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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Oct 02. 2020

'디스(Disrespect)'의 대마왕,
쇼펜하우어

서평 <회의주의자 쇼펜하우어, 모욕의 기술 / 문정희 옮김, 위즈덤하우스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를 묘사한 삽화를 보면, 심통쟁이에다가 고집불통의 할아버지로 그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쇼펜하우어는, 세상사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트집’을 잡아 비판했고, 심하면 비판을 넘어서, 조롱과 욕지기에 가까운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국내에서 출간된 [처음 읽은 서양 철학사 / 안광복 저, 어크로스]에서, 쇼펜하우어를 우스꽝스럽게 그려낸 삽화를 보고 있는데, 쇼펜하우어가 파리채를 들고, 주위에서 윙윙거리는 파리들을 심통 맞은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실제로, 당대 최고의 철학자였던 헤겔을 비롯해서, 피히테, 셸링 등의 인기 학자들을 싸잡아 비판했는데, 자기와 동시대에 살면서 인기를 끌던 학자들을, 파리라도 되는 듯 여기면서 파리채를 마구 휘둘러댔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최고의 철학자로 칭송받는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을 비롯해서 쇼펜하우어의 파리채 맛을 본, 수많은 학자들이, 그 파리채에 맞아 쓰러졌나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여전히 건재하고 쇼펜하우어는 현재까지도, 그리 높은 등급의 철학자로 점수 매겨지지는 않고 있으니까.         

 

- < 삽화 :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 안광복 저, 어크로스> -     


쇼펜하우어의 헤겔에 대한 신랄한 비판 한 대목을 <회의주의자 쇼펜하우어, 모욕의 기술>(문정희 옮김, 위즈덤하우스)에서 살펴보자     


‘헤겔 : 종이를 허비하고, 시간을 낭비하고, 머리를 망치는 인물. 독일에서는 역겹고 우둔한 협잡꾼이고, 전례 없는 망나니인 헤겔을, 역대 최고의 철학자라고 집요하게 알릴 수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20년 이상 요지부동으로 그렇게 믿어왔다. 그러나 만일 이 자격 미달자를 치켜세우기 위해, 서로 결탁한 저널리스트 패거리, 봉급쟁이 헤겔파 교수들, 또 그 자리에 연연하여 애간장 태우는 대학 강사들이, 워낙 평범한 인물이면서도 유별난 협잡꾼인 헤겔을, 전대미문의 철학자로 추대하며 뻔뻔스럽게 사방으로 끈질기게 알린다면, 이를 한 치도 염두에 둘 가치가 없다........‘     


‘헤겔, 젊은이를 망치는 인물 : 다른 궤변론자들과 협잡꾼들과 반동주의자들이, 인식을 날조하고 망치는 정도로 그쳤던 반면, 해결은 인식의 핵심인 이성 자체를 망쳐 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속되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자기모순들로 얽힌 이론, 정신병원에서나 들리는 횡설수설을 이성의 인식으로 받아들이라고 권하며, 미약에 약한 젊은이들을 무리하게 몰아갔다. 그의 글에 흠뻑 빠져, 그것을 최고의 지혜로 소화하려 애쓴 저 가엾은 젊은이들의 머리는, 결국 망가져서 올바른 사리 판단력을
모두 상실했다.......’     
‘헤겔주의 : ’ 존재는 무(無)‘라는 말을 근본 명제로 삼는 철학은, 정신 병원으로 실려 가야 할 것이다. 독일만 빼고 딴 데서는 모두, 이 철학을 일찌감치 거기에
가두었을 것이다.’     


만약에 쇼펜하우어가, 21세기 미국이나 한국에서 살고 있다면, 디스 (Disrespect - 무례 : 상대방의 허물을 공개적으로 공격해 망신을 주는 힙합의 하위문화를 일컫는다. 힙합 장르에서 랩을 통해 서로를 비난하는 행위로, 래퍼들 사이에서는 디스전을 통해 서로의 인지도를 올리는 홍보효과를 누리기도 한다. 한편 디스를 당한 상대방이 이를 맞받아치는 것을, 맞 디스라고 일컫는다.)의 왕(王)이자, 속사포 래퍼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쇼펜하우어가 헤겔을 비난하기 위해서 쓴 위 문장에서, 헤겔의 이름 대신, 본인이 욕하고 싶은, 직장 내 갑질 상사, 한심한 정치인, 염치없는 사람들의 이름을 넣으면,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데에는, 만병통치약처럼 쓸 수 있는 ‘명문장’이다.  


오늘 서평을 쓰는 [모욕의 기술]은, 쇼펜하우어의 많은 글 중에서, 그가 신랄하게 비난하고 풍자했던 글만 모아둔 책이다. 책의 목차를 보면, 사전처럼 ‘ㄱ’부터 ‘ㅎ’까지 단어들을 나열하고 있는데, ‘강단 학자, 개인, 거짓말, 결혼, 교수’ 등의 ‘ㄱ’ 항목에서부터, ‘하얀 피부, 허영심, 희열’ 등 'ㅎ' 항목에 이르기까지, 세상 모든 것에 대해서 쇼펜하우어가 보여줬던, 매서운 ‘파리채’ 맛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몇 개의 예를 더 들어보자.      


결혼 : 감은 눈을 동여매고 뱀이 우글거리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는, 뱀장어가 한 마리 잡히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결혼한다 : 이것은, 남녀가 서로 혐오하는 사이가 되려고 궁리하는 것이다. 모두 알다시피 행복한 결혼은 드물다

교수직 : 대체로 교수직으로 받아먹는 사료는, 축사에서 되새김질하기에 적합하다

남의 생각 : 오직 자기 생각만이 진실하고 살아 있다. 사람은 오로지 자기 생각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 쓰인 남의 생각은, 정말 형편없는 엉터리이다

모세 : 신이 세상을 창조한 다음에 이를 다시 보고는, 모든 게 좋다고 느꼈다고 한다. 모세는 이 말을 자주 기록했다. 옛날에는 신이 분명히 별로 까다롭지 않았나 보다! 솔직히 말해 모세가 기록한, ’항상 좋고 영원히 좋다 ‘는 말이, 끔찍한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는지 한 말씀해 보시구려!

여자, 거짓말, 위장술 : 먹물 속에 곧잘 몸을 숨기는 오징어처럼, 여자는 걸핏하면 위장술을 쓰며 거짓말 속을 헤엄쳐 다닌다      

 출생 : 유일한 행운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친구 : 친구들은 서로 솔직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적대자가 그렇다 


이처럼, 쇼펜하우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염세주의적인 시각으로 조롱하고 헐뜯고 비관했다. 특히 여자에 대해서 쇼펜하우어는, ’ 여성을 비하‘하는 말을 많이 했는데, 그건 아버지의 자살과, 어머니에 대한 증오로 여성관이 극도로 비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쇼펜하우어는 아트만(고대 인도철학에서 나오는, 절대 변치 않는 가장 내밀하고 '초월적인 자아'를 말한다.), 이라고 이름 지은 애완견 한 마리와 함께,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애완견의 이름이 아트만인 것은, 쇼펜하우어가 인도철학에 심취했었기 때문이다.      


<삽화 : 쇼펜하우어가 또 무슨 일로 화가 났다보다. 안경을 벗고 짜증을 내려고 하니까, 옆에 있는 마음씨 착한 칸트가 달래고 있다. "진정해~ 쇼펜하우어. 분노가 치밀 때는, 내가 쓴 책 [순수 이성 비판]을 읽어보라고! 너무 어려워서 잠이 올 거야 ~~>


쇼펜하우어는 말년에, 점점 더 우울해져서 공포와 망상에 사로잡혀 살았다. 이발사가 면도칼로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고 생각해, 절대로 면도를 하지 못하게 했고, 잘 때도 권총을 옆에 두고 잤다는 등의 엽기적 행동들은 유명하다.     


철학박사인 안광복 선생은, 위에서도 언급한 그의 저서, [처음 읽은 서양 철학사]에서, 쇼펜하우어의 이와 같은 염세주의에 대해서,      


‘... 인간에 대한 극도의 혐오는, 역설적으로 인간이면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높은 기대치에서 나온다염세주의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비판 정신에 바탕을 두어야만 의미가 있다숱한 비난과 조롱에도, 쇼펜하우어는 단순한 기인이 아닌현대 사상과 문명에서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철학자로 언급되고 있다그것은 그의 사상 내면에 깊이 깔린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신뢰 때문이다...’      


라며 애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피터팬 PD의 생각은 좀 다르다. 

쇼펜하우어는 당대의 최고 인기 학자였던 ‘헤겔’에 대한 불타는 질투심과, 늘 파티를 즐기던 예술가 어머니에 대한 증오, 그리고 자기보다 인기 많았던 주위의 모든 학자들에 대한, ‘열등감의 반발 작용’으로 생긴, 과장된 오만으로 일생을 살았던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나에게 독일 관념 철학을 완성한 칸트와 헤겔, 그리고 그들의 위대한 그늘 아래에서, 늘 ‘투덜이 스머프’처럼 지내야 했던, 쇼펜하우어 중, 누구를 가장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쇼펜하우어를 택하겠다.      

세상에는 언제나 칸트와 헤겔과 같은 1등이 있었다. 
인류는 항상 경쟁을 해왔으니, 누군가는 1등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럼, 그 나머지는?
나머지 모두는, 1등이 아니다. 
그러니, 나머지 모두의 불평, 불만을 시원하게 한 방에 날려버릴,
‘통쾌한 카타르시스의 미학’을 얘기하는 철학자도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철학계의 '투덜이 스머프' 쇼펜하우어. 그가 염라대왕 앞에서도 하도 투덜거려서, 염라대왕이 편두통에 시달렸다는 소문이 있던데... 아무렴 어떠랴? 피터팬 PD 같은 세상 모든 '루저'들을 위해서, 가장 든든한 변호인이 되어줬으니, 그는 아마도 천국에 있을 것이다.>


  

PS1. 칸트와 헤겔 등 독일 관념 철학자들과 이들의 사상을 비판하고 나온, 사르트르 등의 실존주의 철학자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이후 좋은 책을 발견하면, 새로운 서평을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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