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1. 칸트와 혁명의 연설문

— “이성은 혁명을 지지하는가, 아니면 그 너머를 꿈꾸는가”

by 이안

1. 인트로 — 촛불 아래의 사유, 혹은 광장의 외침


1794년 겨울, 쾨니히스베르크의 한 강의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안에서는 이마누엘 칸트가 조용히 입을 엽니다.


“이성은 인간을 미성(未成)으로부터 해방한다.”


누군가는 그 문장을 필기하며 눈을 번뜩이고,

누군가는 멀리 파리의 단두대를 떠올립니다.

한쪽에서는 연설이 철학을 부른다.

한쪽에서는 철학이 연설을 금한다.


18세기말, ‘계몽’이라는 이름의 불이 들불처럼 타오르던 그때,

칸트는 혁명의 광장이 아닌 사유의 방에서

자신만의 연설문을 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2. 이성의 신전 — 계몽이란 무엇인가


“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 자초한 미성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 유명한 정의는 1784년 칸트의 짧은 논문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나왔습니다.

그에게 계몽은 정치의 구호가 아니라, 존재의 태도였습니다.


Sapere Aude!
감히 알기를 추구하라.


그러나 그 ‘앎’은 무장봉기의 깃발이 아닌,

각자의 내면에 던지는 질문이어야 했습니다.

칸트는 공포정치로 치달은 프랑스혁명을 보며,

이성이 열광과 무분별함에 휘둘리는 것을 우려합니다.


『실천이성 비판』에서 그는 ‘자율성(Autonomie)’이라는 개념을 내세우며,

진정한 자유는 ‘욕망의 방종’이 아닌 ‘이성의 법’에 복종하는 것임을 설파합니다.

그의 철학은 혁명보다 더 혁명적이었지만,

그는 광장에 서는 대신, 침묵 속에서 인간의 도덕법칙을 세웠습니다.


3. 혁명 — 날 선 이성의 실험


프랑스에서 이성은 ‘국가’를 재구성합니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국민공회, 혁명의 재판.

『상식』(토머스 페인)은 시민을 깨우는 계몽의 북소리였고,

『공포 정치의 철학』은 이성이 언제든 ‘무기를 든 광기’로 돌변할 수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이에 비해 칸트는 냉정하게 묻습니다.


“그대들이 말하는 자유는, 정말 자율성인가?”


그의 이성은 차가운 사유의 칼날로

혁명의 열기를 자를 수 있는가?

그는 혁명을 지지하지 않았고,

혁명 없이도 인간은 바뀔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지식인이 시민이 되는 방법,

그것은 거리의 투석이 아니라 ‘판단력의 성숙’이었습니다.


4. 그늘 아래의 존재들 — 이성이 닿지 못한 자리


칸트는 노예제와 여성 억압을 직접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대, 올랭프 드 구주의 『여성의 권리 선언』은 외칩니다.

“이성이 남성의 것이라면, 여성은 무엇인가?”


하이티의 투생 루베르튀르가 외칩니다.

“이성이 유럽의 것이라면, 흑인의 자유는 어떻게 가능한가?”


『로빈슨 크루소』의 식민적 상상력,

『파멜라』의 계급적 통제,

『페르시아인의 편지』가 보여주는 타자의 시선 속에서,

칸트의 계몽은 침묵의 빈틈을 남깁니다.

이성은 보편적이어야 하지만,

그 보편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지워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5. 지금 여기의 장면 — 쾨니히스베르크의 서재에서


1800년을 앞둔 겨울,

쾨니히스베르크 대학 근처의 작은 커피하우스에서

학생들은 열띤 논쟁을 벌입니다.


“이성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지만, 정말 그런가?”


한 편, 한 철학자는 자신의 삶을 단 한 번도 고향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세계시민(cosmopolitan)을 꿈꿉니다.

그의 집 책상 위에는 『순수이성비판』 초판,

그 옆에는 혁명의 신문이 놓여 있습니다.

사유는 닫힌 문 너머로, 세계의 비명을 듣고 있었습니다.


6. 철학적 마무리 — 혁명 이후의 계몽을 묻다


계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묻습니다.


“이성은 누구의 것인가?”
“계몽은 언제 억압으로 바뀌는가?”
“자율성이란, 정말 나의 것이었는가?”


포스트콜로니얼, 페미니즘, 생태철학은

이 오래된 연설문에 다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칸트는 더 이상 응답할 수 없지만,

그가 남긴 ‘자율’이라는 말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7. 다음 이야기 — 공장 이전의 세계, 노동은 어떻게 존재했는가?


혁명과 계몽이 삶을 뒤바꾼 시기,

그러나 여전히 다수의 인간은 노동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농민의 계절, 장인의 기술, 길드의 규율, 도시의 생존.


다음 편에서는 산업혁명 이전의 노동 세계를 조망하며,

자본주의 이전의 시간과 노동의 의미를 탐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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