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열대와 제주도].6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이름을 바꿀 뿐이다— 제주의 겨울과 말해지지 못한 시간들

by 이안

"나는 문명의 시간이 멈추는 곳에서, 새로운 감각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다."
—『슬픈 열대』 제4장, p.61



레비스트로스는 브라질의 심층부, 달력도 시계도 무의미해진 밀림 속에서 이 깨달음을 얻었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감각은 뒤집히며, 말은 더 이상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었다. 그는 문명 바깥의 침묵 속에서 자신이 놓쳐온 감각의 처음을 다시 느꼈다. 사라짐이란 잊힘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의 탄생이었다.


제주의 겨울 바다는 그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표선의 해변을 따라 걷고 있었다. 바람이 해안가 돌담을 가르고, 철 지난 카페의 창문에는 먼지가 내려앉았다. 말하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해 겨울은 단지 조용히 다가와 조용히 물러갔다. 아니, 물러간 게 아니라, 내 안에 남았다. 말이 되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것들의 기척은 언제나 남아 있다. 다만, 그것을 알아보는 감각이 필요하다."

—『슬픈 열대』 제5장,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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