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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Oct 05. 2020

인문학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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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팬 PD가 어렸을 때 봤던 TV 해외 시리즈 중에, [Voyager]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한 소년과 그 소년의 삼촌 나이뻘이 되는, 남자 주인공이 타임머신 기능이 있는 나침반을 갖고, 과거와 현대를 왔다 갔다 하면서, 역사적인 사건이 꼬이는 것을 해결하는 거였다.      


한 번은 소년이 과거로 돌아가서, 히틀러 같은 악당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어 했으나, 역사를 바꾸면 안 된다는 원칙 때문에, 울면서 현재로 다시 돌아온다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이 TV 외화시리즈에서는, 매 위험의 순간마다, 세계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소년 덕분에, 역사가 바뀔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무난하게 해결하게 된다. 아마도 필자가, '세계사를 열심히 공부하면, 상당히 유익하면서도 재미있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건,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에 겪은 사소할 수도 있는 경험이, 한 사람의 일생에 좋은 영향을 미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지는 못했지만, 일반인 자격으로, 늘 세계사와 한국사에 관심을 갖고, 관련 서적을 탐독해왔다. 특히 세계사와 관련해서는, 새로운 신간이 나올 때마다 주의 깊게 지켜봤었다.      


국내 출판계에서는 최근 10년 사이에, 일본 책을 번역한, ‘하룻밤에 마스터하는 세계사/동양사/중국사’등의 책이 많이 나왔었고, 독일 저자의 책을 번역한, ‘교양과 상식으로 읽는 유럽의 역사 /미국의 역사/’ 등의 책도 마치 유행처럼 많이 출간되었다. 이런 류의 책은 쉽게 읽히고, 세계사 속 흥미로운 사건을 위주로 서술했기 때문에, 세계사에 입문하려는 초심자에게 많이 팔릴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초심자의 단계를 넘어, 세계사 공부의 중급자 코스로 넘어가려고 하면, 그에 걸맞은 적당한 서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세계사 관련(철학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서적은, 초심자를 위한 대중적인 책에서, 갑자기 점프를 해서, 대학 전공 서적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탄탄한 중급자 층이 형성되기 어렵다.      


사정이 이러한 데에는 어려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출판사의 입장에서 보기에, '중급자용 세계사 책에 대한 시장이 수요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출판해봤자 팔리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크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인문학 열풍이 불기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되어가니, 역사/철학/미학 등에서 중급자를 위한 양서들이 꾸준히 출간되어야 인문학 열풍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와중에, 중급자 역사 마니아들을 위한 책을 오랜 세월 꾸준히 내온 출판사가 있는데, 바로 도서출판 [까치]이다. 386세대는 까치를, 사회과학 서적을 내던 출판사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88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해서, 오늘날의 피터팬 PD가 있기까지, 출판사 [까치]에 빚진 게 많다고 생각한다.      


특히 역사 분야에서 까치 출판사는, 중국사, 서양사, 미국사, 중동사, 일본사, 세계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해외의 양서를 꾸준히 번역 / 출간해오고 있는데, 이렇게 ‘잘 팔리지 않는 수준 높은 좋은 책’을, 계속 출판해도, 출판사가 문을 닫지 않고 계속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이다.(아마도 까치의 양서들은 일반 대중은 물론, 대학교재로도 쓰임새가 많기 때문에, 출판사가 영업을 계속해오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계사와 관련해서, 중급자를 위한 책을 오랜 기간 찾아오다가 발견한, 너무나도 좋은 책은 바로, [세계사 1,2 / J.M 로버츠, O.A 베스타 / 까치]이다. 이 책은 피터팬 PD가, 가장 아끼는 인문서적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서울에서 제주로 짐을 싸서 내려오면서 챙겨 온 20권의 책 중, 2권을 차지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유발 하리리의 [사피엔스]가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었다. 그 배경에는 우선 이 책이, 대중서로서 여러 가지 매력이 있었고, 김영사라는 마케팅의 귀재인 출판사에서, 마케팅을 상당히 영리하게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 역시 [사피엔스]를 읽어보았다. 하지만 J.M 로버츠 교수가 저술한, 제1부 선사 / 제2부 문명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로버츠 교수는 [세계사 1,2]의 초판을, 이미 1976년에 냈었다. 이후 세계사 관련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책들은, 로버츠 교수의 헌신적인 연구성과에 빚을 지고 있다. 국내에서 아직까지도 베스트셀러인 [사피엔스]에는, 유발 하리리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여러 군데 포진해 있기는 하나, 그의 사고에 근간이 되는 토대는 역시, 로버츠 교수의 오랜 연구 성과에 빚을 지고 있다고 피터팬 PD는 생각한다. 


필자는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감탄을 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하지만 [세계사 1,2]에서 보여준, 로버츠 교수의 연구성과에는, 매 페이지마다 큰 존경심을 표해야 했었다.      


하지만 [까치]에서 번역해 출간한 [세계사 1,2]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는데, 바로 번역에 상당수의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문장이 매끄럽지 않은 것은 당연하거니와, 무슨 의미인지 정확한 뜻을 파악할 수 없어서, 아마존에서 구입한, [세계사 1,2]의 원서 : [The Penguin History of the world / Penguin]와 대조를 해가면서 읽어야, 제대로 뜻을 파악할 수 있는 문장도 상당수 있었다.      


이런 문제는 까치에서 번역한, 매우 우수한 다른 도서에서도 자주 발견되는데, [까치]는 해외 양서의 번역을, 해당 도서 관련 대학 교수님들께 의뢰해서, 번역 출판하고, 번역 전문가를 잘 쓰지 않는다. 물론 번역을 상당히 잘하시고, 또 번역에 많은 공을 들이는 교수님들도 있겠으나, 피터팬 PD가 보기에는, 결과물이 실망스러운 경우가 더 많았다.      


이런 경우 [웅진 지식하우스]에서 펴낸, [상식과 교양으로 읽는 유럽의 역사]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웅진은 이 책의 번역을, 독일어 전문 번역가인 장혜영 씨에게 맡기고, 감수를 전공 교수들에게 받는 형태로 진행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명저인 [세계사 1,2]는, 저자인 로버츠 교수가 쓴 한 문장 한 문장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아서, 전문 번역가의 역량만으로는 번역이 미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전공 교수 등의 감수가 필요하다.    

  

하지만 출판사 입장에서 볼 때, 이런 방식은 도서 제작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회피하고 싶을 거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나라 인문학 도서들이 초심자 단계에서 중급자 고급자 단계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밟아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전공자나 학계의 연구자들이 아닌, 일반 대중들의 인문학 관련 사고의 확장을 위해서는, 초심자의 교양의 습득 단계에서, 중급자로의 사고의 확장과, 사상의 정립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잘 번역된 인문학 도서의 출간이 절실하다. 


국내 도서인구들이 책 구입에 인색하다 보니, 출판사마다 재정상 큰 어려움이 있다는 건, 피터팬 PD 역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존경하는 [까치 출판사]의 관계자 분들께서, 이와 같은 일을 선도적으로 해 주길 바란다.      


그럼, J.M 로버츠 교수의 놀라운 연구성과와, 세계사를 바라보는 그의 깊은 사고를 배울 수 있는, [The Penguin history of the world] 속으로 들어가 보자.     


<도서출판 까치에서 [세계사 1,2]로 번역한 책의 원서. The Penguin History of The World >


-----------(서평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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