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노동자들은 왜 파업을 해야했나-
비 오는 아침, 서울 외곽의 한 버스터미널. 바쁜 시간인데도 이상하리만치 고요하다. 파업에 들어간 노동자들이 유니폼 위에 점퍼를 걸치고 집회 장소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 가운데, 나이가 지긋하고 눈빛이 강단 있는 한 인물이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그는 이번 파업을 주도한 전국자동차노조연맹 집행위원장이었다.
그 순간, 회색빛 수증기처럼 느닷없이 한 인물이 나타났다.
긴 외투와 목도리를 두른 수염 난 사내. 노동의 사도, 혁명의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였다.
노조 집행위원장:
“칼 선생, 멀리서 오셨습니다. 오늘이 바로 우리가 멈춘 날입니다.
시민들께 죄송하지만, 근로조건 개선 없이는 더 이상의 안전운행도 없습니다.”
칼 마르크스 (미소 지으며):
“죄송하다는 말, 노동자가 늘 먼저 해야 하는 말입니까?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이유는 노동자의 저항이 아니라, 자본이 만든 구조적 억압 때문이지요.”
노조 위원장:
“물론 자본의 논리를 모르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공공서비스입니다.
시민의 발이자 생명줄입니다. 그래서 더욱 안전하게, 더욱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요구하는 겁니다.
하루 14시간씩 운전대를 잡는 이들도 있어요.”
마르크스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이 바로 당신이 스스로를 '노동자'로 정의하는 이유입니다.
노동은 인간의 자기실현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그 노동을 타자화하고, 분절시키고, 결국 소외시킵니다.
당신이 말한 그 14시간은 곧 자본이 시간까지 소유하고 있다는 증거지요.”
바람이 불고, 노조 깃발이 휘날린다. 멀리서 시민 한 명이
“왜 하필 출근길에 파업을 하냐”고 고함친다. 위원장은 그 쪽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노조 위원장:
“이해합니다. 정말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멈추지 않으면, 더 큰 사고가 납니다.
최근에도 과로로 졸음운전하다가 인명사고가 있었어요.
일하다 죽는 게 당연시되는 구조를 바꾸고 싶습니다.”
마르크스 (단호히):
“혁명이란 총칼만을 뜻하지 않소. 체제를 고치는 첫 삽은 언제나 ‘멈춤’입니다.
파업은 자본주의 기계에 던지는 인간의 브레이크요, 노동의 존엄을 회복하는 선언이지요.”
노조 간부들이 회의에 들어가고, 마르크스는 한 젊은 노동자와 마주 앉는다.
그는 입사한 지 3년 된 30대 중반의 운전사였다.
젊은 노동자:
“솔직히 말하면, 불안합니다. 시민들 원망도 많고, 회사는 협박하고...
저희가 진짜 이기적인 건 아닐까요?”
마르크스 (잠시 침묵 후):
“자본주의는 언제나 노동자의 양심을 미덕으로 악용해왔소. 더 일하라, 더 참으라, 더 기다리라고. 하지만 그 기다림 속에 네 청춘은 착취당하고, 가족은 그늘에서 지칩니다. 양심은 네 편이어야지, 자본의 무기가 되어선 안 되오.”
젊은 노동자 (작게 고개 끄덕이며):
“그래도 시민들에게는 죄송하단 말밖에...”
마르크스:
“그 말은 기업주들이 해야 할 말이오. 왜 파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는지에 대해,
왜 노동자가 위험을 감수해야만 운송이 돌아가는지를 설명해야 할 자들은 그들이지.
당신은 그저 멈췄을 뿐이오. 인간이기 위해.”
잠시 후, 마르크스는 집행위원장 옆에 선다.
노동자들은 손에 피켓을 들고, 시민들은 두 갈래로 나뉜 채 바라보고 있다.
마르크스 (노조를 향해):
“여러분, 이 싸움은 임금만이 아닙니다. 시간과 생명, 존엄을 되찾는 투쟁입니다.
‘당연한 일’이라 여겨졌던 착취에 저항하는 그 자체가 역사이며,
그 불편함은 오히려 사회가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입니다.”
그날 저녁, 뉴스에선 파업으로 수많은 버스가 멈춰 섰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화면 속 노동자들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 뒤편, 마르크스는 조용히 사라졌다. 남은 건 한 문장뿐이었다.
“인간의 얼굴을 한 노동. 그것이 이 도로 위에도 가능해야 하지 않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