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와 무위 사이》 – 부처님과 노자의 대화
달빛이 대지를 희게 덮고, 대나무 숲 사이로 은은한 바람이 스쳤다. 천 년의 고요 속, 어느 산중 정자에 두 인물이 마주 앉아 있었다.
한 분은 붉은 가사에 고요한 눈을 지닌 석가모니 부처.
다른 한 분은 흰 수염을 문지르며 흐릿한 미소를 띤 채 앉은 노자였다.
노자
“공(空)이라 하셨소. 모든 것이 공하다면, 무엇이 존재하며, 무엇이 사라진다는 말입니까?”
부처
“노자여, 내가 말한 ‘공’이란 단순한 허무가 아닙니다.
『色即是空 空即是色』(색즉시공 공즉시색) – 반야심경(般若心經)
형상은 곧 공이며, 공은 곧 형상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하고, 인연 따라 사라지는 연기(緣起)의 세계.
그러니 고정된 자아도, 본질도 없습니다.”
� 일상적 예시:
마치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며 "이것이 나다"라고 믿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거울 속 형상은 실체가 아니라 비친 것일 뿐,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도 이처럼 비치고 사라지는 그림자일 뿐,
실체라 여겨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노자
“도(道) 또한 그러하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모) – 도덕경(道德經) 제1장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며, 이름 지을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 없으면 천지의 시작이요, 이름 있으면 만물의 어머니다.”
� 일상적 예시:
누군가 바다를 처음 본 사람에게 "바다는 푸르고 넓다"고 설명한다고 해도, 그것이 바다의 본모습일 수는 없습니다.
언어는 단지 방향표지판일 뿐, 진짜 바다는 직접 발을 담그고, 피부로 느낄 때만 알 수 있습니다.
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름 짓고 설명하는 순간, 본질에서 멀어집니다.
“당신이 말한 무아(無我)는, 나의 무위(無爲)와 같지 않습니까?
억지로 자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스스로를 주장하지 않는 삶 말이오.”
부처
“당신의 말씀은 지혜롭습니다.
나는 존재하는 자아를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자아라는 개념이 실체가 아님을 밝힌 것이지요.
『諸法無我』(제법무아) – 법구경(法句經)
모든 법에는 나라는 것이 없다.”
� 일상적 예시:
누군가 직장에서 '나는 이 팀의 리더다'라는 자아에 집착하면,
비판을 들을 때 분노하고, 일이 잘못되면 무너집니다.
하지만 자신을 '역할을 수행하는 하나의 인연'으로 보면,
일에 더 유연해지고 괴로움이 줄어듭니다.
‘나’라는 고정관념이 없다면, 삶은 더 부드럽고 평온하게 흘러갑니다.
“실체를 고집하는 그 집착이 고통을 낳는다고 보았습니다.”
노자
“그러나 집착을 없애려는 그 의지조차 집착일 수 있지 않소?
『夫唯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부유부쟁 고 천하 막는 여지쟁) – 도덕경 제22장
나는 다투지 않기에 세상이 나와 다투지 못하네.”
� 일상적 예시: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다른 아이가 빼앗아가도,
그것에 마음을 두지 않는 아이는 울지 않습니다.
하지만 집착하는 아이는 뺏기는 순간 분노하고 고통받습니다.
세상과 다투지 않으면, 세상도 나를 상처 입히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내려놓으려는 마음마저 놓게 되지 않겠소?”
부처
“그래서 나는 『無住相布施』(무주상보 시) – 금강경(金剛經)
머무름 없는 마음으로 베푸는 것이 보시의 참된 길이라 말했습니다.”
� 일상적 예시:
어떤 사람이 길가의 노인에게 음식을 건넸을 때, '내가 착한 일을 했다'는 생각이 머무르면 그것은 거래가 됩니다.
하지만 그냥 지나가는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도왔다면, 그것이야말로 무주상의 참된 베풂입니다.
“‘무주심(無住心)’이 곧 노자의 무위(無爲)와 닿습니다.”
노자
“자네는 고통의 근원이 집착이라 하고, 나는 개입의 시작이 욕심이라 하였소.
그렇다면, 결국 ‘텅 빈 마음’이 참된 길이라는 데 우리가 다다른 것 아닙니까?”
부처
“텅 빈 마음이란, 번뇌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이요.
그 마음으로 진리를 보게 될 때,
『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
(심무괘애 무괘애고 무유공포) – 반야심경
걸림이 없고, 두려움이 사라지지요.”
� 일상적 예시:
시험을 앞두고 ‘실패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머릿속을 지배하면 실력도 발휘 못합니다.
하지만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내려놓으면 오히려 집중이 생기고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걸림 없는 마음은 평온과 용기를 낳습니다.
바람이 한줄기 대숲을 스치고,
두 성인의 침묵이 밤공기를 메웠다.
부처는 합장했고, 노자는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켰다.
부처
“노자여, 그대가 말하는 도는, 공의 바다와 이어진 길 같습니다.”
노자
“석가여, 그대의 공은, 내가 말한 도를 향해 흘러가는 강 같소.”
둘은 웃었다.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가를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
진리는 서로 다른 언어를 입고,
같은 무(無)의 자리에서 하나로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