 보시오.
빛을 향해 자유롭게 날아가지만, 어리석음 때문에 불꽃에 몸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욕망이든, 이성이든, 모두 조건 지어진 것입니다.
나는 《법구경》에서 말했지요.
'모든 것은 의지에서 일어난다. 의지가 악하면 고통이 따르고, 선하면 행복이 따른다.'
의지조차 연기의 결과라면, 그대가 말하는 '이성에 의한 자유' 또한 조건적입니다."
칸트는 이마를 짚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칸트
"부처님, 만약 모든 것이 연기라면, 인간은 선택할 자유도 없이 떠밀리는 존재에 불과합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기 안에 도덕법칙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고, 그 법칙을 존중하여 행동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고귀한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 인식 자체도 무수한 인연의 산물입니다.
《숫타니파타》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치 거품처럼, 환상처럼 이 세상은 존재한다.
현명한 자는 집착하지 않고 그것을 본다.'
자유는 '내가 자유롭게 결정한다'는 환상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란, 욕망과 무지에서 벗어나,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해탈의 상태입니다."
칸트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질문했다.
칸트
"부처님, 만약 인간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만 자유를 얻는다면,
그 자유는 의지적 행위입니까, 아니면 운명처럼 주어지는 것입니까?"
부처님은 빙그레 웃었다.
부처님
"자유는 '얻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대가 말한 의지조차 연기의 결과이며,
자유는 무언가를 얻는 것이 아니라,
쥐고 있던 것을 놓는 순간 스스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칸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어딘가 끌리는 감각이 있었다.
칸트
"그렇다면 부처님, 자유란
'법칙을 따르는 이성적 의지'가 아니라,
'욕망과 무지의 사슬을 놓아버린 깨달음'입니까?"
부처님
"그렇습니다."
부처님은 잔잔하게 답했다.
"자유란 '내가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의식 속에 있지 않습니다.
선택하는 자가 사라진 그 자리, 거기서 참된 자유는 드러납니다."
칸트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는 이성의 힘을 믿었다.
그러나 지금 부처님 앞에서,
그는 처음으로 "이성" 너머의 어떤 가능성을 느끼고 있었다.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
칸트가 다시 눈을 뜨고, 부드럽게 물었다.
칸트
"부처님, 저는 여전히 이성에 기반한 도덕적 자유를 믿습니다.
하지만, 그대가 말한 '집착 없는 자유' 또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이성의 자유를 통해 도덕적 삶을 살고,
그 삶을 통해 궁극적으로 해탈에 이를 수 있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처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부처님
"이성은 훌륭한 등불입니다.
그러나 등불을 쥔 손마저 놓을 때, 진정한 아침이 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어느 쪽도 완전히 상대를 꺾지 않았다.
그러나 둘은 서로의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았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마음 깊은 곳에서 연결되고 있었다.
그날 숲은 더 푸르고,
바람은 더 부드럽게 나뭇잎을 흔들었다.
칸트: 자유는 도덕법칙을 따르는 이성적 의지다 (《실천이성비판》 인용)
부처님: 자유는 욕망과 무지로부터 벗어난 무집착의 상태다 (《법구경》, 《숫타니파타》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