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 번역의 위대한 두 철학자] 2편

유마의 말은 누구의 언어인가 — 《유마경》 번역 대조 분석

by 이안

1. 인트로 — 경전은 말이 아니라 목소리다


어떤 번역은 읽는 이의 마음을 잠재우고,

어떤 번역은 마음을 흔들어 일으킨다.

《유마경》은 단순한 교리의 책이 아니라, 한 병든 존재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깊은 외침이다.

그 외침은 과연 누구의 언어로 전해졌는가?


오늘 우리는 두 개의 《유마경》을 읽는다.

하나는 구마라집이 읊조린 시,

다른 하나는 현장이 옮긴 철학의 논문이다.


2. 배경 맥락 — 《유마경》이 품은 시대의 음성


《유마힐소설경》은 인도 불교 중기, 대승불교의 자비와 공 사상을 고도로 문학화한 경전이다.

중국에는 3세기경 처음 소개되었고, 구마라집은 406년에 이를 번역해 중국 대중에게 널리 보급했다.

현장은 650년 무렵 이를 다시 번역했으나, 널리 읽히진 않았다.

구마라집이 번역할 당시, 중국은 후진의 혼란기였고, 불교는 정치적 통합과 문화 정체성의 도구가 되고 있었다.


구마라집은 경전을 ‘읽히는 언어’로 옮기며 대중 속으로 불교를 확산시켰다.

반면 현장이 번역하던 당나라는 제국의 전성기였다.

현장은 불교 사상을 인도 원전 그대로 정리하려는 학문적 열망과 제도적 뒷받침을 등에 업고, ‘철학으로서의 불교’를 번역하고자 했다.


3. 번역 철학 — 침묵과 고집의 미학


구마라집은 ‘말 너머의 뜻’을 전하려 했다.

그에게 번역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깨달음의 공명을 불러오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한 문장을 시처럼 간결하게 정제했고, 단어보다는 울림을 선택했다.


현장은 ‘뜻 안의 말’을 지키려 했다.

그에게 번역은 진리의 미세한 구조까지 손상 없이 옮겨야 하는 학문적 실천이었다.

그래서 그는 문장 구조와 어휘를 정확하게 보존했고, 수미일관한 개념어를 사용했다.


구마라집이 ‘독자의 마음을 향해 말한 번역자’였다면,

현장은 ‘진리의 구조를 충실히 전하는 번역자’였다.

이 둘은 말하는 방향이 다르다.

그러나 둘 다 ‘침묵 이후의 언어’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고집스러운 사유의 미학이었다.


4. 경전 사례 — 병든 자의 침묵 앞에서


《유마경》 제3품, 문수보살과 유마힐의 대화 장면.


구마라집 번역: “문수보살이 물었다. 유마힐은 말이 없었다.”

현장 번역: “문수보살이 질문하자, 유마힐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구마라집의 침묵은 시적이다. ‘말이 없다’는 표현은 곧 하나의 수행이고 깨달음이다.

현장의 침묵은 서술적이다. 상황을 설명하고 있으나, 그 여운은 독자의 몫이 아니다.


또 다른 예, 《불병품》에서 부처가 유마를 문병하며 묻는 장면:


구마라집: “병은 병이로되 병이 아니다.”

현장: “병이란 이름은 병이지만, 실상은 병이 아니다.”

전자는 화두이고, 후자는 해설이다.


5. 문체의 미학 — 시로 번역할 것인가, 논문으로 옮길 것인가


구마라집은 사륙변문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시적 리듬과 대구를 활용했다.

그의 《유마경》은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깨달음의 체험을 유도했다.


현장은 학술적 명료성을 추구했다.

그는 인도어 문장의 구조, 술어, 연결어 등을 최대한 살리며 경전의 논리적 전개를 드러냈다.


한문을 문학 언어로 쓸 것인가, 학문 언어로 쓸 것인가.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선택을 했고, 우리는 그 결과로 전혀 다른 《유마경》을 읽고 있다.


6. 현대적 함의 — 해석은 누구의 책임인가


오늘날, 우리는 번역된 유마의 말을 읽는다. 그러나 그 말은 누구의 것인가?

AI 번역 시대, 인간 번역자의 존재는 더욱 절실하다.

감정, 여운, 함축, 침묵, 시의 구조는 아직 기계가 다 옮길 수 없다.


구마라집은 ‘독자의 마음에 유마를 불러오는’ 번역을 했고,

현장은 ‘불교 철학의 원형을 정확히 제시하는’ 번역을 남겼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깨달음의 언어인가, 개념의 구조인가?


7. 마무리 — 오늘의 한 문장


같은 경전이라 해도, 다르게 들린다.
그건 번역자의 목소리 때문이다.


다음 화의 질문 — 이어지는 사유의 불씨

만약 유마가 오늘 말을 걸어온다면,

그의 침묵을 우리는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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