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라디오의 비상(飛上)을 바라며-
제주에 와서 살면서 새벽 별을 보는 일이 많아졌다. 내가(=피터팬 PD) 특별히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제주로 내려오기 직전 심야 생방송 프로그램인, [김이나의 밤 편지]를 연출하면서, 오후 4시에 일어나서 새벽 늦게까지 일을 하던 버릇이 아직 까지 몸에 배어 있어서다. 피터팬 PD가 혼자 살고 있는 제주에서도, 새벽 4~5시를 넘겨 잠이 들기 일쑤인데, 그러다 보면 새벽에 동이 트기 직전, 엷어지는 어둠 속에서, 내일 다시 만나자는 작별 인사를 하며 사라져 가는 별들을 보게 된다.
늘 그렇듯이 동이 트기 직전, 물에 씻겨 나가듯 캄캄한 하늘은 물러가고, 바람이 순식간에 하늘을 덧칠하듯 휩쓸고 지나가면, 동녘 하늘은 진보라와 연남색의 경계 어디쯤에 위치한 빛깔의 세상 속으로 번져 간다. 이 황홀한 새벽의 색채 속에서, 하늘의 총총한 별들은, 도미노 병정들이 쓰러지듯 동녘 하늘에서 시작해, 서쪽 하늘까지 순식간에 밝음 속으로 사라져 가는데, 특히 그믐달 지는 음력 27일쯤엔, 새벽 동녘 하늘에 아주 잠시 머무르다 사라지는 손톱 달을 볼 수 있기에 더욱 신비한 감정이 든다.
새벽 밤하늘의 마술이 펼쳐지는 이른 새벽 시간에, 약수터의 얼음이 둥둥 떠있는 알싸한 냉수 같은 겨울 추위를 느끼며, 방송국으로 출근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서, 때론 눈이 쌓인 길도 마다하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여의도 방송국으로 출근하는 게 힘들기도 했지만, 그 시간이면 늘 머리 위 하늘 정중앙에서 빛나던 '오리온 좌'가, 차디찬 새벽 기온보다 더 눈이 시리게 빛나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겨울에, 그것도 새벽 4시 30분에 출근을 했던 건, MBC 라디오에서 2009년부터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봐도 내 방송 경력에서 가장 자랑스럽던 순간이었고, 또한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가장 부끄럽던 순간이기도 했다.
당시에 MBC 라디오에는, 균형 잡힌 합리적 진보의 목소리를 가진 선배 PD 님들이 여러분 계셨다. 그중 MBC 라디오에서 [지금은 라디오시대], [여성시대] 등 인기 프로그램을 많이 제작했던, 정찬형 PD(현 YTN 사장)께서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2000년에 론칭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진보정권의 시대였기에 프로그램의 탄생과 지속이 가능할 수 있었다.
'언론이 정권을 감시하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최승호 PD의 외침처럼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늘 사회 핵심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당시 집권 세력이었던 진보 정권이 잘못을 했을 때는, 따끔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지만, 회사 경영진이나 외부 다른 권력기관에서 어떠한 압력도 받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에 들어와서는 모든 게 달라졌다. 청와대에서 새로운 임명된 사장은, 정부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에 대한 엄청난 탄압을 가하기 시작했고,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다루려는 아이템과 관련해서도, 사사건건 간섭을 했다. 정의로운 MBC 라디오 PD들이 참다못해 제작거부까지 들어갔지만, 경영진의 말을 잘 듣는 PD로 담당 프로듀서를 교체하는 인사이동을 발령하고 나니, 저항할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앞서 말한 인사이동과 관련해서, 나는 지금까지도 마음 깊이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을 갖고 있다. 정부의 부당한 지시에만 충성하던, 자격 없는 사장이 임명한 당시의 라디오 국장은 나를 만나, ’ 봄 개편에 인사이동을 할 텐데 네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말하라 ‘고 했었다.
그때 피터팬 PD는, 나보다 [시선집중]을 더 훌륭하게 연출할 수 있는 PD들이 많다고 믿었기에, 다른 프로그램으로 이동을 원했는데, 이 일로 인해 오랜 기간 후배 PD들과 등을 지고 살아야 했다. 비겁하게 내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시선집중]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도망가서, 국장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는 엉뚱한 PD가 오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소용없는 변명을 하자면 당시에 [시선집중]은 MBC 라디오의 간판 프로그램이었기에 경쟁력 유지가 MBC에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MBC 라디오에서 시사프로그램을 잘 만들 수 있는 에이스 PD가 아니면 임명하지를 않았다. 그래서 나의 후임으로 당연히 일 잘하고 국장이 부당한 지시를 한다면 당당히 맞설 수도 있는 PD가 배정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순진한 기대였고 [시선집중]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PD가 배정되고 말았다. 이후 [시선집중]은 점점 자기 색깔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결국 이를 참지 못한 손석희 진행자가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정권의 외압으로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서 하차하고, jtbc에서 [뉴스룸]을 진행할 때의 손석희 앵커.
한국 포크 음악의 대부 김민기 씨가 출연했을 때의 [뉴스룸- 문화 초대석]. 손석희 앵커의 인터뷰는, 시, 청취자들의 궁금증을 항상 속 시원하게 해소시켜주었다. 사진 출처 : jtbc 뉴스룸 >
물론 당시에 MBC의 모든 프로그램을, 이명박 정권의 입맛에 맞게 좌지우지하던 백종문 편성국장은,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PD들을 '물품 관리실'이나, 사무실만 있고 업무는 아예 주지 않는 ’ 유령 부서‘로 보내버렸기 때문에, 내가 프로그램에 버티고 있겠다고 해도, 결국 경영진의 말을 잘 듣는 PD를 배정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경영진의 그릇된 결정에 끝까지 저항했어야 하는데, 피터팬 PD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MBC 라디오에서 일하면서 가장 자랑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하면서 정론직필 언론인의 사명을 지키려고 6개월간 노력했던 시간이고, 가장 부끄러운 순간은 국장의 인사이동 유인책에 저항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2000년에 탄생해서, 2013년까지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이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었고, 출근길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던, MBC 라디오의 간판 프로그램이었다. 물론 지금은 교통방송에서 방송되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부동의 청취율 1위를 고수하고 있다.
2013년 당시에 정부와 MBC 경영진이, [손석희의 시선집중] 죽이기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시선집중]은 아직도 MBC 라디오의 대표 프로그램이자, MBC 라디오의 경쟁력 상승을 위해서, 큰 역할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정권에 잘 보이기 위해서 자식 같은 프로그램을 죽이다니, 경영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MBC의 사장을 하고, 부사장을 하고 편성국장을 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은 박근혜 정권에서는 더욱 심해졌고, MBC는 많은 국민들에게 외면받는, 3류, 4류 방송국의 위치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 와중에 jtbc로 자리를 옮긴 손석희 사장은, 모든 국민이 알다시피 [뉴스룸]을 통해서, 합리적 진보의 목소리를 힘 있게 내왔고, 그 결과 '최순실 국정농단'의 진실을 밝히게 되었다.
작년과 올해 초까지 우리나라 보수언론들이, 손석희 사장 죽이기에 몰두했었다. 보수진영에서는 손석희 같은 영향력 있는 진보 언론인이, 우리나라 방송국에 있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테고, 그런 배경에서 손 사장과 관련도 없는 일에 손석희 사장을 연루시키며, 확인되지도 않은 의혹에 의혹을 생산해냈었다. 하지만 보수언론과 보수단체들이 부풀린 억측 중에서 사실로 확인된 게 있는가? 그런데도 뛰어난 진보 언론인이, 우리 사회에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현실은 무척 안타까울 뿐이다.
피터팬 PD가, 2009년 가을 시선집중 PD로 발령 났을 때, 전임 PD는 MBC 라디에서 가장 올곧은 목소리를 내고, 섬세한 감성으로 프로그램 제작도 잘하는, H 피디였다. H 피디는(H 피디는 나보다 2년 후배이지만, 나보다 늘 생각이 깊고 성숙한 사람이었다), ’ 손석희 선배가 위악적으로 굴때가 있는데 그건 진심이 아니니까, 선배가 그런 점을 잘 이해하면서 연출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라고 말해주었던 게 기억난다.
나는 '욱하는 다혈질 기질'이 있어서, 내가 생각해서 아니라고 느껴지는 게 있으면,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면서 발끈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는 걸, H 피디가 잘 간파하고 가장 중요한 핵심을 인수인계해 준 것이다. 당시에 손석희 선배님은, 프로그램에 대한 책임감과 국민에게 사랑받는 좋은 프로그램을 계속 유지해 내겠다는 의지가 너무 강했기에, 연출이나 작가 등 스탭에게, 늘 긴장할 것을 주문했고, 그러다 보니 일상 속에서는 위악적인 면을 보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가정에서 무서운 아빠 역할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손 선배가 후배와 스태프들을 많이 배려하는, 따뜻한 사람이란 걸 금세 알 수 있데 된다.
하지만 손석희 선배님이 MBC를 떠나게 된 것이, 내가 인사발령과 관련해서 국장과 백종문 편성국장에게 저항하지 못한 게 원인일 수도 있다는 부채의식은, 늘 내 가슴에 남아있다. 손 선배님은 시선집중을 떠난 이후, 지금은 jtbc [뉴스룸]에서도 하차한 상태이다. 손석희가 다시 뉴스 앵커의 자리에 당당히 복귀해서, 국민의 목소리와 우리 사회의 숨겨진 진실을 전해주는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언론을 탄압하던 정권이 바뀐 이후, MBC는 PD 수첩을 통해서, 과거를 반성하는 [MBC 몰락, 7년의 기록]을 방영하기도 했다>
PS1. 우리보다 언론의 자유가 많은 미국의 경우, 최장수 뉴스 앵커로 24년간 CBS 메인 뉴스를 진행했던 댄 래더가 있고, 댄 래더 이전에도 20여 년간 뉴스 앵커로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던, 월터 크롱카이트, CNN에서 2003년부터 <앤더슨 쿠퍼의 360°>를 진행하는 앤더슨 쿠퍼 등이 있다. 뉴스는 시청자의 신임을 받는 능력 있는 한 앵커가, 오랜 기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게, 뉴스의 흐름과 핵심을 시청자에게 정확히 잘 전달할 수 있어서, 뉴스 프로그램의 건강한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PS2. MBC 라디오에서는 [손석희의 시선집중] 후임으로, 중간에 여러 진행자를 기용했지만, 경쟁력 회복에는 실패했었고, 지금은 [김종배의 시선집중]이 방송되고 있다. 내가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별 탈 없이 연출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줬던 H 피디가 연출을 맡고 있는데, ’ 명 PD와, 뛰어난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김종배'라는 조합‘이, 분명히 MBC 라디오의 [시선집중]을, 다시 대한민국 최고의 경쟁력 있는 시사프로그램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게 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