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화도시 정책은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을 계기로 제도화되었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장치로, 문화가 단순한 전시와 향유의 차원을 넘어 지역 균형 발전의 전략적 자원으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2019년 첫 번째 일곱 곳의 법정 문화도시가 지정된 이래, 매년 새로운 도시들이 합류하면서 2024년에는 한꺼번에 열세 곳이 추가되었고, 누적 삼십여 곳이 전국에 흩어져 있다. 출발은 소수의 실험이었다면, 지금은 전국적 네트워크로 확장된 셈이다.
초기의 문화도시는 흔히 축제와 행사 중심이었다. 관광객을 유치하고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정책은 조금씩 방향을 달리한다. 단순히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문화가 아니라, 도시 내부의 삶과 기억을 되살리는 흐름이 강해졌다. 안동은 유교 문화, 고창은 농악과 갯벌, 속초는 이주민 공동체의 서사를 앞세워 도시의 정체성을 이야기한다.
문화도시는 이제 ‘밖에 보이는 무대’에서
‘안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거울’로 전환되는 중이다.
이 변화의 핵심에는 주민 참여가 있다. 문화도시는 행정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주민이 직접 주체로 서서 문화 기획과 실행에 관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도시의 ‘문화’라 부르기 어렵다. 따라서 문화도시는 한 편의 행정 사업이라기보다, 공동체가 스스로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곧 데모스(demos), 즉 시민이 주체가 되는 문화민주주의의 실험이기도 하다. 문화도시는 법과 제도로 지정되지만, 그 진정한 성패는 주민의 목소리와 참여가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 가에 달려 있다.
정책의 향후 방향도 이 지점에서 다시 묻혀야 한다. 무엇보다 양적 확산보다 질적 내실이 중요하다. 몇 개 도시가 지정되었는가 보다, 각 도시가 자기만의 서사를 어떻게 심화시키는가가 관건이다.
또한 행정 주도에서 시민 주도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지방정부의 행사 기획을 넘어, 시민 스스로가 기획자가 되고 실행자가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지역의 고유성은 단지 향토적 자산에 머물 것이 아니라, 세계적 보편성과 연결되는 보편적 이야기로 확장되어야 한다. 유교의 전통, 농악의 리듬, 산업유산의 흔적은 세계가 함께 공명할 수 있는 보편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적으로 본다면, 한국의 문화도시는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라는 공동체적 질문을 던진다. 중앙집권적 구조 속에서 희미해지던 지역성을 복원하려는 시도이며, 들뢰즈가 말한 리좀적 다양성의 정치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각 도시가 뿌리 깊은 나무가 아니라 사방으로 뻗는 뿌리줄기처럼, 서로 연결되고 얽히며 또 다른 삶의 양식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동시에, 문화도시는 하이데거식으로 말하면 ‘거주함(Wohnen)’의 회복이다. 도시는 단순히 주거와 경제 활동의 공간이 아니라, 그곳의 기억과 전통, 예술 속에서 살아 있음의 의미를 다시 경험하는 장이다.
유럽의 문화도시가 “분열된 대륙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 기획”이라면, 한국의 문화도시는 “중심의 집중을 해체하고 흩어진 목소리를 되살리는 균형의 기획”이다. 전자가 외향적이고 국제적이라면, 후자는 내향적이고 지역적이다.
하지만 양자는 공통적으로 문화를 통해 도시와 인간의 정체성을 다시 묻는다는 점에서 만난다. 결국 문화도시 정책은 도시라는 공간을 새로 짓는 일이 아니라, 시민이라는 주체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한국 문화도시가 나아가야 할 철학적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