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도 3대 시장 소라 씨!, 잘 지내나요?-
소라 씨가 내게 친필 사인을 한 6집 앨범을 내밀며, ‘여깄어요’라고 말할 때까지, 피터팬 PD는 ‘눈썹달’이라는 말이 있는지도 몰랐다. ‘눈썹달’ 아! 얼마나 예쁜 말이더냐? 우리말 어휘 중에, 달이 손톱의 끝부분처럼 작아졌을 때인 초승달이나 그믐달을 눈썹달이라고도 한다. 음력으로 월초에 만들어지는, 달의 오른쪽이 눈썹 모양인 것을 초승달, 월말에 달의 왼쪽이 눈썹 모양인 것을 그믐달이라고 한다.
피터팬 PD는, 가수 이소라와 [이소라의 음악도시]라는, MBC FM 라디오의 음악 프로그램을 2003년 가을부터, 2004년 가을까지 연출했다. 이후 [타블로 조정린의 친한 친구]라는 프로그램으로 이동했는데, 이동하고 얼마 안돼, 소라 씨가 6집 앨범 [눈썹달]을 발표하고, [친한 친구] 초대석에 나와주었다.
소라 씨는 친필 사인을 한 앨범을 내게 건넸는데, 눈썹달이라는 말이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다. ‘역시 가사를 직접 쓰는 소라 씨는 앨범 이름도 예쁘게 만드는구나’. 앨범 쟈켓을 보니 월말에 뜨는 그믐달이었다. 그믐달은 곧 사라질 테니, 며칠 뒤에 곧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질 테니, 초승달이 희망을 상징한다면 그믐달은 슬픔과 실연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이소라 6집의 타이틀 곡은 [이제 그만]이었다. 소라 씨의 특장점인 애절한 발라드라기보다, 비교적 쉬운 멜로디의 예쁜 노래였는데, 2004년 당시에 이와 같은 예쁜 느낌의 발라드가 인기를 끌었다. 소라 씨는 [눈썹달] 앨범 중에 어떤 곡이 제일 좋냐고 내게 물어봤는데, 나는 ‘바람이 분다’가 더 좋다고 말했었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 시간은 흐르고 있고 / 나만 혼자 이렇게 / 달라져 있다’라는, 유명한 가사의 이 노래는, 이소라 작사, 이승환([천일동안]의 가수 이승환이 아닌, [THE STORY]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또 다른 뮤지션 이승환) 작곡이었는데, 서서히 달아올랐지만 결국 큰 인기를 얻었고, '이소라'라는 가수가 다시 한번 대가수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게 한 노래였다.
피터팬 PD가 이소라와 [음악도시]를 할 때는, 심야 라디오의 전성시대이기도 했다. 지금보다 밤에 라디오를 듣는 10대와 20대가 훨씬 많았고, 당시에 소라 씨도 5집(첫사랑, 데이트 등의 히트곡이 망라된) 발표로 큰 인기가 있었고, 다시 6집에서도 ‘바람이 분다’ 같은 스테디셀러 곡이 발표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소라 씨가 진행하는 [음악도시]라는 라디오 프로그램도, 청취율이 높게 나왔었다.
MBC 라디오의 FM 스튜디오 구조는, 작은 생방송 스튜디오 안에 PD 1명과 DJ 1명이 같이 들어가서, 2시간 동안 함께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덕분에 그녀의 팬이기도 했던 피터팬은, 소라 씨와 1년 동안 매일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작고 아늑한 스튜디오 안에서 매일 2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당시에 나는 결혼 초기에 큰애까지 막 태어나서, 새벽에 늦게 퇴근을 해도, 다시 동이 틀 때까지, 아이의 젖병을 물리거나,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방송국에 출근해서 2시간 동안 스튜디오 안에 머물 때는 더없이 행복했다.
내가 소라 씨 본인의 노래나, 소라 씨가 좋아할 만한 팝송을 선곡하면, 소라 씨는 스튜디오 안에서,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생방송으로 온에어 되는, 선곡된 노래를 조용히 읊조리 듯 따라 부르곤 했었다. 돌아보면 그런 순간이, 라디오 PD로 25년을 살았던 피터팬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마치 이소라라는 위대한 아티스트가, 피터팬만을 위해서, 작은 생방송 스튜디오 안에서, 작은 목소리의 콘서트를 열어주는 느낌이었고, 나는 소라 씨의 모습을 취한 듯 지켜보곤 했다. 물론 소라 씨가 눈치채지 못하게.
내가 [이주연의 영화음악] 연출하고 있을 때, 당시 FM부장에게 불려 갔는데, 부장은 ‘음악도시로 이동할 수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좋다고 했다. 좋아하는 가수와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연출하고 싶었다.
그런데, 사실 당시에 PD들 사이에서는, '소라 씨가 예민해서 함께 일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피터팬 PD는, 소문 같은 거는 잘 믿지 않는 성격이라서, 소라 씨와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었는데, 나중에 파악해보니, 반대로 소라 씨 입장에서는, 내가 '꼴통 PD'라는 소문이 있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크게 다투기라도 할까 봐, 내게 잘해 줬던 것 같다. 아무튼 까칠한 사람 둘이 만나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면, 무사히 일을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1년 이기도 했다. ^^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최고의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던, MBC FM [음악도시]. 청취자들은 음악도시를 '음도', DJ를 음악도시의 '시장님'이라고 불렀었다. 1대 시장 신해철, 2대 시장 유희열, 3대 시장 이소라에 이어 4대 시장은, 꿀보이스 성시경이 진행했다. 사진 : 성시경의 음악도시 인터넷 홈페이지 >
소라 씨와 함께 했던 [음악도시]는, 피터팬 PD에게 참 각별한 프로그램이었고, 그만큼 기억에 남아있는 일들도 많다. 당시 음악도시 게스트로 참여했던,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 씨는, 몇 해 뒤에 [보통의 존재] 같은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라디오 프로그램 고정 게스트 중 입담이 좋았던 이한철, 심현보, 이후 [나는 가수다]의 음악감독이 된 정지찬, 그리고 [비긴 어게인]이라는 JTB의 음악 프로그램으로 더 유명해진 천재 뮤지션 하림까지 소라 씨가 아니면 모일 수 없을 뛰어난 뮤지션들과 함께 즐겁게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음악도시] 청취자들을 초대해서, 대학로에서 소극장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여행스케치. 정인, 라이너스의 담요, 김범수, 김동률, 박효신 등, 지금은 TV 프로그램, ’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나 섭외할 수 있는 라인업의 가수들과, 의미 있는 콘서트도 할 수 있었다.
소라 씨는 장점이 많은 DJ였는데, 우선 사연 리딩이 매우 좋았다. 심야에 듣기 좋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감동적인 사연을 읽을 때는 청취자의 감성에 울림을 줬고, 재미있는 사연을 읽을 때는, 여러 가지 목소리 연기를 섞어서 큰 웃음을 주는 DJ였다.
특히 초대손님이 나왔을 때 인터뷰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DJ 이소라의 배려심이, 초대손님으로부터 진솔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6개월이 지나자, 소라 씨는 내게도 종종 마이크를 넘겨서, 피터팬 PD가 자주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했는데, 청취자가 듣기엔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질문 같지만, 실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얘기와 대답하기 어려운 얘기 중에서, 나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질문만 했었다. 그녀가 같이 방송을 하는 사람을 얼마나 배려하면서 생방송을 진행하는지 할 수 있는 대목이다.
돌아보면 나의 MBC 라디오 프로듀서로서의 황금기가 바로 [이소라의 음악도시]를 할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음악도시]에서는, 성시경, 윤도현 등 멋진 목소리의 뮤지션들과 [그 남자 그 여자]라는 사랑 에세이를 낭독하기도 했는데, 이 코너의 원고를 썼던 이미나 작가는, [그 남자 그 여자]의 원고를 책으로도 출판했는데,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에 올랐었다.
아직까지도 감성적인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책장엔, 이 책이 한 권정도 꽂혀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소라의 음악도시]의 오프닝은, 등단 시인이자 라디오 작가인 이병률 씨가 써주었다. 이병률 작가는 여행을 많이 다녀서 오프닝을 해외에서 팩스로 보내줬는데, 그 당시 다닌 여행기를 책으로 묶어, [끌림]이라는 책을 펴냈고, 이 책 역시 여행/에세이 분야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소라, 이병률 작가. 이미나 작가, 김재연 작가(지금 KBS 이현우의 음악 앨범 작가)그리고 여러 훌륭한 뮤지션들과 함께 했던, 2003년 가을부터의 1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참고로 소라 씨와 나, 김현철, 윤종신 등은 69년생 동갑내기이다. 하지만 나는 소라 씨와 끝내 말을 트지 못했다. 말을 트면 서로에 대한 존중이 엷어질까 봐 서로 경계했던 것 같은데, 자연스럽게 말을 텄다면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회에 소라 씨에게 말을 한번 터봐야겠다.
소라 씨야! 소라 씨와 함께 [음악도시]를 만들었던 때가, 내게는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는데 소라 씨에게도 그럴까? 17년이 넘도록 소라 씨 생각 항상 했고 연락하고 싶었지만, 음악도시 이후로 소라 씨에게 연락해본 기억이 없네. 혹시라도 소라 씨에게는 소중한 기억이 아닐까 봐 겁이 났어. 아름답던 꿈이 깨지면 속상하니까.
그래도 소라 씨가 우리 큰애 백일이라고 선물로 줬던 은팔찌와, 소라 씨가 내 생일에 주었던 스웨터는 잘 있어. 하지만 나보다 소라 씨를 더 좋아하던 방송작가인 아내와는 결별을 했어. 나도 마음이 많이 아파. 아내와 함께 소라 씨 공연에 가서, 대기실에 있던 소라 씨에게 축하 인사를 하던 때가 내 인생의 화양연화였어.
PS. 음악도시 3대 시장 이소라 님, 당신은 어떤가요?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지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