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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Oct 06. 2020

노자, 그는 말했다.

-[도덕경]은 지금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피터팬 PD가 대학시절 다녔던 문학동아리에는, 고려대학교 중문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얼굴도 잘생기고 인품도 훌륭한 믿음직한 인재가 한 명 있었다. 그 후배는 지금은 우리나라의 모 대기업에서, 중국 시장을 담당하느라 오랜 기간 상하이에 체류하고 있다.    

  

며칠 전에 그 후배에게, [노자타설(老子他設)](남회근 저/부키)이라는 책의 표지를, 사진 찍어서 톡으로 보내면서, 이 책의 서평을 쓰고자 한다라고 했더니, 후배는 답 톡을 보내기를,,     


-선배님, 왜 그런 책을 읽으십니까?라고 묻는 거였다.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만에서 오랜 세월 활동했던 남회근은, 1918년 중국 저장성 태생으로, 어린 시절부터 문학, 서예, 의약, 역학, 천문 등을 공부한 대학자이다. 1942년부터는 불교에 심취했고, 1950년 대만으로 건너간 후로는, 일반인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유/불/도가 사상에 관한 많은 강연과 저술활동을 했다.  

    

남회근은 4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는데, 국내에서는 [부키] 출판사에서, 그의 저작선을 출판하고 있는 중이다. 남회근은 [노자타설]이라는, 두 권짜리 도덕경 강의 집도 출간했는데, 중국 역사 속의 인물들을 풍성하게 예시로 들면서, 도덕경의 뜻을 풀이하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을 번역한, 서울대 중문학과 박사 출신의 설순남 선생의 번역이 매끄럽다.        

   

노자의 [도덕경]과 관련해서는, 많은 학자들의 각기 다른 해석이 있지만, 남회근의 저서는 ‘노자를 너무 신비 주의화하지도 않았고, 왕필의 노자 본, 원문 그대로의 자구 해설에 충실한, [도덕경]의 교과서 같은 책’이라고 할만하다.


왕필의 얘기가 나와서 첨언하자면, 왕필(王弼)(226~249)은 중국 [삼국지] 속의 조조가 세운, 위나라 태생의 

천재 학자였다. 23살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요절했지만, 왕필이 그의 나이 16세에 주석을 달았다는, [왕필 본 도덕경]은, 이후 1,800년 동안, 학자들과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읽어온, 도덕경 해설의 메인 판본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1974년에, 중국 한나라 이전에 조성된 무덤 마왕퇴에서 발견된,
[노자](통칭 '백서본'), 그리고 1993년에 후베이성 징먼시 궈뎬촌(곽점촌)에서,
전국시대 말기 초나라 무덤(기원전 3세기 초 이전) 곽점에서,
대나무(=죽간)에 쓰인, [노자]의 사본이 발견되면서, 왕필의 도덕경 판본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생겼고, 이와 관련된 학계의 논의는 상당히 뜨겁다.    
  

<1973년에 발굴된 노자 [도덕경]의 백서본. 백서본 발굴 이후, 왕필의 도덕경 해석과는, 다른 해석의 

[도덕경]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대만의 대학자 남회근은, 왕필의 판본에 의지해서 [노자타설]을 기술하고 있다. 남회근은, 1973년과 1993년에 새로 발굴된 [노자] 판본이 아니더라도, 노자가 본래 전하려는 뜻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다고 판단하는 학자에 속한다.   

   

얘기가 옆으로  샜는데, 다시 후배와의 카톡 얘기로 돌아와서, ‘선배와 그런 책을 왜 읽으십니까?’라는 질문에 피터팬 PD는,      


-응,, 철학책 읽는 게 취미야~라고 톡을 보냈고, 후배는 다음날 내게 다시 회신을 보냈는데,

- 중국 철학에는 애매모호한 게 많아서요, 저는 중국 철학을 비판하는 책을 저술 중입니다.라고 말하는 

거였다.      


오랜 세월 중국 문헌을 공부해온 후배는 아마도, 중국의 도가사상과 관련된 철학적 사유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이었나 보다. 피터팬 PD가 생각하기에도, 노자의 사상과 [도덕경]을, 너무 신비 주의화하는 측의 주장을 들어보면, 황당무계하거나, 말이 안 되는 허언처럼 들리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후배의 정확한 의도는 필자도 잘은 모르겠다. 후배가 저술하게 될, 중국철학을 비판한 책이 나오면, 서평을 쓰면서 읽어봐야겠다)     


후배의 얘기를 듣자, 나 역시 오래전부터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노자의 [도덕경]과 관련한 해석에 대해서, 나름의 입장을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중국 철학의 큰 스승인 대만의 노회근 선생의 저작 [노자 타설]과, 국내에서는 EBS <인문학 특강>에서 노자 강의를 했던 서강대 최진석 교수의,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두 권을 비교하면서 읽어 보았다. 


<부키 출판사에서 몇 해 전부터 지속적으로 출간하고 있는, [남회근 저작선]중 노자타설(좌). 위즈덤 하우스에서 발간한 최진석 교수의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이번 글은 1973년의 백서본 이후의 도덕경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최진석 교수의 책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과, 도덕경에 대한 전통적이고 대중적인 해석을 풀이하고 있는 남회근의 [노자타설]에 대해서 고찰하고, [도덕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가에 관한, 피터팬 PD의 생각을 들려주고자 한다. 때문에 [도덕경] 전체를 다루지는 않겠고, [도덕경]을 둘러싼 두 가지 흐름의 차이에, 주목하고자 한다.      


국내에서 EBS 특강을 통해서 큰 인기를 끌었던, 서강대 철학과 최진석 교수의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은, 노자의 사상과 관련해서 상당히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최교수만의 창의적인 방식일 수도 있겠고, 1973년 백서본 판본이 나온 이후, 도덕경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했던 학자들의 의견이 반영된 걸 수도 있겠다.      


우선 서강대 최진석 교수는,      


‘노자의 사상이, 중국 철학적 사유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반영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노자도 그의 시대가 낳은 아들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면서, 결코 역사성을 초월한 신비로운 도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노자가 말한 도는, 신비스러운 우주의 기원이거나, 깨달음의 절정으로서 나온 것이 아니다.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철학적 사유가 빚어낸 관념의 정화이다 

라고, 최교수는 말하는데, 이어서, 

‘철학이라고 해서 역사나 과학을 반영하지 못하면 허언이 될 수도 있다’며,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노자 철학의 탄생 과정을 비롯해 현대사회에 필요한 인문적 사고의 힘을 기르는 방법을 흥미롭게 풀어’ 가고자 한다.  

     

최교수는 이런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노자의 [도덕경]에 관한 해석 역시, 절대불변의 진리가 있는 게 아니고, 지금 현재를 사는 21세기 인류에게, 과연 ‘노자의 생각하는 힘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관해서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자의 사상을 종교화한, 도교를 믿는 사람들이 드물지만, 다른 중화권 나라에서는, 도교 사원이 상당히 많이 있다. 이런 이유로 노자의 사상은 신비 주의화되기도 한다. 사진 : 소를 타고 있는 노자의 동상 >


이어서 최 교수는, 

‘도덕경은 노자가 세상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바로 세계가 관계로 되어 있다고 본 것이다. 노자는 이것을 유무 상생(有無相生)이라고 말했다.’
라고 말하면서, 그의 이번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 중의 하나인,
‘노자의 도를 실체로 해석하면 안 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특히 노자의 '도' 사상 속의, 도는, 본질이 아님을, 공자의 사상과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있는데,    


‘천명(天命 : 신의 명령) 론을 극복해, 인간의 길을 건립하려고 했던 대표적인 철학자로, 노자와 공자가 있다. 이들은 중국에서 최초로 투명성과 객관성 그리고 보편성이 확보된 인간의 길, 즉 도를 건립하려고 노력했는데, 

각자가 갖고 있던 영감의 원천이 달랐던 까닭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길을 그렸다. 공자의 경우 혁명적인 선언을 하기까지 이르는데, ’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인간 자신에게 있다!‘    

 

’ 공자 이전의 사람들은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바로 하늘의 명령 때문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공자는, 그런 믿음을 과감히 거부하고, 인간이 인간인 이유를 인간 자신에게서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인(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간으로 존재한다고 말한 것이다 ‘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공자와 노자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발생하게 되고, 최진석 교수는 바로 이런 이유로, 노자 철학에 기대어, 공자의 사상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EBS 인문학 특강을 진행할 때의 서강대 철학과 최진석 교수 >


’ 공자의 논어 인연 편을 보면, <예에 맞지 않으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며, 움직이지도 말라>고 말했다. 공자의 예는, 전체 사회가 모두 따라야 하는 보편적인 기준이다. 이 기준을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 공자가 건설하려고 했던 인간의 길이다. 하지만 노자는 이 점을 공격한다 ‘    

 

이이서 최교수는 서양 철학자 푸코의 말을 인용하는데,     


’ 푸코는 본질이나 중심을 기반으로 형성된 철학에서는, 그런 것들이 기준이 돼, 결국 이 사회를 구분하고, 배제하며, 억압하는 권력으로 군림한다고 말한다.
공자가 말한 인간의 길도, 결국은 구분, 배제, 그리고 억압이라는
부정적 결과를 피해 갈 수 없다 ‘     


공자처럼, 인 의 예 지 등의 기준을 앞세우면, 그건 차별과 억압을 낳게 된다는 뜻이다. 반면, ’ 노자에게는 모든 가치는 중립적‘이다.라고 최교수는 설명한다. 


그럼 공자와 노자의 사상을 좀 더 깊게 파헤쳐 보면서, 21세기의 현대사회에서, 공자와 노자가 벌이는 본격적인 전투(?)에서 누가 승리하는 게 되는지,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하는, 숨 가쁜 경쟁이 늘 상존하는 현대의 직장인들에게, 살 길을 열어주는 철학은 누구의 사상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공자와 노자의 만남 >

  

------------(노자의 도덕경 서평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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