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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tyeight days Jun 08. 2021

아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쓰는 기억

- 내 아이는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을 앓았습니다.


인생의 불행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다. 그것도 조용히. 준비할 시간도 없이.

 - tv n 드라마 ‘기억’ 중에서


  지난 1월(2016년) 익숙한 지역 번호를 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잠시 고민 끝에 받아들자 상대편은 둘째 이름으로 나를 찾았다.

  “건희 어머님 맞으신가요?”

  “..예. 맞는데요.”

  “다름이 아니라, 지금 무료 예방 접종을 실시하지 않은 아이들 대상으로 연락을 드리고 있는 중이예요. 건희가 지난해에 한 번도 예방 접종을 하지 않아서요.”

  “아... 예...”

  이 곤란한 질문을 가능하면 빠르고 간단하게 서로 민망하지 않은 선에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동안 입술이 옴싹거렸다.


  “선생님.. 건희는.. 작년 11월에 사망신고를 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사망'이라는 아이의 현재 상태에 대한 공식적 표현을 꺼냈다. 그쪽에서도 적잖이 당황했을 터였다.

  “아.. 예.. 어머님.. 너무 죄송해요.. 저희 시스템이 일원화되어있지 않아서요. 어머 죄송합니다.”

  “예. 건희가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예방접종을 하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속사정을 이야기 할 필요까진 없었는데 왜였는지 모르게 건희 이야기를 짧게 하고 계속 죄송해할 담당자를 위해 괜찮다며 전화를 끊었다(하기사 또 지금(2021년)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져서 사망했다고 하면 그 정황을 낱낱이 고해야 할 수도 있겠다).


  ‘사망신고 시스템과 일원화되어있지 않았어도 보건소의 지원을 받은 기록을 참고했다면 서로 불편한 전화를 공유하지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이내 아동 학대 뉴스가 떠올랐다. 아마도 정부에서 무료로 지원해주는 예방접종을 맞지 않은 아동들이 아동학대의 사각지대에 있을 것이란 판단 아래 이런 전화방문을 하게 된 모양이었다.(그리고 곧 뉴스에서 그런 내용의 기사가 흘러나왔다.) ‘그래 그들도 자기 일 열심히 하느라 그런 거겠지.’라고 넘겨짚었다.



  2014년 10월 21일 39주 3일만에 3.1kg로 건강하게 태어났던 둘째는 50일이 채 되지 않아 첫 응급실을 방문하게 됐다. 그 날은 남편의 생일이었다. 새벽엔 아이 아빠의 생일 케익을 트렁크에 싣고, 큰 아이는 가까운 시댁에 맡기고 서울 큰 병원으로 전원을 했다. 5키로 아기의 몸에서 세 번의 채혈이 이뤄지고, 눈이 시린 응급실 등불 밖으로 푸른 새벽이 오고 나서야 수련의로 보이는 젊은 의사가 남편을 불렀다. 


  아이 아빠는 울고 있었다. 나에게 그 단어를, 아이의 병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조금 더듬거리며 떨고 있었다. 전원하기 전 병원에서는 간이 나쁘다고 했기에 최악의 상황이면 ‘간이식’이겠거니 했었다. 하지만 남편의 입에서는 ‘혈액암’, 급성 백혈병이라는 단어가 튀어 나왔다.


  사춘기 때 ‘스무살까지만 살고싶어요’라는 아주 슬픈 영화를 본 기억이 났다. ‘그 주인공이 그 병이었지 않았나. 살았던가 죽었던가. 그런 병이 이렇게 어린 아기에게도 걸리나.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일까.’ 멍한 기분과 동시에 ‘혈액암, 백혈병 같다’라는 표현에 갑자기 온 희망을 걸고 싶어졌다.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니까. 그러고 곧 그 희망이 다른 희망이 되는 과정을 겪게 됐다. 우리는 입원병실로 옮겨졌다. 


  격리병동. 소아암 병동은 자동문 두 개를 버튼으로 열고 들어간다. 아이를 침대에 싣고 그 두 개의 문을 지나 들어갈 때의 기분은 여전히 생생하다. 아주 슬픈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우리 아이는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네 번의 계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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