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9.12.
토요일 밤, 아줌마가 강남에 간 이유
토요일 밤 9시 '코코이찌방냐'에서 카레를 주문한 연유는 이렇다.
마흔을 바라보는 신랑 대학 동기의 결혼식이 일요일이었다.
그리고 부부동반으로 가끔 어울리는 신랑의 친구 역시 대학 동기였다.
명분도 충분하겠다 청첩장을 받고 두 남자는 망설일 게 없었다.
그래서 결국 '친구의 결혼식 참석'이라는 우정 돋는 미명 하에
결혼식이 있을 강남 메리츠 타워에 가장 가까운 호텔로 한 달 전에 예약을 했던 것이다.
(이런 경우 마누라는 필수옵션. 후환이 두려워서라도 혼자는 절대 못 가겠지. 암)
Eat, Drink, Talk
드디어 결혼식 전 날 토요일.
애들은 시댁에 일찌감치 맡기고 저녁 즘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역삼역 근처 '머큐어 엠배세더 호텔'에서 강남의 번화가까지 걸어서 금방 가겠다 싶었다.
내가 일행을 엉뚱한 곳으로 끌고 가지만 않았다면 아마 더 빨리 가긴 했을 거다.
살짝 돌아서 찜해둔 식당에 가보니 대기시간이 1시간.
(대기하는 앱을 깔라고 어쩌고저쩌고)
젊을 때야 머 1시간도 여기저기 구경하며 잘도 기다렸지만
아줌마 아저씨들한테 그런 인내심 따위 남아있지 않다.
(애들한테 쓸 인내심도 매번 찰랑찰랑함)
결국 카레 크림 우동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전에 한번 먹어본 '코코이찌방냐' 카레집으로 갔다.
매운 카레는 항상 옳은 데다가 튀김의 바삭함도 제대로였다.
'너무 배불리 먹어서는 안 된다'
기나긴 밤을 위해 다들 양 조절에 관해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 카레집에서 2인당 1개의 카레만 시켜 뚝딱 먹어치우고 바로 2차 디저트 카페로 향했다. 오는 길에 눈독 들인 컵 티라미수 집으로 갔다. 차가운 티라미수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니 아포가토스러운 게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토요일 밤의 하이라이트 치맥을 위해 치킨집으로 향했다.
맛나는 음식을 먹으며 대화하고 웃는 것 만큼
(아줌마의) 본능적인 즐거움은 없다.
'파랑새' 이야기를 아는가?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고...
그날 밤 꽁꽁 얼은 맥주잔에 잔뜩 채워진 생맥주에서
나는 분명 '행복'을 봤다.
그렇다. 행복은 항상 참 가까운 곳에 있는 법이다.
혹시 갸우뚱하는 미혼 독자님들?
혹시 인내심을 갖고 이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 중
'그러니까 토요일 밤 강남에서 논 게 머 어쨌다고'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줌마에게 보통의 토요일 밤이란,
애들 재우고 집에서 캔 맥주 까먹으며 소설책 읽는 것도 복에 겨울 지경이다.
그런데 그 시간에 강남에서 먹방을 찍다니....
평소 강남역을 쫌 배회하던 척 슬슬 점잖게 걸어 다녔지만 엔돌핀은 폭발 직전이었다.
학창 시절이 좋을 때라고 하는 심정으로다가
지금 친구랑 밥 먹고 커피 마시는 약속에 내심 살짝 질린 미혼분들. (그때 난 가끔 질렸는데... 아닌가)
그때가 좋을 때입니다.
막상 결혼에 애 생기면 '낙장불입'이라구요.
+
다음 날 결혼식에서 한 장.
부인이 스튜어디스라서 한 미모하셨다.
Congr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