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제주바다, 안녕 표선면
-[잊혀진 계절]에, [겨울비는 내리고]-
오늘은 제주에 가을비가 내린다.
시월의 마지막 밤도 아니지만, 가을비가 내리니까,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
시월의 마지막 밤을 /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
우리는 헤어졌지요/
로 시작하는 이용 형님의 [잊혀진 계절]을, 목메어 부르고 싶어 진다.
[잊혀진 계절]을 다 부르고 나면, 아직은 10월 중순, 비록 겨울은 아니지만,
바보 같지만 바보 같지만 /
나는 정말로 보낼 수가 없어 /
하얀 네 얼굴 난 정말 사랑했는데 / 어떡해야 하나 눈물이 흐르네 /
의, 애절한 후주가 반복되는, 김범룡 형님의 [겨울비는 내리고]를 불러야만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노래는 조용필 형님의 [Q], 그리고 고) 김광석 형님의 [사랑했지만]....
이용 형님은 1957년 생으로 나보다 12살이 많고, 김범룡 형님은 1959년 생으로 나보다 딱 열 살이 많다. [잊혀진 계절은] 필자가 중학교 1학년이던, 1982년에 이용 [정규 앨범 1집]에 수록되어 발표됐다. 1982년도는, 조용필이 정상의 자리에 있었고 나훈아, 전영록, 송골매, 산울림 등 기존 인기 가수들이 새 앨범을 발매하며, 치열한 경쟁을 하던 해였다.
산울림은 8집에서, <내게 사랑은 너무 써>를 히트시켰고, 송골매는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수록한 2집 앨범을 발표했고, 중견 가수 나훈아는 <잡초>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고, 전영록도 <종이학>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해이기도 했다.
이처럼, 별들의 전쟁이 이어진 1982년에, 이제 겨우 정규앨범 1집을 낸 이용은, [잊혀진 계절]의 빅히트로, 가왕 조용필을 제치고, 1982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가수왕과 최우수 가요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그런 만큼 우리 세대에게 [잊혀진 계절]이 남긴 학창 시절의 기억은, 첫 키스의 추억처럼 강렬했다.
<1982년 2월에 발표된 이용 1집. [잊혀진 계절], [바람이려오], [서울] 등의 히트곡이 수록되어 있었다. 앨범 표지 속, 젊은 시절 '꽃미남 이용'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김범룡의 [겨울비는 내리고]가 발표된 것은 그로부터 3년 뒤인, 이안 작가가 고1 때였던, 1985년 3월이었다. [김범룡 1집]에는 국내 가수의 데뷔 앨범으로는, 가장 큰 히트송 중 하나였던, [바람 바람 바람]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이 앨범은 다음 해 3월까지, 1년 내내 차트 1위 곡을 배출했다.
1985년 여름에 [바람 바람 바람]으로, 단순한 바람이 아닌, 태풍을 일으켰던 김범룡은, 그해 MBC 10대 가요제에서 신인가수상과, 최고 인기가요상을 받았다. 이어서 그해 겨울부터 불기 시작한 <겨울비는 내리고>의 인기는, 다음 해 2월 KBS 가요톱텐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기쁨을 김범룡에게 안겨주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필자가 중학교 1학년이었던 1982년은, 이용의 [잊혀진 계절]의 계절이었고,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1985년은, <겨울비는 내리고>라는 '바람 바람 바람'이 불어오던 시절이었다.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던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 가을을 버티게 해 주었던 노래들이었으니, 이안 작가가 제주도에서 홀로 쓸쓸히 처량한 가을을 보내고 있는, 2020년 가을에도 당연히 필자의 주제가일 수밖에 없으리라.
<1985년도에 그야말로 태풍을 몰고 왔던, 김범룡의 1집. [바람 바람 바람], [겨울비는 내리고], [그 순간] 등의 히트곡이 수록되어 있다>
오늘 밤엔 제주의 가을비를 맞으면서, 제주의 바다와, 자주 가던 카페, 표선항, 그리고 무엇보다, 표선면의 송혜교 약사님이 일하시는, 약국 앞을 서성거렸다. 물론 약사님은 이미 퇴근하시고, 약국 문은 닫힌 늦은 밤이었다.
표선면 최고의 능력자 송혜교 약사님은, 올 겨울에, 은하계에서 제일 잘생기고, 젊고, 멋지신, '제주도의 진짜배기 원빈+송중기+정우성 님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멋진', 오랜 벗과 결혼을 하신다고 한다. 그러니, 제주도의 '가짜배기 송중기+ 박보검이었던', (얼핏 보면 서민 교수와 외모가 매우 흡사하다는), 이안 작가는 이젠 퇴장할 때가 되었다. 범룡 형님의 애절한 노래처럼,
바보 같지만 바보 같지만 /
나는 정말로 어쩔 수가 없게 눈물이 내리고 /
겨울비 같은 가을비는 표선항을 적시고 /
12월의 행복한 송혜교 신부님은 결혼을 하신다 /
이럴 때는 기타를 튕기며, 송창식, 윤형주가 1968년에 결성한 트윈폴리오의 번안곡, [웨딩케익]이라도 불러야 마땅하겠지만, 그리고 [웨딩케익]을 준비해,
아픈 내 마음도 모르는 채 / 멀리서 들려오는 무정한 새벽 종소리/
를,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모든 것 대신, 필자는 그냥 제주도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안 작가가 가장 애정 하던 카페 [코코티에]와, 한라산의 일몰, 그리고 표선 해수욕장>
더 이상은 제주도의 형벌과도 같은 외로운 가을을 버틸 수가 없었고, 외지인인 내가 제주도에서 친구를 사귀기도 너무나 어려웠다. 거의 유일한 친구였던, 러시안 블루 고양이 [키키] 외에는.
고맙고 감사했던 멸치국수 [국수마당] 이모님, 보말 칼국수 [국수 앤] 이모님, 그리고 5일장의 묘목/양파 이모님과도 이젠 이별이다. 정말 안녕이다. 정겹던 한라산의 노을도, 표선 해수욕장의 낙조도, 비 내리던 항구도, 밤바다를 비추던 등대의 일렁임도 다 안녕.
지난 8개월 동안, 밤마다 고개를 들어 찾아보던 별자리가, [전갈자리]의 가장 크고 빛나던 <안타레스>에서, [큰 개자리]의 <시리우스>로 바뀌어 갔던, 아름답고 길었던 새벽의 시간들도, 안녕.
PS1. 저의 오랜 페이스북 친구분이 이안 작가에게, ‘동정을 갈구하는 글 좀 그만 쓰라’고 하셔서, 이안 작가는 더 이상 글을 쓸 용기가 없어졌어요. 서울에 가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다른 일을 할지도 모르겠어요.
북한산 근처로 이사를 가니까, 비록 불법이지만 산 정상에서 하드 아이스크림을 팔지도 모르겠어요. 한 달 수입이 80만 원은 돼야, 서울 집의 비싼 월세를 낼 수 있을 텐데... 그래도 브런치
구독자분을 북한산 정상에서 뵙게 된다면, 맛있고 시원한 [메론바] 하나쯤은 공짜로 드릴 수 있어요 ~^^
PS2. 그동안, [이안 작가의 제주 살이]를 격려해주시고, 사랑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외로움을 못 이기고, 8개월 만에 <이안 작가의 제주살이>는 실패로 끝났다. 올 10월 26일에 서올로 올라간다. 다시 시작이다. 8개월 동안 이안 작가를 버티게 해 주었던, 제주의 푸른 바다가 그리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