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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Sep 28. 2016

새벽 1시 반, 누가 우리 집 현관 앞에 있었나.

2016.9.28.




'공동현관문이 열렸습니다'



"나 먼저 잘게. 언제 잘 꺼야?"


내 맞은편에서 책을 보던 신랑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고개를 돌려 거실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1시가 넘은 시간. 밤 시간은 어쩜 이렇게 시간이 잘 가는 걸까. 읽던 페이지에 끼워 넣을 게 없을까 두리번거리다 식탁 위에 놓인 영수증을 대충 넣고 책을 덮었다.  


"나 아직 안 씻었어. 오빠 먼저 자"


밤에는 부쩍 서늘해진 탓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집에서 내가 추웠었나. 좀 더 수도밸브를 뜨거운 쪽으로 슬쩍 밀었다. 제법 뜨끈한 물에 거울엔 뽀얀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폼클렌징을 했는데도 얼굴이 좀 미끄덩 거리는 기분 탓에 다시 얼굴을 박박 닦았다. 내일이면 또 한주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빨리 씻고 자야겠다. 욕실 서랍에는 수건이 두 장 남아있었다. 건조기에 산떠미처럼 꽉 찬 마른빨래가 생각났다. 몇 시간씩 책 읽고 놀았으면서 빨래 하나 안 갰다는 자책감이 슬쩍 들었다. 갑자기 졸음이 밀려오는 것 같다. 그래 당장 쓸 수건 2개는 있으니 내일 하자.  


욕실 문을 열자 시원한 밤공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슬쩍 한기까지 느끼며 잠옷을 입는 와중에 인터폰에서 '띠리링' 소리가 났다.


'공동 현관문이 열렸습니다'


우리 아파트 1층 공동 현관이 열리면 인터폰 불이 켜지며 표시창이 뜬다.


'뭐야. 잔다더니 어디 나갔다 오는 거야?'




안 들어오고 현관에서 뭐 하는 거야?


잠옷을 입고 옷을 세탁기에 던져놓고 식탁에 걸터앉았다. 다리 한쪽을 접어 안고 무릎에 턱을 받치고 책을 열었다. 책 사이에 끼워놓은 영수증을 빼며 앞으로 절대 책갈피 같은 건 돈 주고 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척, 척, 척, 척, 척"


우리 집은 2층이라 계단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다 들린다. 대충 소리만으로도 어디쯤에 와있는지 가늠이 간다. 나갈 줄 알았으면 재활용 쓰레기 좀 현관에 둘 걸. 집 문 앞에까지 올라온 신랑이 무슨 일인지 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문에 뭔가 툭툭 부딪히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안 들어오고 현관에서 뭐 하는 거야.'  


갑자기 얼굴이 땅기는 것 같아서 손바닥을 슬쩍 갖다 댔다. 아직 로션을 안 발랐구나. 다시 책을 엎어 놓고 안방 화장대로 향했다. 안방 옆에 걸린 거실 시계는 이제 새벽 1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안방 문을 슬며시 열었다. 이불을 다 차고 큰 대자로 누워 자는 녀석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이불을 불룩하게 덮은 까만 머리가 보였다.


잠깐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 중일 거라 생각한 신랑은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두근두근


  안방 문고리를 잡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등줄기가 딱딱하게 굳더니 목덜미 위로 피부가 쭈뼜섰다. 한 손으로 반대 편 팔을 잡고 문질렀다. 오돌돌 하게 닭살이 올라온 피부가 느껴졌다. 그때 현관에서 다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심장을 움켜쥔 것 같았다. 쿵쿵쿵 요동치는 심장소리가 귀에 울렸다.  


  누굴까. 오래전 택배 아저씨한테 공동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준 적은 있는데. 이래서 비밀번호는 함부로 알려주면 안 된다는 거였나. 자책도 이미 소용없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현관에서 뭘 하는 거지. 내가 들었던 발소리, 현관에서 나던 모든 소리가 신랑이 아닌 제3의 인물이라는 생각에 무서워 졌다. 인터폰 앞에 서서 방문객 확인 카메라를 켰다. 아무것도 안 보이고 까맣다. 대각선 방향의 현관을 응시했다.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새벽이라 벌레소리 하나 없이 조용하고 적막했다. 가만히 서 있자니 귀가 살짝 멍해지면서 얼굴에 열이 달아올랐다.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이라면 지금 현관문을 슬쩍 열어 뭔가 확인하려 하겠지. 그러면 기다리고 있던 누군가가 덮칠 테고 나는 비극의 희생자가 될지도 몰라. 아니면 지금 내가 신랑을 깨운다면? 신랑도 침대 밑에 숨겨놓은 죽도를 꺼내 들고 비장하게 현관문을 열 거야. 암. 우리 신랑은 그러고도 남겠지. 문을 여는 순간 누군가가 가격을 가해온다면? 모든 일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니까 정신 바짝 차리자. 일단 호기심을 누르고 일단 자는 게 상책이야.  그나저나 어떻게 그 사람은 우리 집 공동 현관문 비밀번호를 아는 걸까. 그리고 이 야심한 시각에 무슨 목적으로 현관 앞까지 왔다 간 걸까. 아니... 가긴 간 걸까. 아직도 누군가가 현관을 열기를 기다리며 문 앞에 숨어있는 건 아니겠지? 생각을 할수록 목이 탔다. 냉수 한잔을 들이켰다. 잠깐 각 방 창문은 다 잠겄나?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쉽사리 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코를 골고 있는 신랑의 등에 잔뜩 웅크려 몸을 붙여보았다. 내가 누운 방향으로 바로 옆 침대 위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괜히 짠해지며 이 순간이 감사하다. 평범했던 일상의 한 조각이 갑자기 소중하게 다가왔다. 모두들 곤히 자는 이 평화로이 다행스러웠다. 별일 없을 거라고 속으로 되뇌어보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머리에서 꿈틀거리는 와중에도 잠이 밀려왔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그 전날 새벽이 떠올랐지만 일단은 당장 밥을 안쳐야 했다. 월요일 아침은 항상 바쁘다. 어제 미리 해놓았으면 좋았을 일들로 아침은 부산했다. 어린이집 식판을 부리나케 가방에 넣었다. 아들이 유치원에서 가져온 동의서에도 이름을 써서 사인을 해 가방에 넣었다. 식탁에 아침을 차려 놓고 나도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여보 나 갈게. 얘들아 빠빠이 "


"오빠 가? (나 할 말 있는데...) 이따 전화할게"


항상 제일 먼저 집을 나서는 신랑이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문 닫치는 소리가 안 들리더니 신랑이 아이들을 부른다.


"얘들아, 이리 좀 와봐."


밥 먹던 아이들이 현관으로 달려가는 모양이다. 나는 화장대에서 비비크림을 바르며 일시정지 상태가 되다. 볼에 비비크림을 펴 바르며 귀를 기울였다.

 

"이거 엄마 갖다 줘"


아이들이 아빠에게서 받아온 건 배달 우유 2개와 우유대금 고지서였다.    



.......  




그러니까.


그게.


아...


그랬던 거였다.     





+  


강성원 우유 아저씨,


우유는 아침에 배달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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