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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Aug 31. 2016

언어 순화가 필요하다

2016.8.30.





내 언어의 흑역사


내 언어 습관의 흑역사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난생처음 보는 동네로 이사 온 그때,

큰아이는 4살, 둘째는 2살이었다.


잠깐 아이를 맡길 곳도, 봐줄 사람도 없었다.

신랑은 일 때문에 12시가 다 돼서야 돌아오던 그런 때가 있었다. (저, 잠시 눈물 좀...)

하루 24시간 온전히 두 녀석을 보는 것은

기저귀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그리 뽀송뽀송한 느낌의 육아가 아니다.

특히나 둘째가 아장아장 걷고, 자아가 발달하면서

본격적으로 두 녀석은 티격태격 대기 시작했다.


거실에 종일 굴러다니던 병뚜껑도

왜 오빠 손에 비로소 들어가면 둘째는 그 병뚜껑을 그토록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더 미칠 노릇은 그냥 줘버리고 말면 되는 그 깟 병뚜껑을 오빠도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도망치고 쫒아가고 그러다 붙으면 울고 불고...

그럼 집안에 마지막 남은 이성, 엄마의 말은 이미 허공에서 흩어진다.

('네 순서 기다렸다 놀아' 아니면 '네가 오빠니까 양보하는 게 어때" 이런 말 따위 다 소용없음)



이런 패턴은 하루 종일 무한으로 반복되었다.

둘째가 책 한 권을 나한테 가져오면, 여태 놀던 블록을 집어던지고 첫째도 책을 읽어달라며 졸랐다.

아웅다웅 서로 꼬집고 뺏고 하는 상황에서 살짝 포기상태가 되면서 멍을 때리게 될 때가 있었다.

그때 혼자 작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 지겹다.... 지겨워"


언어의 본보기를 보여줘도 모자랄 판국에 "지겹다"라는 말을 뱉고 조금 죄책감이 들었는데 그건 사실 시작에 불과했다.



'지겹다'를 시작으로


그 이후로도 아이를 보면서 무력감을 느껴질 때면 '지겹다'라는 말이 습관적으로 튀어나왔다.

아이가 자라 말이 통하면서 둘이 싸우는 일은 많이 줄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쿵짝이 맞으면서 놀이를 명목으로 이방 저방 어지르곤 한다. 특히 잘 정리해놓은 서랍에 온갖 물건을 다 꺼내놓을 때면 정말 답이 없다.(이성은 이미 안드로메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어머, 얘들아! 재밌게 놀면서 방이 많이 어질러졌구나. 그럴 수도 있지. 자 그럼, 엄마랑 같이 치워볼까?"


라고 말했으면 좋았겠지만, 애초에 글러먹은 내 성격상 대체로 이런 말이 자동으로 나갔다.


"대체 지금 뭐 하는 거야!?"


"야! 어지르는 사람, 치우는 사람 따로 있냐?"


"못 산다. 난리를 쳐 놓았네 아주."


(헉, 글로 써놓고 보니 무척 무식해 보임)



인내심이 바닥났을 때의 나의 반응



가끔은 좀 더 심화된 인내력 테스트 상황에 봉착할 때가 있다.


물감이나 화분 같은걸 바닥에 엎은 것도 모자라 뿌렸다던가,

잘 정리해놓은 겨울옷 서랍을 열어 옷을 죄다 꺼낸 것도 모자라 다 밟고 노는 것을 발견하면


어떤 초월의 경지가 되면서 화도 안나는 상황이 된다.

심지어 허탈한 웃음이 나기도 하는데 드라마에서 미친 여자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 백분 이해할 수 있다. (독박 육아를 오래 하다 보면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이렇게 달라진다)


그때 체념의 웃음(사실은 울음)과 함께 자주 하던 말이.


"아주, 가지가지한다. 가지가지..."


였는데...



딸이 오늘 나한테 하는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녀석은 엄마의 말에 담긴 복잡한 감정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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