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밤]과, 고등학생 아이유에 대한 추억

-박경림의 [별이 빛나는 밤에]의 PD를 하던 시절의 기억-

by 이안

가수 아이유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여럿 있다. 안타까운 순간도 있었고.


2008년 가을부터 2009년 가을까지 나는 MBC 라디오 [박경림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연출했었다. 당시에 박경림 별밤지기는 늘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드는 진행 능력과, 폭넓은 인맥으로 초대손님으로 누가 나와도 청취자들이 그 시간을 맘껏 즐길 수 있게 만드는, 마법 같은 입담의 별밤지기였다.


경림 씨는 전설의 별밤지기 이문세 선배님이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하실 때, 고등학생 보조 MC로 방송 생활을 시작했다. MBC 라디오에서 여러 히트 프로그램을 만드셨던 조정선 프로듀서가, 고등학생이던 경림 씨를 처음 기용했는데, 경림은 재치 있는 입담과 천부적인 순발력으로 순식간에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특히 이문세의 별밤은 당시에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기에, 같은 나이 또래의 보조 MC인 박경림이 나와서 ‘우리들의 진짜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니 어린 청취자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런 스타 MC 경림 씨와, 나는 1년간 별밤을 같이 했다. 그런데 내가(=피터팬 PD) 별밤 PD로 투입될 때, MBC 라디오본부에서는 개편 회의를 하면서 심각하게 고민했던 게 하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좀 보수적인 인사들이 많아서인지, 이미 결혼을 해서 주부인 경림 씨가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인 별밤을 진행하는 게 왠지 어울리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MBC 라디오 본부에서는 봄/가을에 프로그램 개편을 하는데, 2008년 가을 개편에 별밤지기를 더 젊은 MC로 교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갈등이 있었던 것이다. 피터팬 PD도 그런 의견에 얼핏 흔들리기도 했으나, 결국 경림 씨가 충분히 좋은 진행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주부 박경림'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는 보완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밤 10시부터 자정까지 방송되는 별밤에서 1-2부 즉, 밤 10시부터 11시까지 한 시간은, 경림 씨의 진행 능력을 더 돋보이게 하고, 별밤의 청소년 청취자들도 좋아할 수 있는, 공동 MC를 한 명씩 요일별로 바꿔가면서 기용하는 아이디어였다.


이런 아이디어의 일환으로 기용된 보조 MC 중에, 당시만 해도 신인에 가까웠던 가수 아이유가 있었다. 아이유는 매주 목요일마다, 박경림과 별밤 공동 MC를 진행했다. 당시 아이유는 아직 대박 히트곡이 있지는 않았지만,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꾸준히 인기가 올라가고 있었는데, 매주 목요일이면 특히 남자 청취자들이 아이유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아이유 입장에서도, 별밤 공동 MC를 하면서 인지도가 더 상승할 수 있었다.


당시에 아이유는 오후까지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별밤이 시작하는 밤 10시에는 피곤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어떤 날은 대기실에서 피곤한 모습으로 하품을 하는 아이유를 보고,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창 자라나야 할 나이에, 잘 먹고 잘 자고 해야 건강해질 텐데, 피터팬 PD의 '별밤 청취율' 욕심 때문에, 어린 아이유를 혹사시키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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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에 발매한, 아이유의 새 싱글 [에잇]의 뮤직비디오 촬영 장면. 국내 음원 차트 1위에 올랐던 [에잇]에는, 최근에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방탄소년단의 Sugar도 함께 참여했었다. 사진 : EDAM 엔터테인먼트 >


하지만 아이유의 기획사도, 아이유 본인도,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즐겨 듣는 별밤에는 꼭 출연하고 싶어 했고, 또 아이유도 경림 별밤지기와 함께 보조를 잘 맞춰가면서 진행을 했기 때문에, 목요일 밤 10시부터 한 시간은 즐겁게 지나가곤 했다.


당시에 유행했던 말 중에 남자 청소년 학생들이 문자로 보낸 ‘아이유 위주로 합시다!’라는 우스개가 있었다. 아이유 목소리 듣는 게 너무 좋으니, 거칠고 쉰 목소리의 별밤지기 경림 씨 대신, 아이유가 말을 많이 하게 하자는 농담이 섞인 애정 공세였고, 그럴 때마다 경림 별밤지기는 ‘이 문자 번호 내가 기억해 두겠어! 가만 안 두겠어!’라며 응수했는데, 아이유는 경림의 재치 있는 말투에 까르르 웃곤 하면서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생방송인데도 긴장하지 않고 분위기를 잘 파악했고, 방송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똘똘한 신인 가수였다. 게다가 진행을 하는 별밤지기 경림과, 청취자들을 기분 좋아지게 하는 발랄한 매력이 있었다.


아이유는 별밤에서의 성공적인 공동 MC 데뷔로, MBC FM 라디오 [친한 친구]의 진행자 물망에도 올랐고, 경림 씨의 후임으로 차기 별밤지기 물망에도 올라, 당시 아이유 기획사 사장으로부터 확답을 받아놓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MBC 라디오 본부장의, ‘고등학생이 별밤지기를 할 수는 없다’는 주장에 의해 무산되고 말했고, [아이유 별밤지기]를 강력히 주장했던 나로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이후 아이유는 3집 [좋은 날]로, 소위 대박을 터트리면서, 라디오에서는 감히 게스트로도 부르기 어려운 초대형 가수가 되고 말았다.


아이유는 어린 나이에도 지인들에 대한 의리가 상당해서, 본인과 친분이 있는 DJ가 진행하는 방송에는, 소속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혼자 차를 타고라도 출연하기도 했는데, 스윗소로우가 MBC FM에서 [오후의 발견]을 진행할 때도 스윗소로우 오빠들에 대한 의리로 출연했고, 작년에 피터팬 PD가 작사가 김이나 씨와 [밤 편지]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도, 밤디(밤 편지 DJ)와의 의리로, 몇 년 만에 라디오 초대석에 출연해서, 진솔한 마음속 얘기를 들려주었다.

(일반인들은 라디오에 한번 출연하는 게, 뭐 그리 어려워?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1년 내내 빼곡한 스케줄을 소화하는 와중에, 어느 하나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연쇄적으로 다른 방송국의 라디오 PD들도 출연을 독촉하기 때문에, 가수 입장에서는 친분이라 해도, 하나의 프로그램에만 출연하는 건 곤란할 수 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만약에 아이유가 2009년 그해 가을에, 별밤지기를 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아이유가 지금처럼 초대형 가수가 되어있을까? 라디오를 진행하는 재미에 빠져서, 앨범 작업은 게을리하다가 별밤지기로는 상당한 인기를 모으고도, 가수로서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까?


아마도 아이유는 방송인으로도 가수로도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인기를 모았을 것이다. 지금의 아이유가 연기자와 가수 두 영역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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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고공행진 속에 종영을 했던,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서 '장만월'역을 했던 아이유. >


PS. 작년에 아이유가 [김이나의 밤 편지]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피터팬 PD는 아이유의 광팬으로서 아이유와 사진을 꼭 찍고 싶었다. 아이유가 날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그동안 피터팬 PD는, 머리털도 많이 빠지고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한, 50살의 노(老) PD가 되어버렸기에...ㅠㅠ) ‘12년 전 [별밤] 얘기를 꺼내면서, 당시에 고등학생이던 아이유와의 추억 얘기를 하다가, 아이유가 호감을 보이면, 그때 핸드폰 카메라를 쓱 내밀어야지!! '라며 빈틈없는 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는데, 아이유는 ‘어머 피디님 너무 오랜만이에요’라며, 먼저 인사를 하고 사진도 흔쾌히 찍어 주었다! (아이 좋아라~ 나 좋아 죽어요 ㅎㅎㅎㅎㅎㅎ).


역시 내 사랑 아이유는, 갓이유였다!

<사. 랑. 해. 요. 아이유!!>, <아이유 짱, 짱,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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