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세계사 1.2/J.M. 로버츠, O.A베스타/까치]
“... 페르시아 전쟁은 미칼레 전투 이후, 30년 동안 이어졌지만, 그 자체로서 보다는, 보다 중요한 사태의 배경으로서 의미를 가졌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첨예한 대립이 그것이다. 스파르타인은 생존이 확실해지자, 한숨을 돌리고 자신들의 헤일로타이 노예에 대한 걱정으로 귀환해 버렸다. 그 결과 페르시아인의 압제에서, 다른 폴리스들을 해방하는 과업을 추진하려던 나라들에게, 아테네는 확고한 지도자가 되었다. 페르시아에 대항하여, 싸울 공동의 함대를 유지하지 위해서, [델로스 동맹]이라고 불리는 연합체가 탄생했고, 그 지휘권은 아테네에게 부여되었다...
이후 동맹은 점차 아테네 제국으로 변했다.... 동맹의 절정기에는, 150개 이상의 국가가 아테네에게 공납금을 납부했다. 스파르타는 국내의 노예 반란 문제가 늘 골칫거리였기 때문에, 아테네가 대외적인 책임을 맡는 것에 대해서 초기에는 만족했다. 하지만 스파르타 역시, 다른 국가들처럼 조금씩 상황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그들이 눈치챘을 때는 이미, 아테네의 헤게모니가 그리스 국가들의 내정에 영향을 끼치는 정도가 급격히 증가해있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아테네의 제국주의적인 압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아테네의 [델로스 동맹]에 대항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결성되었고, 이들은 기원전 460년부터~기원전 404년까지 27년간의 전쟁을 이어갔다...”
“... 제국주의는 아테네인 사이에서 진정 인기가 있었다. 그들은 제국의 수익에서
한몫을 기대했고, 제국이 짊어져할 부담은, 질 필요가 없다고 기대했다...
아테네의 민주정은, 어떤 제도 보다도 더, 친족의 정치적 유대에서 인간을
해방시켰고, 이는 그리스가 이룬 가장 위대한 성취이다...”
2. “...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와중에 스파르타는 확고한 승리를 위해서,
적국인 페르시아의 원조를 구하게 된다. 그 대가로, 소아시아의 그리스 폴리스들이 다시 한번 페르시아의 속국이 되는 것을 비밀리에 묵인했다. 이를 통해 스파르타는 함대를 조성했고, 중요한 해전에서 아테네를 패배시킬 수 있었으며, 아테네의 제국주의적 지배를 떨쳐버리고자 했던, 폴리스 도시국가들을 도울 수 있었다... “
3. ”... 이미 기원전 8세기에, 아테네의 토기 제작 기술로 볼 때, 폴리스들 사이에서 아테네는 상업과 예술의 선도자로서의 자질을 가졌다. 그리스산 제품들 중에서,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는, 아테네의 주된 수출품이었고, 덕분에 부실한 경작지에도 불구하고, (아테네는) 충분한 곡물을 보유할 수 있었다...
전쟁 전에 그리스 문명은 이미 상업과 예술이 부흥했고, 화폐경제가 도입되면서,
물물교환경제에서는 성취할 수 없었던, 급격한 자본의 축적까지 가능했었다.
이처럼 경제적으로 활력을 띠고, 상호 교류가 활발했던 아테네의 폴리스 시민들은 에게해에서 가장 진보적인 정치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당시에 그리스산 제품들은 멀리 스웨덴에서도 나타났고,
기원전 6세기 바이에른의 요새에서도 그리스 양식이 드러난다.
하지만, 토지에만 의존하는 가장 보수적인 경제체제를 갖고 있는 스파르타는,
역시 가장 보수적인 사회구조와 정치체제를 유지해왔다... “
로버츠 교수는 역사를 상술할 뿐만 아니라 이를 전해준다 :( [세계사, 1], 11페이지, 4번째 줄)
Roberts does not just recount history, he tells it; he presents the great outline of human development without losing track of the big stories that drove it forward.
로버츠 교수에 대한 헌사에서, 원문의 recount와 tell의 구분을, 단순히 상술한다, 전해준다라고 번역한 것은 아쉽다. 원문에서 recount는, 역사적 사실의 단순한 나열을 의미하고, tell은 역사의 의미를 함께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 중 몇몇은 에게 해로 귀환했을 것이고, 새로운 사상과 인상을 가져왔을 것이다 ([세계사, 1] 219페이지, 17번째 줄)
Some of these men must have returned to the Aegean, bringing with them new ideas and impressions.
*원문의 impressions을 ‘너무도 정직하게’, 인상이라고 번역한 것 역시 아쉽다.
그러나 그리스 사상은 그토록 중요한 역사적 잔여물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의 어떤 문명들보다 더 강조점과 경향에서의 변화를 반영한다. (243페이지, 1번째 줄)
But in spite of such important historical residues, Greek thought, more than that of any earlier civilization, reflected changes of emphasis and fashion.
이와 같은 어색한 번역은, 이 책의 전반적인 개성(?)인데, 특히 원문의 residues를, 잔여물이라고 번역한 것도 많이 아쉽다. 원문에 residues는 그리스인들이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을 의미한다.
“... 더 오래된 문명들의 큰 강 유역과 같이, 그러나 또 다른 이유에서 에게 해는 문명의 형성에 적합한 장소였다...” [세계사 214P. 넷째 줄/ 까치]
Like the old river valleys – but for different reasons – the Aegean was a propitious place for civilization-making.
(* [또 다른]을 [또다른]이라고, 우리말 띄어쓰기가 틀린 것도 아쉽지만, 영어문장에서 ‘-(대시)’가 사용된 문장을 위처럼 번역하는 것도 아쉬움이 든다.
그러나 그리스인은 무엇보다 시인이며 철학자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들의 업적 중 우리의 관심을 끄는 핵심적인 것은 바로 정신의 성취이다 (235페이지, 5번째 줄)
Yet in the end the Greeks are remembered as poets and philosophers; it is an achievement of the mind that constitutes their major claim on our attention.
영어에서 ;(세미콜론)을 위의 번역처럼 ‘그리고’라고 번역하면 안 된다. 이렇게 번역하면, 앞 문장 즉 ‘시인이며 철학자로 기억된다’와, 뒷 문장의 연결이 단절된다. 원문의 뜻을 살리려면, "... 시인과 철학자로 기억된다. 이점이 바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그리스인의 정신적 성취이다"라고 번역해서, 뒷 문장이 앞 문장을 부연해서 설명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