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코도 없고, 혀도 없고,
몸도 없고, 뜻(마음)도 없으며,
색(형상)도 없고, 소리도 없고,
향기도 없고, 맛도 없고,
촉감도 없고, 법(정신적 대상)도 없느니라.
반야심경은 이제
우리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경험의 층위로 사유를 확장합니다.
지금까지는
몸(色), 느낌(受), 생각(想), 의지(行), 의식(識)의 공성을 설했습니다.
이제는 감각기관과 인식 대상마저 공하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매우 심오한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감각을 통해 경험합니다.
눈으로 보고(眼),
귀로 듣고(耳),
코로 맡고(鼻),
혀로 맛보고(舌),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身),
마음으로 생각하고(意).
그리고 그것을 통해
형상(色), 소리(聲), 향기(香), 맛(味), 촉감(觸), 정신적 대상(法)을 인식합니다.
그러나 반야의 지혜는 말합니다.
"그 모든 것들 또한 공하다."
초기경전에서도
감각기관과 인식 대상의 공성을 깊이 설합니다.
《잡아함경》에서 부처님께서 설하십니다.
"비구들이여, 眼(안)과 色(색)은
조건 따라 생기고 사라지느니라.
耳(이)와 聲(성), 鼻(비)와 香(향),
舌(설)과 味(미), 身(신)과 觸(촉),
意(의)와 法(법) 또한 그러하니라."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감각기관과 그 대상 모두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연기에 의해 생겨난 흐름일 뿐입니다.
《상응부》에서도 설합니다.
"비구들이여, 眼(안)으로 色(색)을 보되
거기에 고정된 나를 보지 말라.
그 모든 것은 인연 따라 나타난 것이니라."
그러므로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은 "감각기관과 대상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본래부터 고정된 자성(自性)이 없고,
공한 흐름으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금강경》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합니다.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만약 色(형상)으로 나를 보거나
聲(소리)로 나를 구하려 하면
그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자이니
여래를 볼 수 없느니라."
형상과 소리,
그 모든 감각적 경험에
고정된 실체를 두려는 마음에서 벗어나야
참된 지혜에 이른다는 가르침입니다.
중국 선종에서는
이 통찰이 수행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육조 혜능은 설합니다.
"若知六根皆空,
六塵自靜."
(약지육근개공 육진자정)
"여섯 근(眼耳鼻舌身意, 감각기관)이 모두 공함을 알면
여섯 진(色聲香味觸法, 감각 대상)은 스스로 고요해지느니라."
고려시대의 지눌국사도 《권수정혜결사문》에서 설합니다.
"감각기관에 걸림이 없는 이는
형상과 소리에 속박되지 않느니라.
그 마음이 고요하고 자유로우니라."
그렇다면
이 가르침은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우리는
감각에 매우 쉽게 끌립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집착이 일어나고,
불쾌한 것을 보면
미움이 일어납니다.
좋은 소리에 빠지고,
불편한 소리에 짜증이 납니다.
맛있는 것을 탐하고,
불쾌한 감각을 피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반야의 지혜는 말합니다.
"그 모든 감각기관과 대상도 공하다."
그들은
잠시 인연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는 흐름일 뿐입니다.
《중아함경》에서도 부처님은 설하십니다.
"비구들이여, 감각을 고요히 바라보라.
그대가 거기에 나와 나의 것을 두지 않으면
마음은 자연히 평안해지느니라."
오늘 하루
감각적 경험에 휘둘릴 때
잠시 멈추어 이렇게 속삭여 보십시오.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코도 없고, 혀도 없고,
몸도 없고, 뜻도 없으며,
형상도 없고, 소리도 없고,
향기도 없고, 맛도 없고,
촉감도 없고, 법도 없느니라.
그렇게 보면
감각적 욕망과 미움이
조금씩 녹아내릴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감각의 그물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고요한 하루를 살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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