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산다는 것
관리가 잘 된 집 이라는 소개 문구 앞에는 항상 "집주인이 살던"이 먼저 와 붙어있다. "세입자가 살던"은 결코 그 자리를 노릴 수 없다. 왜일까?
나는 한 번도 집주인이 살던 집에 입주해 본 적이 없다. 세번째 집을 구하기 위해 알아볼 때만 해도 몰랐다. 집주인이 살면 뭐가 다른게 있나? 내가 좋은 집, 좋은 앞 사람을 만났던 탓일까? 아니면 내가 세린이였던 건가. 어쨌든 세번째 집을 구할 당시, 남편이 구직중이었기에 우리는 정착할 '내 집'을 선뜻 정할 수 없었다. 전세 아파트가 적기도 했고, 가격을 맞추기도 쉽지 않아 두 개의 집을 본 그 날 계약금 일부를 선입금 하고 나중 본 집으로 계약하기로 했다.
지하주차장에서 중개사 분께서 우릴 재촉했다. 이 집이 참 보기 힘든 집인데(집주인이 6개월을 내놓았는데 이제껏 안보여주다가) 오늘 우리가 아니 중개인마저도 처음 본다고 했다. 그땐 몰랐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여하튼 '걱정했던 것보다' 집 상태는 괜찮다며 할 생각 있으면 지금 결정하라고 압박했다. 딱히 차선이 없던 우리는 선입금을 넣고 뭔가 하나는 끝냈구나 싶은 마음으로 귀가 했다.
계약을 할때 베란다와 화장실 곰팡이가 심하고 방 하나에 있는 붙박이 문이 떨어졌다고 언급했다. 그 부분은 집주인이 알아서 해결을 해주겠다 약속을 받고 계약을 진행했다. 집주인이 예민한 사람은 아닌듯 했다. 그것 또한 다행이다 싶었다.
이사 나간 집은 보는 것이 아니다. 어떤 집이든 이사를 나간 자리는 놀라울 정도로 더럽다. 몇년이나 커왔는지 알 수 없는 주먹 먼지, 며칠이나 싱크대를 버려둔건지 의아한 부엌, 베란다는 더이상 말하지 않겠다. 그래도 요즘은 왠만한 이사업체에서 나갈때 청소를 한번 해줘서 못볼꼴이 좀 덜한 편이긴 하다. 이사 전에 중개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사 나가고 집주인이 베란다 곰팡이 제거를 직접 했다고 했다. 방에 있는 쓰지 않는 붙박이문도 해결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사 전날 이사 청소를 불렀다. 내가 두번째(집을 구할 때 처음보고, 그 다음)로 본 집은 청소를 끝낸 깨끗한 집이었다.
이사 청소 팀장님이 흘리는 말로, 화장실 곰팡이가 굉장했고 부엌 후드를 닦아도 닦아도 기름때가 계속 나왔다고 했다. 어차피 안방 화장실은 안쓸거고 집이 더럽다는 말은 청소 업체들마다 으레 하는 말이니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다. 하지만 한귀로 흘린 말을 내가 왜 기억하고 있을까.
이사 와 살다보니 후드에서 빨간 기름이 또옥 또옥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틀만이다. 그때만 해도 나는 육식을 즐기지 않았고, 5살먹은 아들도 고기를 잘 씹지 못해서 구운 고기를 해먹는 일이 별로 없었다. 지금이야(나도 육식을 즐기고, 10살이 된 큰아들은 고기 반찬이 필수며, 폭풍성장하고 있는 3살 때문에..) 하루 걸러 하루 고기를 구워대서 기름이 떨어진다는게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겪어 안다. 하지만 그때는 그 기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나 후드에 기름이 덕지 덕지 붙었길래 기름이 떨어질까?! 닦아볼까 하고 열었던.... 후드 안에서는....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