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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Nov 07. 2020

서울 밤거리의 네온사인이 일렁였다

-순천에서 서울에 올라온 다섯 가지 이유-

서울이에요. 순천의 조계산 산마을에 머문 지 2주 만에, 잠시 순천을 떠나 서울에 들렀어요. 조계산의 붉은 단풍과 계곡의 맑은 물, 그리고 빼어나게 아름다운 천년 고찰 선암사의 목조 건축물들이, 이안 작가를 순천에 계속 있으라고 유혹했지만, 서울에 올라올 몇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먼저 고대 경영대학 88학번의 ‘원빈+공유’인, 용가리(별명)의 생일이었어요. 제가 서울에서 방송국 PD 생활을 관두고, 또 가족과도 헤어지고 지방으로 내려가자, 저를 가장 많이 걱정해주던 저의 절친 용가리.      


그동안 용가리는 늘 제 안부를 묻고, 제가 쓰는 브런치에 찾아와서 '좋아요'와, '댓글'을 달아주면서, 저를 위로해주었어요. 얼마 전 이안 작가가, ‘위로와 공감을 노래하는 여성 듀오’ 옥상달빛에 대해서 음악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지만, 제 친구 용가리는 이안 작가에게, 옥상달빛의 음악과도 같은 존재였어요.                      

<전남 순천시 조계사 선암사 입구에 있는 찻집. 이 찻집에서는 선암사에 직접 만든 녹차를 판다 >


두 번째 이유는 얼마의 돈이 생길 거 같아요. 사실 올여름 MBC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이젠 월급도 받지 못하고, 모아둔 목돈도 없으니, 가난하고 미천하게 남은 생을 살아가리라 결심했어요. 그런데, 저의 또 다른 고려대학교 절친 프랑켄슈타인이, 제게  '사직서를 철회할 것'을 간곡히 부탁했고, 저는 친구의 고언을 거절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여름에 이미 냈던 사직서를 다시 철회했고, 그런 이유로 올 연말에 명퇴금을 받을 수 있게 될 거 같아요.


서울 MBC 문화방송은, 올 연말에 대규모의 명예퇴직을 실시해요. 사실 KBS, MBC 등 우리나라 지상파 방송국은, 엄청한 인력 정체와 누적된 적자로 큰 몸살을 앓고 있어요. 그 원인을 과거로 돌아가서 설명해보자면, 지난 '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서울 올림픽' 준비를 위해서, KBS와 MBC는 80년대 초반부터 올림픽 직전까지, 매해 과도하게 많은 인력을 선발했어요.      


처음 치르게 되는 국제적인 행사다 보니, 지상파 방송국이 잘 준비해서 방송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무시무시한 공권력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던 시절이니, 청와대에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당시 방송국 사장들은, '바짝 쫄아' 있었던 거예요.     


지금과 비교를 해보면, 작년과 재작년 MBC는 한 해 20명 내외의 신입사원을 뽑았는데 1981~1986년 까지는, 매해 100~150명의 신입사원을 채용했답니다. 그러다 보니 80년대 초반에, 과도하게 많이 뽑은 인력들이 엄청나난 인력 정체를 만들었고, 또 KBS와 MBC가 고비용 인력 구조가 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던 거죠.


그래서 한국의 지상파 방송국들은 올해도 대대적인 명퇴를 실시하려고 해요. 이안 작가도 이젠 더 이상 MBC에 기여할 수 있는 재목은 되지 않고, 회사에 거추장스러운 존재인 것만 같아서, 명퇴를 신청했고요. (12월까지는 MBC 라디오 PD 신분이기는 합니다). 목돈 얘기를 하다가 글이 옆길로 샜는데, 명퇴금을 받게 될 거 같으니, 제가 여름에 사직서를 낸 것을 철회하도록 이안 작가를 집요하게 설득했던, 절친 L에게 한턱내야 할 거 같아서 서울에 올라왔어요.                  

<서울이 가끔씩 그립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천년 사찰 [선암사]와 [금둔사], 그리고 계곡의 약수처럼 알싸한 매력의 조계산을 떠날 수 있을까? >


세 번째 이유는 아내를 한번 보고 싶었어요. 이혼을 했고, 아내가 아빠 없이, 두 아이들을 다 돌보다 보니, 요즘 많이 힘들어하고 있어요. 아내에게 명퇴금을 나눠줄 테니 안심하라고 위로도 해주고, 또 아이들의 학자금과 학원비 등은, 명퇴금에서 떼내, 이안 작가가 책임지겠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네 번째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부모님을 뵙기 위해서예요. 부모님은 제가 빚만 2억을 안고, 회사를 그만둔 걸로 알고 계시기 때문에, 매일 걱정이 태산 같으시거든요. 이번에 뵙고, 명퇴금으로 빚을 다 갚고, 또 인터넷 신문사 등에, 착실히 음악/문화 칼럼을 쓰면서 생활비도 벌 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라고 안심시켜드려야겠어요.  


그리고 제주도에서 순천으로 이사를 와서, KTX를 타면 2시간 30분이면 서울에 올 수 있으니, '한 달에 한번 정도는 부모님 찾아뵐 테니, 이젠 걱정 좀 그만 하시라'고, 말씀도 드리고 싶었어요. 최근에 어머님은 자궁암으로 수술을 받으셨고, 아버님도 척추 염증이 점점 커져서 수술을 받으신 이후에는, 거동이 어려우세요.     


이혼을 하고 나니 손자들도 찾아오지 않고, 아프신 부모님을 찾아뵙는, 자손이 이젠 저 밖에 없는데, 저라도 가능한 자주 뵙고 안부를 여쭈어야겠지요. 저번에 서울에 왔을 때, 아버지는 이안 작가가 데리고 온 [키키]를 보고는, “너는 아비, 어미보다 고양이가 더 소중하냐?”라고 역정을 내셨었는데, 그때는 많이 섭섭했지만 지금은 아버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해요.      


지난 9개월 동안 제주도에 살면서 아버지 어머님은 한 번도 찾아뵙지 않고, 부모님 안부보다 고양이 키키 걱정을 더 많이 했던 저에게 많이 야속하셨던 거 같아요. 게다가 저희 부모님 세대 (1930년대 생이세요)분들은, 반려동물에 관한 인식이 요즘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시잖아요.      

              

<그저께 밤에 선암사를 내려오는 산길에서 검은색 예쁜 길냥이를 만났다. 다가가서 쓰다듬어 주려고 했으니, 멀리 떠나갔다. 그 순간, "야, 너 정말 그러기야, 우리 키키는 나를 얼마나 좋아하고 따르는데~!"하고 말을 했다가, 더 이상 [키키]가 내 곁에 없음을 생각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염치없게도 [키키]가 그립다. >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어쩌면 허리 수술을 받기 위해서예요. 등과 척추에 이상이 생기는 건, 우리 아버지 집안의 유전적인 병이에요. 할아버님과 아버님도 마치 노트르담의 꼽추처럼 등이 심하게 굽고 요통이 있으셨는데, 저도 등뼈와 요추 2~3번과, 그리고 요추 5~6번에, 디스크 및 기형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순천에서 혼자 무사히 올 겨울을 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요. 저녁에 진통제를 먹으면 어찌어찌 잠은 들지만, 새벽 3~4시경부터 요통이 너무 심해서 잠을 못 잔 지 3주가 넘어가면서, 서울에 다시 오게 되었어요.  


원래 서울 강남의 제법 큰 병원에서, 요통 관련 진통제 6개월치를 받아, 제주도로 내려가서 버텨왔는데, 이 약에 내성이 생긴 건지, 제 척추가 이젠 버틸 대로 다 버틴 건지, 약만으로는 통증을 멈출 수가 없게 된 거 같아요. 어제 순천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동대문에서 제일 싼 3만 원짜리 여관이 묵었어요. 주인 아주머님께 여쭤보니, 한 달을 머물면 월 60만 원에 방을 내 주신대요. 서울에서 수술을 받게 되면, 이곳 여관에 당분간 묵을지도 모르겠어요.


이안 작가는 20대에 홍콩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이라는 영화의 광팬이었어요. [중경삼림] 속, 비에 젖은 어두운 홍콩의 골목들과, 흔들리는 네온사인, 그리고 청춘들의 위태로운 방황은, 매번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고, 또 어딘가로 멀리 떠나고 싶게 하는 그리움을, 마음속에서 일렁거리게 했거든요.  


지난 9개월 동안, 지방의 작은 마을에 머물면서도 [중경삼림]을 봤는데, 이 영화는 이안 작가에게, 늘 도시에 대한 향수병을 불러일으켜요. 90년대 중반에 MBC에 입사를 하고, 20대와 30대 중반까지, 서울 강남역 4거리의 늦은 새벽을 술에 취해 비틀대던 저의 모습이, 영화 속 장면들과 오버랩되곤 했거든요.     


동대문 DDP 센터를 마주 보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이곳 스타벅스의 창가에도, 화려한 간판들과 다국적 청춘들의 방황, 그리고 네온사인의 일렁임과 금세 부서질 듯한 도심의 설렘이 내려앉아 있습니다.       

<영화 중경삼림의 포스터. 왕가위의 1995년 작 [중경삼림]에는 임청하, 양조위, 금성무, 왕페이 등 당대 최고의 홍콩 인기 영화배우들이 출연했다. 중국으로의 홍콩 반환을 앞두고, 불안해하고 방황하는, 청춘 남녀들의 정의하기 어려운 고민과 우울함을 세련된 영상미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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