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극 붕괴 이후, 한국 경제가 맞닥뜨릴 것들
미국에서 태어난 것만으로도 복권이라 했던 버핏의 말, 지금은 흔들리고 있다. 부동산 쏠림,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기축통화 없는 한국의 구조적 취약성과 사람이 경쟁력인 나라의 조건.
워런 버핏은 미국에서 태어난 것을 두고 '난소 복권'에 당첨됐다고 말했다. 태어날 나라를 고를 수 없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자본을 불리는 데 최적화된 시스템이었고, 그 안에서 꾸준히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자산이 쌓였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태어난 것도 나쁘지 않았다. S&P500 인덱스 하나면 충분했고, 달러는 안정됐고, 무역은 흘렀고, 자산은 불어났다. 일극 체제는 그 자체로 거대한 안전망이었다. 그 안전망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동맹에게 비용을 요구하면서 동맹의 이익은 배려하지 않는다. 한 번 부서진 신뢰는 협정서 한 장으로 복원되지 않는다.
일극 체제가 무너진 자리에는 지역 강국들이 올라서고, 분쟁이 늘어나고, 불확실성이 구조화된다. 불확실할수록 자본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돌아간다. 주식보다 채권, 채권보다 금, 금보다 땅. 한국에서 이미 그 조짐이 보인다. 문제는 종착지가 또다시 부동산이라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한국의 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이 2023년 207.4%로 1994년 일본 버블기 최고 수준인 213.2%에 근접했다고 경고했다. 부동산 업종 대출집중도 지수는 일본 버블 붕괴 직후의 3배에 달한다. 숫자가 이미 경고하고 있다.
일본의 GDP는 1991년 세계 경제의 15%를 차지했다. 2024년 기준으로는 약 3.8% 수준으로 줄었다. 30년 사이에 존재감이 4분의 1 이하로 쪼그라든 것이다. 부동산 가격은 지금도 버블 시기를 회복하지 못했다. 잃어버린 10년이 20년이 됐고, 30년이 됐다. 일본이 그나마 버틴 건 엔화라는 기축에 준하는 통화 덕분이었다. 한국에는 그 완충재조차 없다. 그리고 한국은 지금 출산율 0점대의 나라다. 산아제한을 하다가 이제는 낳아도 된다고 해도, 집 한 칸 마련 못하는 떠돌이 신세, 비정규직, 불안한 미래 앞에서 결혼과 아이를 꿈꾸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인구가 줄면 내수가 줄고, 내수가 줄면 성장이 멈춘다. 일본보다 조건이 나쁜 나라가 일본의 전철을 밟는다면 결과는 더 가혹할 수 있다.
가진 자들은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자산을 더 단단히 틀어쥔다. 없는 사람들은 오를 대로 오른 집값 앞에서 희망을 잃는다. 이 구조가 고착되면 도전이 줄고, 창업이 줄고, 새로운 산업이 나오지 않는다. 한국의 진짜 경쟁력은 늘 사람이었다. 자원도 없고, 땅도 좁고, 인구도 줄어드는 나라가 여기까지 온 건 사람이 자산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부동산 계산기만 두드리는 사회가 된다면, 그 경쟁력은 조용히 사라진다. 일극 체제의 종말은 단순한 지정학의 문제가 아니다. 돈을 굴리는 방식, 집을 사는 방식, 미래를 설계하는 방식 전체를 다시 쓰라는 신호다. 그 변화가 늦어질수록 청구서는 언제나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먼저 날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