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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tyeight days Jul 01. 2021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벙, 너에 대해 알다

12월 10일 수요일

12월 10일 수요일 -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 너에 대해 알다.       



  새벽에 자다 깨보니 제때 기저귀를 갈아주지 못했는지 소변이 새고 있었다. 항암을 시작한 후 부터는 나쁜 것들이 소변을 통해 나가야하기 때문에 소변양이 무지 중요해진다. 소변양이 수액양과 맞지 않으면 이뇨제 등을 추가로 투여해서 IN/OUT(투여량과 배출량)을 맞춘다. 아이의 소변 양은 기저귀 무게를 재서 계산한다. 먹는 것은 오로지 수액이고 수액의 양과 소변양이 일치해야하니 당분간 몸무게 늘 가능성이 없어 엄마는 또 마음이 그렇다.

  채혈로 하루가 시작된다. 어제와 같이 혈액의 모든 수치들이 정상범주 밖. 노란피(혈소판이나 혈장)와 비타민 k(이것도 피 성분과 관련이 있다고), 적혈구를 수혈했다.

  항암약은 스테로이드로 하루 3회, 흘리지 않고 정량 횟수를 채워 먹여야한다. 그나마 보편적이고 효과가 좋은 약이란다. 항암약의 투여횟수는 3회인데, 오늘은 간보호제(우루사)와 위보호제까지 먹느라 4회. 물 약간에 개어 주사기에 투입 후 아이의 입에 넣어 주면 된다. 흘리거나 뱉지 않도록 아주 조금씩 입에 흘리듯 넣어야해서 시간과 정성이 꽤 필요한 작업이다. 심지어 오늘은 꼭 한 번씩 먹고 다 토해내 거의 2시간은 걸린듯하다. 약 때문인지 수액 때문인지 분유도 모유도 먹을 생각이 없다.

  오전에는 남편과 함께 주치의에게 병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만 1세 전 아동들의 양상에 대해. 만 1세 전, 급성 백혈병 발병케이스는 국내 연간 열명 내외. 건희처럼 생후 3개월 내엔 올해 건군이 첫 케이스라고. 보통 건희의 완치율이나 치료프로세스는 세계적인 데이터로 봐야한단다(치료 케이스가 워낙 적어서). 이달에 항암으로 ‘관해’ 성공을 하면 3개월 후에 이식을 하기로 했다. 건희의 경우 관해 성공률이 낮고 재발 가능성이 높아 이식이 필수라고. 

  항암이 시작되니 후유증에 대비해야한다. 구강 소독과 항문 소독이 그것이다. 식염수에 소다 성분의 ‘중조’를 타 그 용액으로 가글하는 것이 구강소독이다. 건희는 뱉을수 없으니 손가락 한 마디 만한 도톰한 멸균면봉(일명 왕면봉)에 묻혀 입을 닦아주는 걸로 대신한다. 항문은 베타딘이라는 소독약을 한 두방울 물에 섞어 하루에 1회 이상 좌욕하는 것으로 소독한다. 단 베타딘 소독이 착색 가능성이 있어 아이들 같은 경우엔 따뜻한 물로 좌욕만 해도 괜찮다고 했다. 

  다음주 항암 스케쥴을 위해 희귀의약품을 신청했고, 다음 주엔 중심정맥을 잡는 케모포트(포트) 수술을 하기로 했다.

  저녁에 남편이 가고 건희가 한 4시간 만에 소변을 봤는데 소변에서 알 수 없는 갈색 가루가 나왔다. 간호사에게 보여주고 다음 소변은 검사를 나갔다(다음날 결과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눈을 뜨고 놀길래 좋아서 눈맞춤을 했는데 초점이 안 맞고 자꾸 눈이 뒤로 넘어가려고 했다. 속상하다. 몸 컨디션이 돌아오면 초점도 맞길 기대한다. 소변량이 중요하니 소변이 펑펑 나오길, 안 나오면 또 투석을 해야 한단다.     

  엄마는 아픈 아이도 봐야하지만 주변 정리도 해야한다. 12월에 복직하기로 한 회사에 사정 얘기를 했다. 건희 병원비도 당장 걱정이 되기에 보험약관을 챙겨봤다. 보험사에 보장여부를 물었다. 해당이 되면 가입일수에 상관없이 다 준단다. 그것도 해당되는 항목별로. 건희는 암진단, 특정암진단, 다발성암진단, 소아백혈병진단 등에 포함된다. 직장인이 한 번에 만질 수 없는 돈을 이렇게 만지게 되는 구나. 


그만큼 우리 건희는 남들이 걸리지 않는 병에 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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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 : 가족이 크게 아프게 되면 슬픔에 빠졌다가 나오는 순간 드는 생각이 바로 ‘보험’이다. 보험에 들었던가, 보장이 되던가, 그게 얼마였지. 건희처럼 장기간 투병을 하고 입원기간이 긴 경우나 희귀의약품을 많이 쓰게 되는 병들은 더욱 그렇다. 보험은 가입 시기나 약관에 따라 보장이 천차만별이다. 태아 보험을 제외한 보통의 보험은 가입 후 1~3년의 보장 유보 기간이 있으니 확인을 해야 한다. 특히 보험을 갈아탈 경우 전 보험은 해지 되고 신규 보험으로 계약기간을 새로 시작을 하게 되니 여유가 된다면 전 보험을 해지 하지 않고 1년 정도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혈액암 중에서도 병명코드에 따라 암으로 인정받지 못해 비슷한 항암을 하고서도 똑같이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예를 들면 D코드의 조직구증). 또는 불리한 계약 조건으로 보장액이 반토막 나기도 한다. 주변에서 손해사정인을 통해 일부 보장받는 경우를 봤다(물론 수고료는 지출된다).

  보험회사에서는 완치 후 5년이 지나면 재가입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아암 이력을 합법적으로 고지 하고서도 가입을 시켜주는 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주변에서 본 사례가 없다. 병원 말처럼 암이 보편화(물론 성인의 기준이겠지만) 되었고 완치율이 높아진 만큼 소아암환자들의 추후 보험 가입 문턱이 좀 더 낮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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