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고의 시간들』로부터의 대화
올가 토카르추크는 인간의 시간과 감정, 기억과 신화를 시로 말하는 작가다.
그녀의 작품은 설명이 아니라 감각으로 다가온다.
『태고의 시간들』은 그런 올가 문학의 정점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은 시간과 기억, 신화와 혈연, 사랑과 상처가 뒤얽힌 공간이다.
‘태고’라는 마을 안에 머물러 있는 시간들,
그리고 그 안에 떠도는 상처와 영혼들이 이야기를 흘려보낸다.
오늘, 올가와 마주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소년 제제.
브라질의 가난한 거리에서 자란 다섯 살 아이.
그는 너무 일찍 외로움과 배신, 고통을 배웠고,
그러기에 더 오래 상상하고, 더 깊이 슬퍼할 줄 아는 아이이다.
그 제제가 오늘, 울음과 시간에 대해 묻는다.
제제:
올가, 나는 가끔 그때를 생각해요.
정말 슬펐는데,
눈물은 안 나왔어요.
그때 내가 너무 어렸던 걸까요?
아니면, 이미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려서였을까요?
올가:
제제야,
때로 사람은 너무 아프면
오히려 울 수가 없단다.
『태고의 시간들』에는 그런 침묵이 있어.
사람들이 울음을 대신해
잠들거나, 몸을 앓거나, 먼 곳을 바라보지.
울지 못한 네가
덜 슬펐던 게 아니라,
너무 슬퍼서, 말이 멈춘 거란다.
제제:
어른들은 자꾸 말해요.
“시간이 약이야.”
하지만 나는 시간 속에서도
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만나곤 해요.
시간은 진짜 약일까요?
올가:
시간은 약이 아니라,
하나의 강이야, 제제야.
『태고의 시간들』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 흐르고,
흐르면서도 사라지지 않아.
어떤 기억은 겹겹이 쌓이고,
어떤 감정은 다른 시간 속에서 다시 살아나지.
그러니 시간이 모든 걸 낫게 한다는 건
너무 단순한 말이야.
시간은 낫게 하지 않지만,
우리가 감정을 끌어안을 공간은 열어주지.
제제:
기억 속의 나는 너무 작고, 너무 겁이 많았어요.
지금의 나는 조금은 자랐고,
가끔은 웃기도 해요.
그럼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가 아닌 걸까요?
올가:
그 아이는 지금 너의 안에 살고 있어, 제제야.
『태고의 시간들』에서는
사람의 기억이 마을처럼 서로를 오가고,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부르고,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안아주기도 해.
너는 그때의 너를 잊지 않았기에
지금 여기에서 물을 수 있는 거야.
기억은 과거가 아니라,
살아 있는 또 하나의 ‘너’란다.
제제:
나는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비가 오는 날이나,
어느 날 갑자기 그때 일이 떠올라요.
왜 아픔은 그렇게 다시 오는 걸까요?
올가:
그건, 제제야,
아픔이 아직 완전히 말해지지 않아서야.
『태고의 시간들』에서는
말해지지 못한 이야기들이
계속 태고를 떠돌아.
그건 망각이 아니라,
언어가 닿지 못한 곳에서 들리는 소리야.
반복되는 고통은
마음이 아직 다 건너가지 못한 강이란다.
네가 그 아픔을 들여다볼 준비가 되었을 때,
그 강은 언젠가 잦아들지.
제제:
나는 나를 좀 안아주고 싶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요.
나도 나를 미워한 적이 있으니까요.
올가:
먼저 너의 그 미움을
조용히 바라보는 것부터야, 제제야.
『태고의 시간들』의 인물들도
자기 안의 상처를 직면하면서
서서히 사랑을 배워가지.
자기를 안아주는 건
모든 치유의 시작이란다.
너는 이미 그 시작을 하고 있어.
이 질문을 던졌다는 것 자체가
너의 깊은 마음이
너를 향해 손을 뻗고 있다는 증거야.
이 작품은 수많은 개인의 기억과 상처가
시간이라는 공간 안에서 교차하는 이야기이다.
올가는 시간과 고통을 직선으로 보지 않는다.
그녀의 시간은
겹겹이 쌓이고,
다시 들리고,
서로를 안아주는 동심원이다.
『태고의 시간들』은 묻는다:
“당신은 어떤 기억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는가?”
오늘 제제는,
그 기억 속의 나를 다시 바라보았고,
우리는 함께
아직 말하지 못한 감정들을
언어로 꺼내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