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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Sep 08. 2016

직장에서 택배 뜯어보는 재미

2016. 9.7.




딩동, 덜컹덜컹 수레 소리


일하다가 슬쩍 점심 먹을 때가 됐나 싶을 때면 택배 아저씨가 온다.

엘리베이터 딩동과 함께 수레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어김없이 아저씨다.

큰 수레에는 보통 직장에서 주문한 큰 박스들이 실려있는데,

그 위에 A4 사이즈의 택배 봉지나 작은 박스가 있으면

마치 파블로브의 개가 침을 흘리듯 이렇게 생각한다.


'보자보자.... 내가 주문한 게 있었나?'


최근에 주문한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수취인을 확인하는 순간엔 기대에 가득 차곤 한다.



택배 박스엔 뭐가 들었나
 

내 것이 아니라도 다른 사람의 택배 물건을 구경하는 건 은근 재미난 일이다.

특히나 그 안의 내용물이 화장품, 옷, 가방 종류면 서로 할 말이 많아진다.

그중 화장품은 같이 발라보기도 하고 향도 맡으며 가격도 물어본다.

(립스틱이야말로 발라보는 재미의 결정판)


특히 내가 평생 구입할 일이 없을 듯한 물품이 옆 사람의 택배박스에 있으면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한복 아가씨(내 옆 동료의 별명)가 돈 주고 산 물건 중 기억이 남는 물건은 패브릭 향수와 게임 시디였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패브릭 향수를 갖고 다니며 수시로 옷에 뿌린다고 한다.(그런가요. 젊은 독자님들?) 앙증맞은 사이즈의 스프레이를 칙칙 뿌리면 짙은 꽃향기가 난다. 왠지 여자 핸드백에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은 아이템이라 그녀가 참 '여자 여자'로 보였다. 두 번째는 '보아 연예인 만들기' (이름 정확히 생각 안남) 였는데 초등학교 때 무척 재밌게 한 게임이었다고 한다. 가상의 공간에서 보아를 최고의 연예인으로 키우는 게임이었는데, 나는 세대차이를 살짝 느끼는 것과 동시에 잘 안다고 생각한 그녀가 조금은 멀게 느껴졌다.  


  

  

오전에 도착한 택배는 이러했다.



하나는 나의 딸내미의 신상 구두였고, (네, 전 애 엄마예요)

나머지 하나는 한복 아가씨가 주문한 옷 두 벌이 있었다. (요즘 연애 중)

좀 더 큰 박스는 다른 동료의 냉동 핫도그였다. (이 분 자취하십니다)


냉동 핫도그를 주문한 동료는 아직 같이 일한 지 두 달밖에 안되었다. 말 수가 적은 그녀와 친하진 않지만 택배를 받아 전달하다 보니 주로 먹거리를 주문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취를 하는 그녀는 냉동식품이나 완제품 위주로 주문을 하는데, 나름 미식가여서 은근 괜찮은 것을 잘 골라 주문한다. 저번엔 홈쇼핑에서 알렉스 돈가스를 시켰는데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리면 방금 튀긴 것처럼 된다나. 그녀가 그동안 주문했던 물품 중 최고의 먹거리는 '간장 전복'이었다고 한다. 가격은 좀 있어도 영양도 건강도 챙길 수 있다며 눈에 힘을 주어 말해줬다.


택배는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준다. 그 사람이 읽는 책과 듣는 음악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자신이 힘들게 번 돈을 써가면서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정성이야 말로 그 사람의 주요 관심사를 보여준다. (가끔 홈쇼핑 주문 목록에 기저귀 주문이 쭉 뜨면 출산 직후가 떠오른다. 당시엔 기저귀가 떨어지면 그렇게 불안해서 항상 쟁여놓아야 했으니까) 직장에 도착한 동료의 택배를 같이 뜯다 보면 약간의 사생활에 대한 대화도 나누며 친해지는 기분이다.



그녀의 신상 원피스


한복 아가씨가 주문한 옷 한 벌을 들어 펼쳐 내가 대보았다.


"이거 상의야?"


"하하, 원피스예요. 좀 짧으려나"


"뭐, 원피스? 이게 어떻게..."


한복 아가씨는 161에 정말 마른 체형,

나는 170에 '건강한' 체형이다.('통통한' 대신 '건강하다'라고 하면 비겁한 건가요)

그녀와 나의 사이즈가 다를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옷을 보니 훅 와 닿았다.

같은 천 길이로 누군가는 원피스로 , 누군가는 상의로 입는다.


내일은 '간장 전복' 주문처나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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