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22.
우리 집의 종교를 말하자면
신랑 집안은 불교, 우리 집은 천주교이다.
고3 신랑이 학력고사를 볼 때, 어머님은 무릎이 바스러져라 절을 하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내 수능 1교시 땡 시작과 함께 성당에 비장하게 입장해
마지막 4교시를 마칠 때까지 기도를 했다.
어머님은 가끔 깊은 산속 절에 들어가 108배를 하고,
우리 엄마는 성당에 매일 출근하신다.
그런 정성에 비하면 우리 부부의 종교 활동은 참으로 보잘것없다.
열성적인 부모님 덕에 엷게 물이 들어있을 뿐이랄까.
그래서인지 서로의 종교에 무척 포용적이다.
심지어 나는 절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결혼하고 '부처님 오신 날'에 비빔밥을 먹으러 몇 번 가기도 했다.
맑은 공기와 우거진 나무속에 고즈넉하게 하게 자리 잡은 절의 향 냄새.
그리고 목탁을 두들이는 소리와 스님의 차분한 음성.
성당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경건함이 그곳에도 있다.
사실 종교란 문화권에 따라 언어와 상징이 다를 뿐 비슷한 기능을 하지 않던가.
(저기. 이슬람 테러 조직 말고요...ㅡ_ㅡ)
아들 딸의 유아 세례
지난 일요일 아이들이 유아세례를 받았다.
열성적인 외할머니의 적극 권유로 진행하게 되었다.
(나중에 종교야 지들 선택이지만, 해둬서 나쁠 것은 없잖아, 송 서방!
송 서방은 이 말을 여러버전으로 한 4번은 더 들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는 사실에 낯설어도 재밌어했다.
현이는 '미카엘', 진이는 '소피아'이다.
특히 유진이는 자신의 세례명을 무척 맘에 들어해서
'소피아'하고 불러줄 때마다 빙그레 웃었다.
티브이에서 몇 번 '프린세스 소피아' 만화를 봐서 그런지
하루 종일 자기가 진짜 '소피아 공주'라도 된 듯 들떠보였다
다음날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다주며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유진이가 주말에 세례를 받았는데요.'소피아' 하고 선생님이 한번 불러주세요"
항상 반달눈을 하고 계신 애교 넘치는 선생님은
'호호호' 웃으시면서 대답하셨다.
"어머, 소피아? 잘 어울리네요. 우리 소피아~ 소피아~"
하지만 그날 오후에 집에 돌아와 간식을 먹던 진이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엄마, 선생님이 '소피아'하고 부르니까. 애들이 나 소피아 아니래."
"그래? 애들은 네가 세례 받은 걸 몰라서 그래"
괜히 엄마 마음에 덜컥 마음이 내려앉았다.
악의는 없겠지만 보이는 대로 거침없이 말하는 아이들의 말에 상처를 받은 건 아닐까.
선생님한테 괜히 이름을 불러달라고 한 건 엄마 오지랖이었나.
이렇게 후회가 슬며시 들던 찰나에 딸이 말했다.
"옷이 아니래. 애들이 '소피아 옷이 아닌데'라고 했어"
웃어넘겼지만 소심한 딸이 당황했을 모습을 상상하니,
괜히 맘이 쓰였다.
(소심한 그 엄마에 그 딸)
다음 날 진이가 입고 간 옷은
자 여기부터 조금 믿거나 말거나 부분이다.
세례 받은 날 밤에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달라고 졸랐었다.
핸드폰으로 아이들과 함께 각자 원하는 것을 골랐는데,
아들은 '슈팅게임 총'을, 딸은 예쁜 옷을 입고 싶다고 했다.
이틀 뒤에 딸내미 선물부터 택배는 도착했다.
그리고 진이는 포장을 뜯자마자 바로 입혀달라고 했다.
옷을 입자마자 빙글빙글 돌며 좋아했다.
딸내미는 그날 씻을 때까지 그 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쯤 해서 옷을 공개한다.
그렇다.
이렇게 우연이 딱 맞아 떨이질 때가 있다.
그 날 '소피아' 세례명을 받은 진이는 '프린세스 소피아'가 그려진 옷을 골랐던 것이었다.
(이쯤 되면 눈을 살짝 가늘게 뜨고 사진을 볼 독자님들 계실 듯 하지만,
이것은 유기농 100%, 무가당 요구르트, 자연산 활어회입니다. )
그리고 다음 날 이 옷을 입고 어린이집에 가자.
여자 친구들이 하나같이 이런 말을 했다고 했다.
"와, 소피아 공주다!"
아이들이 정확히 무엇을 보고 했던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아무렴 어떤가.
후훗.
+
소피아 공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