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2000년 초반부터, 비 영미권 음악과 제3세계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소위 ‘월드뮤직’이라는 장르가 인기를 끌었었다. 그래서 MBC FM에서도, [송기철의 월드뮤직]이라는 프로그램을 새벽 시간대에 편성했고, [월드뮤직]을 국내 음악 애호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위해서, MBC 라디오 PD들을 직접 제3세계와 비 영어권 국가에 파견해서, [월드뮤직]의 현황을 취재하기로 결정했었다.
당시에 피터팬 PD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연출을 하면서, 동시에 [송기철의 월드뮤직]도 제작하고 있었기에, 서부 아프리카의 세네갈과 말리의 음악을 취재하러,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발을 딛게 되었다. 당시에 국내에서는, '에어 프랑스'가, 파리를 경유해서 서부 아프리카로 취항하는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었다.
취재의 대략적인 일정은, 파리에서 1박을 체류하고, 아프리카의 서쪽 관문이라고 불리는,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가장 서쪽에 위치한,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 머물렀다. 이어서 세네갈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사하라 사막의 나라 말리로 취재를 갔다.
<아프리카 북부의 사하라 사막. 말리의 수도 바마코에서, 도요타 지프차로 8시간 동안 사막을 달리면, 전설의 황금 도시 팀북투가 나온다. 팀북투는 13세~16세기에, 사하라 사막의 소금을 금과 거래하면서 부를 축적했고, 황금의 도시로 불리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세네갈과 말리에는 세계 음악계에서도 상당한 지명도가 있던 두 명의 월드뮤직 뮤지션, 유쑨두(Youssou N'Dour)와 알리 파르카 뚜레(Ali Farka Toure)가 각각 머물고 있었다. 유쑨두는 ‘7 SECONDS’라는 노래로, 프랑스와 유럽 음악 차트에서 1위를 했었고, 미국의 빌보드 차트에서도 상위에 랭크된 기록을 가진 세네갈 국적의 가수인데, 미국에서 그래미 어워즈를 수상할 정도로, 서방세계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서부 아프리카 뮤지션이었다.
유쑨두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서부 아프리카의 정통 음악을 베이스에 두고, 유로댄스를 접목시켜서 세련된 유럽 음악의 리듬과, 호소력 짙은 아프리카의 전통 멜로디가 결합되어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 음악계에서는, SM, JYP 등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 그룹인, 에이치오티, 핑클, SES 등의 뮤지션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지만, 세계 음악 시장에서는 거의 인지도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국내 대중가요를 어떻게 세계 시장에 알릴 것인가에 관한 논의가 많았다. 하지만, 세계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영미 팝을 어정쩡하게 모방한 음악 등이 발표되기도 했는데, 그런 음악들은 세계 시장에서 전혀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말리의 [알리 파르카 뚜레]는, 유쑨두보다 서부 아프리카의 정통 음악 색이 더 짙게 묻어나는 뮤지션이었는데, 사실 미국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블루스]라는 음악 장르가,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들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알리 파르카 뚜레]의 음악을 들으면, 블루스 음악의 본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뚜레(Toure)는 오랜 세월 오직 한 길, 즉 기타 연주를 메인으로 한, [서부 아프리칸 블루스] 음악 활동을 하면서 인지도를 높여가다가, 종국에는 유럽에서는 물론 미국에도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래미 어워드를 2번 수상했고, 아직까지도 가장 뛰어난 월드뮤직 뮤지션으로, 세계 음악계에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뚜레의 음악이 유럽을 넘어, 미국 음반 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끌게 된 데에는, 라이 쿠더(Ry Cooder)라는 뛰어난 미국인 프로듀서의 힘이 컸다. 라이 쿠더는 뚜레가 음악을 포기하고 농사를 짓고 있을 때, 그를 찾아가서 다시 뮤지션의 길로 이끌었고, 특히 [토킹 팀북투(Talking Timbuktu]라는 앨범을 프로듀싱할 때 아프리카의 기본 정서와 미국인들에게도 충분히 세련되게 들릴 수 있는 블루스 기타 연주 소리를 잘 녹여냄으로,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빅 히트를 칠 수 있었다. (뚜레의 앨범 [Talking Timbuktu]는 미국 빌보드 월드뮤직 차트에서 최장기 1위를 한 기록을 갖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월드뮤직 앨범 중의 하나인, 알리 파르카 뚜레의 [Talking Timbuktu]. 미국의 명 프로듀서 라이 쿠더가 함께 참여했다 >
2000년 초반 MBC FM PD들이 전 세계 각지에서 월드 뮤지션들을 직접 만나고, 현지의 음악에 대해서 직접 취재한 내용은,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통해서, [해외 특집 기획-월드뮤직을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으로 방송됐었다. 방송을 통해서 우리 PD들이 내린 결론은,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말했던 것처럼, "가장 개인적인 것인, 가장 세계적일 수 있다"는 거였다.
세계 시장에서도 통하는 월드뮤직은, 기본적으로 각 나라 특유의 정서를 기반으로 하면서, 전 세계 시장에서도 통하는 보편성의 요소를 결합시킨 음악이었다. 피터팬 PD가 취재했던, 서부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쿠바, 남미, 터키, 북유럽의 음악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후 국내의 아이돌 그룹, BTS의 세계적인 엄청난 성공을 봤을 때,
BTS가 (1) 그들의 노래에서 한국말 가사를 그래로 사용한다던지, (2)[아이돌] 같은 노래에서 우리 전통 음악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냈음에도,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한 점을 봤을 때, 2000년 초반 MBC 라디오의 기획과 결론이, 한국 음악시장에 던진 메시지는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피터팬 PD는, 서부 아프리카라는 낯선 땅에서 2주일간 머물면서, 취재일정 외에, 감동적이면서도 재미있는 경험도 했다. 먼저,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도 나오는 바오밥 나무를 직접 볼 수 있었던 건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기억이었다. 해가 지는 서쪽 끝 사하라 사막을 달려, 노을이 지는 붉은 하늘로 다가서면, 석양을 뒤로한 바오밥나무가 성벽처럼 줄지어 서서 노을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바오밥 나무들의 푸른 잎과, 거인처럼 커다란 몸통이 붉게 물들어가다가, 밤하늘 속에서 수박만 한 별들이 저마다의 빛을 쏟아낼 때면, 수령이 5천 년이나 된다는 바오밥들은, 오천 년의 세월만큼이나 오래도록 감춰온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듯했다.
또한 2001년에 서부 아프리카의 '말리'라는 낯선 나라에는, 한국인 가족이 딱 3가구 12명만 살고 있었는데, 내가 취재를 하러 2주 동안 머물렀으니, 2주 동안은 13명의 한국인이 함께 있었다. 전 세계 나라 중 국토면적 22위인 말리에서, 한국인 13명이 서로 의지하며 사는 모습이 정겨웠고, 서부 아프리카의 공영어인 불어를 통역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자, 파리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따님을 선뜻 통역사로 소개해준, 라이온 사진관 사장님에게도 고마웠다.
알리 파르카 뚜레를 취재할 때는 재미있는 일도 있었는데, 회사에서는 인터뷰료로 20만 원을 책정해줬는데, 막상 뚜레에게 전화를 하니, 200만 원 이하면 취재를 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난감했었지만 그래도 그가 살고 있는 팀북투까지, 사하라 사막을 8시간을 달려갔더니, 뚜레는 마음씨 좋은 이웃 아저씨처럼 내게 환히 웃으면서, 아프리카 뮤지션이라고 함부로 무시하는 서방인들이 있는데, 그래서 콧대 높게 얘기했던 거라면서, 인터뷰가 시작되자 친절하고 진지하게 답변해주었다. 그런데 뚜레 아저씨는 내가 취재를 한 후, 2006년에 골수암으로 돌아가셔서, 한국 언론인으로는 피터팬 PD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취재를 할 수 있었던 월드 스타였다.
유쑨두(Youssou N'Dour)와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 있는데, 내가 그를 만나러 세네갈로 직접 가기 전까지, 우리나라 모든 방송과 음악평론가들은 그의 이름을 소개할 때, 영어명 표기대로 읽어서, ‘유쓰 앤 도르’라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내가 그에게 본인이 이름을 발음해 달라고 하자, 그는 자신의 이름이 ‘유쑨두(!)’라고 말했었고, 이 사실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전달한 이후,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방송에서 그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게 되었다. 이후 다음, 네이버 등의 포털사이트에서도, 그의 이름을 ‘유쑨두’라고 표기한다.
2000년대 초반 한국 음악의 세계화에 관해 고민했던, 나와 MBC 라디오 본부 PD들의 열정이, 우리 음악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아마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필자는 세네갈에서 또 다른 뮤지션 이스마엘 루도 취재했었는데, 그는 스페인 '페도르 알모도바르' 감독의 작품 [내 어머니의 모든 것](59회 깐느 감독상 수상)의 주제가를 불렀다. 유쑨두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의 오프닝 송을 부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