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숑로제 Oct 04. 2016

나도 우아해지고 싶다

2016.10.3.




영화 '어느 멋진 날'의
그 기품있던 엄마


그래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내 머리가 쓸만했나 보다. 저번 달에 본 영화는 별 생각이 안는데 학창 시절에 본 영화 중에는 방금 본 것처럼 또렷한 장면들이 있다. 게다가 별 중요하지 않은 장면인데 말이다.


 고등학교 때 '어느 멋진 날'이라는 영화를 보고 있었다. 싱글 맘인 미셸 파이퍼가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떨고 있었다. 그날 하필 맡길 곳이 없어 사무실까지 데리고 온 아들은 엄마 속도 모른 채 스케이트 보드를 타며 장난치고 있다. 건축가(?)인 그녀가 직접 만든 우드락 모형은 발표에 무척 중요한 것이다. (영화 전반부에 걸쳐 그녀는 작품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뚜껑을 열리게 만드는 장난꾸러기 아들이 영 거슬리긴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프레젠테이션 직전 '건물 모형'을 아주 아작을 내고 만다. 나도 너무 몰입한 나머지 '하악~' 하며 숨을 멈췄다. '어떻게 해...'하며 다음 장면을 기다렸다.


 전개는 내 예상을 빗나갔다. 황망한 표정의 엄마는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이 무척 속상함을 아이에게 피력한다. 엄마는 흥분해 소리를 치거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호흡을 가다듬고 묵묵히 자신이 할 일을 이어서 한다. 두 아이를 키우는 지금은 그 장면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안다. (그 상황이면 이미 내 이성은 안드로메다로) 내가 유독 그 장면이 그토록 인상 깊었던 이유는 엄마가 보여주는 그 '위엄' 때문이었다. 아들에게 고함을 치며 벌을 줘도 화가 안 풀릴만한 상황이었음에도 엄마의 기품을 잃지 않았던 엄마였던 것이다. (안다 영화라 가능하다는 것을)



주인공의 우아함에 현기증 난다


어제 본 영화 '언 에듀케이션'에서도 그런 '우아함'을 보았다. 고등학생 제니가 나이차가 꽤 많이 나는 갑부 데이빗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데이빗은 대학 입학만을 목표로 달려온 제니에게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준다. 미술품 경매, 비싼 음악회, 재즈바, 파리 여행 등으로 정신을 못 차리던 제니는 결국 데이빗으로부터 청혼을 받게 된다. 세련된 매너로 이미 제니의 부모님 마음도 홀딱 빼앗은 데이빗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부모님과 식사를 하면서 결혼 승락을 받아내겠다고 한다. 모두 들뜨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는 차 안, 제니는 우연히 차안에 있던 우편물을 보고 데이빗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제니는 데이빗에게 당장 차를 집으로 돌리라고 하는데, 뒤에 타고 있던 부모님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눌려 일단 집으로 들어가고 제니는 그녀의 집 앞에서 데이빗과 단둘이 남는다.


데이빗은 바람피는 남자가 하는 전형적인 헛소리른 늘어놓는다. 부인과는 곧 이혼할 거다, 모든 일이 잘 될 거다, 좀 기다려달라. 그 말에 순진한 제니는 당장 가서 아내에게 이혼을 알리라고 하지만 남자는 고개를 저을 뿐이다. 당장은 안 된다고. 계속 추궁을 당하는 남자는 계속 이 상황에서 도망치려 하는데 제니는 울면서 애원한다.  


"Please don't let me tell on my own" (내가 부모님께 혼자 설명하지 않게 해줘요)


욕을 한 사발 해도 부족한 그 딴 놈에게 '혼자 설명하지 않게 해달라'는 '우아함' 이라니. 순간 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사실 이단 옆차기에 쌍 싸다구를 날려도 성이 안 차는 파렴치한을 향한 그녀의 애원은 누군가에게는 바보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심지어 그녀는 그에게 해명을 할 시간을 잠깐 주기까지 한다.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뭉개진 상황에도 그녀는 이성을 잃지 않았다. (결국 남자는 제니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비겁하게 떠난다) 제니는 배신의 충격에 며칠은 허덕인다. 하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고 뒤쳐진 학업을 보충할 방법을 궁리해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공부에 열중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이 목표로 삼던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 통지서를 받고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사랑과 전쟁'에 나올법한 사건이었지만 극 중 주인공의 태도와 그 후의 처신이 영화를 명품으로 만들었다.



난 우아해질 수 있을까


  예전에는 내가 참 우아한 사람인 줄 알았다. 나름 미술관이나 공연도 종종 가며 문화생활도 하고 독서도 게을리하지 않았으니 이만하면 괜찮은 사람이겠지 싶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나만의 착각이었음을 처절하게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이다. 아이를 키우며 참 내가 별 볼일 없는 사람임을 절절하게 느끼게 되었다. 참 하찮은 일에 버럭 하기도 하고 오늘은 무사히 넘어가나 하는 날도 끝내 폭발해서 고함을 치기도 했다. (그런 나 스스로의 모습을 떠올리면 진심 입맛이 가신다.) 고집부리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내 모습은 때로는 한 마리의 야수와도 같으니 정말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이렇게 영화 속 주인공에게 우아함을 그토록 갈구하는 것은 어쩌면 내 인생의 숙제와도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우아해지고 싶다. 안 좋은 감정으로 흥분해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에도 호흡을 가다듬고 기품을 유지하고 싶다. 그건 나같이 욱하는 성격에 참 어려운 부분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간 5년을 돌이켜보면 점점 나아지고 있긴 하다. 최근에 읽은 공지영 에세이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에 이런 말이 나온다.


"마음에도 근육이 있어. 처음부터 잘하는 것은 어림도 없지. 하지만 날마다 연습하면 어느 순간 너도 모르게 어려운 역경들을 벌떡 들어 올리는 널 발견하게 될 거야. 장미란 선수의 어깨가 처음부터 그 무거운 걸 들어 올렸던 것은 아니잖아. 지금은 보잘것없지만, 날마다 조금씩 그리로 가보는 것. 조금씩 어쨌든 그쪽으로 가보려고 애쓰는 것. 그건 꼭 보답을 받아. 물론 너 자신에게 말이야"


그래,

조금씩 우아해져 보는 거다.

이래 놓고 또 욱해서 후회하고 자책을 할지언정

어쨌든 기품을 잃지 않게 스스로를 가다듬어 나가는 거다.


천성이 그리 쉽게 바뀌긴 하겠냐만은,

또 모르지 않은가.

죽는 순간에도 "나는 조선의 국모다" 하고 외쳤던

왕후의 기품이 나에게도 생길지.



  








매거진의 이전글 새벽 1시 반, 누가 우리 집 현관 앞에 있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