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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Oct 07. 2020

그래 친구야/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스타가 사랑한 최고의 가사 한 줄. 10 with 김현철(2부)-

한국 대중음악계에, ‘모차르트 뺨치는 신동이 나타났구나!’, 라는 경외심을 갖게 했던, 천재 뮤지션 김현철에게, “강남 8 학군에서 신동으로 명성이 자자했으니까, 어린 시절 시절부터 가수의 꿈을 키워오지 않았느냐?”라고 물었다. 김현철은, 


나는 1989년에 발표한 1집 <춘천 가는 기차>와, 1991년에 발표한 2집
<32℃ 여름>까지만 해도, 음악을 하며 평생 살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대학시절이니까 잠시 음악을 하는 게 아닐까?
뭐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천재들은 얄밉게 꼭 이런 말을 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필자가 살리에르도 아니면서도, 살리에르 증후군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살리에르 : 18세기에 활약했던 이탈리아의 음악가로,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그가 동시대에 살았던 천재 모차르트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일생을 괴로워한 것으로 묘사된다. / 살리에르 증후군 : 비슷한 직종이나 직장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서, 탁월하게 뛰어난 일인자를 보며, 이인자로서 열등감이나 무기력감을 느끼는 현상)      


나 역시 살리에르가 그랬던 것처럼, 폭발하는 질투심을 억누르면서 질문을 이어갔다.

 
“피터팬의 동년 배기 친구, 천재 뮤지션 김현철 님~ 

그럼, 언제부터 뮤지션으로 평생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겁니까?”    

  

3집을 준비하면서부터 그랬던 거 같아요. 물론 2집과 3집 사이에,
영화 OST [그대 안의 블루]의 히트가 자극이 되었던 거 같기도 하고요

겸손하게 답변했던 김현철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다 하더라도, 김현철이 그의 1집 <춘천 가는 기차>에 이어서, 2집에서도 [그런대로], [까만 치마를 입고]등의 명곡을 발표하면서, 젊은 천재 뮤지션의 입지를 탄탄히 굳혔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이후 김현철은, 1993년에 발표한 3집 <횡계에서 돌아오는 저녁>에 수록된, 슈퍼 히트곡 [달의 몰락]으로, KBS [가요톱텐]에서 3위에 올랐고, 스타 뮤지션의 탄탄대로에 진입하게 된다. 이후 1995년에 발표돼, 100만 장 이상이 팔린 [이소라의 1집]에는, 프로듀서 및 [난 행복해]의 작사/작곡가로 참여하면서, 천재 뮤지션의 명성을 더욱더 확고히 다지게 된다.


<퓨전 재즈 뮤지션 김현철의 천재성이 다시 한번 입증된, 3집 [횡계에서 돌아오는 저녁](1993). 이 앨범 속에는, 당시에 국내 가요차트 3위에 올랐던, [달의 몰락]이 수록되어 있다. 사진=김현철 3집 앨범 >


작사, 작곡은 물론 음반 프로듀서로서의 재능도 출중한 화려한 이력의 김현철이, 국내 가요 중 가장 사랑하는 가사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퓨전 재즈 뮤지션의 길을 걸어왔기에, 선배 퓨전 재즈 음악인, [봄 여름 가을 겨울]이나, [정원영]의 앨범 속 노래를 말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김현철은,

       

“... 음.. 그건 좀 깊게 생각해봐야겠는데.. 내가 다시 연락 줄게요...” 

라고, 통화를 한 후, 2주가 넘어서 대답을 주었다.      


한국 포크 음악의 대부, 김민기 선배님의 [봉우리]라는 노래의 가사 중에서, 
" 그래 친구야 /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라는 가사예요. 이유는,
이 노래의 가사는 나를 한없이 겸손하게 만들거든요


천재 뮤지션이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늘 받고 살았던 뮤지션 김현철에 대해서, 피터팬은 이런저런 사적인 기억을 갖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MBC 라디에서 DJ를 진행하던,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봐왔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뿐만 아니라, 주위 PD들의 그에 대한 평판은, ‘참 좋은 사람 김현철’이라는 것이다. 


타고난 천재로서의 뛰어난 음악성을 내면에 갖고 있지만, 주위 사람들을 늘 기분 좋아지게 하는, 편안한 웃음을 갖고 있는 사람. 그런 김현철의 내면에는, 늘 겸손하고자 하는 내적 지향이 있었고, 그런 마음이, ‘좋은 사람, 아름다운 뮤지션 김현철’이라는 인격체를 만들어 온 것이다.    


우리나라 포크 음악의 대부라고 불리는 김민기의 [봉우리]는, 1985년에 양희은의 [새 노래 모음]이라는 앨범에서 처음 발표되었고, 이후 1993년 2월에, [서울음반]에서 김민기의 노래 40여 곡을 모아, 1~4집을 재 발매할 때, [김민기 4]에 다시 수록되었다. 


<1993년 서울음반에서 시리즈로 발매한 [김민기 1,2,3,4] 중, [김민기 4]에는, 1번 트랙 [봉우리]를 비롯해서, [백구], [작은 연목], [천리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모두 한 시대를 관통했던, 역사의 증언 같은 명곡들이다. 사진=[김민기 4] 앨범>


주지하다시피 김민기는, 1971년에 [아침이슬], [친구] 등이 수록되었던 김민기 1집을 발표했지만, 독재 정권으로부터 금지곡으로 지정되었고, 한동안 연행과 감시를 받는 중, 1970년대 중, 후반에, 노동자 야학과, [공장의 불빛], [금관이 예수](오! 주여 이제는 그곳에/양희은) 등의 노래극 활동을 했었다.     

 

하지만, 정부로부터 김민기의 거의 모든 곡이 금지곡 판정을 받고, 앨범이 판금 되었음에도, 노래극 [금관의 예수]의 카세트테이프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전국 거의 모든 대학의 노래패에서는,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 우리와 함께 하소서     


를 부르고 외치며, 어두운 독재와, 엄혹한 탄압의 시대를 버텨내고 있었다. 


약관의 천재 가수 김현철이, 스스로를 늘 겸허하게 돌아보게 한다는, 김민기 작사 작곡의 봉우리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 
작은 봉우리 얘기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
그래도 그때 난 /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
오르고 있었던 거야 /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의 도입부는, 1985년에 양희은이 그녀의 앨범 [새 노래 모음]에서 발표했을 때는, (최초의 노래 제목은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였다) 다소 높은음에, 생기 있는 목소리였지만, 1993년 김민기 전집에 발표된 [봉우리]는, 저음의 사색적인 목소리로 내레이션이 시작하면서, 더욱 큰 감동을 준다.   



1970년대라는 민주주주와 문화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 지금, 

우리들이 서있는 곳은 봉우리의 어디쯤 일까? 

아직 봉우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며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곳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오르고 싶어 하던 바로 그곳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오른 지금 이 봉우리에서, 우리는 어디로 또 올라야 하는 걸까?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
우리 땀 흘리며 가는 /
여기 숲 속의 좁게 난 길 /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          


<김민기의 스무 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1971년에 발매된 [김민기 1집]. 이 앨범은 김민기의 목소리로는 최초로 [친구], [아침이슬]등이 녹음, 발표된 앨범이고, 판매금지를 당하면서, 구하기 힘든 앨범이 되었다. LP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고가에 거래되는 희귀 앨범이다. 사진=김민기 1집 앨범>




* 음악 PD 피터팬은, <스타가 사랑한 최고의 가사 한 줄>이라는 음악 칼럼을, 인터넷 신문사 <한국뉴스>에도 

연재하고 있다. 


http://www.24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20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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