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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열반후 세계불교사] 1편. 기억이 경전이 되다

〈부처 열반과 제1결집 — 아난다의 암송과 구전 체계〉

by 이안

1. 장면 인트로 — 역사적 현장 묘사


기원전 5세기 무렵, 인도 북동부 쿠시나가라의 숲가에는 깊은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으며 샬라 나무들이 붉게 물든 꽃을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사위성에서 급히 달려온 제자들은 장막 속에 누운 스승의 마지막 숨을 지켜보았습니다. 마하가섭은 침통한 얼굴로 무릎을 꿇었으며, 아난다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부처의 입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숨결이 멎자 숲은 한순간, 새소리마저 사라진 듯 고요해졌습니다.


며칠 뒤, 라자가하의 칠엽굴에 500명의 비구들이 모였습니다. 이제 부처의 목소리는 사라졌으며, 남은 것은 제자들의 기억뿐이었습니다.


말이 흩어지면 가르침도 사라진다는 두려움이 교단 전체를 짓눌렀습니다.
그들은 결심하였습니다. 스승의 설법을 모아 한 목소리로 암송하여
후대에 전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2. 문제 제기 — 왜 이 전환점이 중요한가


제1결집은 불교사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부처의 생존 시에는 구두 전승만으로도 설법이 이어질 수 있었지만,


석가모니 입멸한 뒤에는 기억의 균열이 곧 교단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르침을
하나의 제도로서 보존하기 위해 ‘집단 암송’이라는 방식을 선택하였습니다.


이 회의는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진리를 언어 속에 가두어 보존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구전 전통을 제도화함으로써 불교는 처음으로 개인의 기억을 넘어선 공동체적 지식 체계를 구축하게 된 것입니다.


3. 사료와 연대 — 역사적 정합성 확보


전통설에 따르면 부처의 열반은 기원전 486년 경이며, 제1결집은 곧이어 라자가하에서 열렸습니다. 마하가섭이 주재하고, 아난다가 경을 암송하고, 우팔리가 율을 암송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현대 학계는 부처의 열반을 기원전 400년 전후로 보고 있으며,
제1결집도 수십 년 후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구체적 기록은 훗날 편찬된 『대사사』(Mahāvagga)·『율장』(Vinaya)에 남아 있으며, 초기에는 마가다 방언 등 지역 언어로 전해졌다가 후대에 팔리어·산스크리트어로 정리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전통적 이야기의 상징적 가치와 실제 역사적 시차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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