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다시 —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

쓰는 사람의 책 200권

by coolnpeace


20년 동안 저장만 하고 발행하지 못했다. 글쓰기 책 200권을 읽어도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감이 나를 바꿨고,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이 스테이지 1을 열어줬다. 글을 못 쓰게 하는 허들은 두 가지, 마감과 성향의 함정이다. 퀄리티보다 일단 공을 던지는 것. 스무 해 만에 쓰는 첫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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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의 문장, 나의 질투


사람은 자신이 없는 능력을 동경한다. 내가 아는 가장 글을 잘 쓰는 이는 웬만해선 글을 쓰지 않는다. 그이가 R이다. 사정사정해서 받아낸 그의 글은 단정하고 맵시가 좋다. 음표가 달린 듯 흘러가고, 군더더기가 없다. 나는 그 문장력이 질투 난다. 그리고 그가 계속 썼으면 좋겠다. 힘들 때만 쓰지 말고, 괜찮을 때도 쓰라고.


20년 동안 저장만 했다


평범한 나는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200권이 넘는 글쓰기 관련 책을 읽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손을 움직이는 일은 여전히 어려웠다. 글을 쓰긴 썼다. 하지만 20년 동안 저장만 하고 발행은 하지 못했다.

글을 못 쓰게 하는 허들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마감이다. 마감이 없으면 인간은 늘 뒤로 미룬다. 둘째는 성향의 함정이다. 확신이 강한 사람은 만족하지 못해 계속 고치다 발행을 못 하고, 확인받고 싶은 사람은 모두가 좋다고 할 때까지 묻다가 결국 발행을 못 한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화·목·토·일 마감을 만들었다. 지금도 마감 때문에 쓴다.


일단 공을 던져야 한다


성인이 되고 글쓰기를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처음 손에 든 책이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이었다. 내용 생각하지 말고 일단 쓰자, 양을 채우자. 분량의 허들 앞에서 막힌 초심자에게 그 말은 실제로 도움이 된다. 투수라면 일단 포수 앞까지 직구를 던질 수 있어야, 그다음에 원하는 구종을 던질 수 있다. 퀄리티에 관계없이 일단 공을 보내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이 책엔 "당신도 쓸 수 있다"는 분위기가 있다. 좋은 페이스메이커 같았다.



스테이지 1, 클리어


20년이 지난 지금, 원고지 10장은 더 이상 부담스럽지 않다. 여전히 난삽한 글을 쓴다. 하고 싶은 말이 많고, 쓰다 보면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 그래도 괜찮다. 고쳐쓰기가 있으니까. 글을 만드는 마법은 마감이라는 정해진 시간과 자신에 대한 관용이다. 드디어 스테이지 1을 넘어섰다. R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너는 이미 문장이 있다. 이제 필요한 건 조금씩 늘려가는 훈련뿐이라고. 힘들 때만 쓰지 말고, 괜찮을 때도 쓰자고.





시리즈 <쓰는 사람의 책 200권>

01.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 - 사이토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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