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숑로제 May 02. 2016

자전거 보조바퀴를 떼다

2016. 5.1

                            


잘 크고 있구나

                                                                                                                                                                                                                                                                                                                  

아이를 키우다 보면 '녀석이 잘 크고 있구나'를 확인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이 이어진다.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개지며 기저귀에 힘겹게 똥을 싸 내는 일부터 (출산 직후 아이에게 이상이 생긴 줄 알고 식겁함)

뒤집을랑 말랑하며 보는 엄마 아빠를 감질나게 하다 결국 "그렇지! 뒤집었다" 환호성을 자아내기도 하고,

"엄마 아까 왜 나 때렸어? 나 화났어."라는 말로 엄마를 움찔하게 만들기도 한다. 

(저기... 자주 그러는 건 아니고요. 동생을 자꾸 괴롭히길래 하지 말랬는데, 자꾸 계속해서... 그래서 저도 녀석을 조금 괴롭혔습니다만)





보조바퀴를 떼다


   나 혼자 자체적으로 '일요일에는 아빠와 함께'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 신랑과 아이들을 먼저 집 앞 광장으로 내보냈다.  내가 특별히 요구하지 않아도 요즘엔 신랑이 아이와의 시간을 즐기는 것 같아서 멋있다.

 ( 어이~보고 있어? 앞으로도 쭉 잘하라는 뜻이니까 혹시라도 '이만하면 된 건가?'라고 생각하면 곤란해)  

잠옷을 입은 채 식탁에 앉아 커피를 홀짝거리며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읽고 있던 중이었다.


"엄마~ 여보~ " 


창밖에서 신랑과 애들의 소리가 들린다.( 우리 집은 2층이고 아랫집은 어린이집이라 큰소리로 불러도 민망할 일은 없다. 윗집은... 모르겠..)


"렌치랑 물 좀 줘, 자전거 보조바퀴 떼어 달라네"


 몇 달 전부터 보조바퀴를 떼어달라고 무척이나 졸랐는데, 녀석은 보조바퀴를 뗀다는 것은 '형아'들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아빠랑 같이 하라고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아들은 오늘이 기회라고 생각한 것이다. 배스킨라빈스 핑크색 비닐 안에 굵직한 렌치와 물통을 넣어 손잡이 부분과 끈으로 된 줄자를 묶었다. 그리고 닻을 내리듯 1층으로 살살 아래로 내려줬고, 아이들은 줄로 뭔가를 내려줬다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지금 생각해보니 조만간 따라 할 것 같다.) 신랑은 빨리 나오라고 했고, 나는 아직 잠옷 차림인 내 모습에 머쓱하며 다시 식탁에서 여유를 부렸다.(이런 기회는 좀처럼..)  


   아들이 얼굴이 엄청 벌게져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정오의 땡볕에 오래간만에 눈이 부셔서 한 손으로 햇빛을 가렸다. 머리는 채 안 말라서 뒷목이 슬쩍 바람에 으슬하니 시원했다. 보조바퀴를 슬쩍 올린 상태에서 타는 중이었다. 거의 바퀴 두개로 타는 것이었다. 그래도 얼굴이 너무 빨개져서 신랑한테 좀 쉬게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더운 이유도 있는데, 제 저기 여자애 때문에 자꾸 얼굴 만져서 그런 거야"

"누구? 저기 킥보든 타는 애?"


여자애는 우리 아들과 유치원 같은 반 친구라며 자기 이름도 야무지게 이야기한다. 혼자 나와 노는 듯 했다다.(우리 집 애들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여자아이는 상냥하게 아들 이름을 불러가며 같이 놀자고 하는데, 어째 녀석은 계속 슬금슬금 피하는 눈치였다. 워낙에 숫기가 없는 아들은 웬만큼 많이 본 친구가 아니고서야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 그러면서 계속 머리를 만지고 얼굴을 비빈다. 어, 이것은 영락없이 부끄러운 남자의 모습이 아닌가. 그 여자애를 좋아하는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의식을 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제스처였다. 둘이 잘 놀았으면 했다. (여자애가 이쁘장하니 맘에 들어 그런 것도 있다)


"아들, 친구가 같이 놀고 싶나 봐. 자! oo아, 친구 잡아봐!"

"이번엔 아들 네 차례야 잡아!"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아쉽게도 별 소득이 없었다. 아들은 결국 자전거만 타고 여자애는 입을 삐죽거리며 저 멀리 오는 자기 엄마를 불러댔다. 신랑은 결국 보조바퀴를 다 떼줬고, 아들은 이제 바퀴 두 개로 정말 잘 탄다. 



일요일 오후 우리는...


일요일 오후 집 앞 광장,


'세발자전거를 혼자 잘 타면 오빠 자전거는 너 준다'라는 말에 딸은 페달을 더 힘껏 굴렸다. 

(아들은 더 큰 자전거 사줄 계획)


아들은 이제 자기도 형아라고 무척이나 우쭐해했다.

(축하한다. 대견해.)


나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아들의 모습에 사랑의 작대기가 되려고 했다. 

(여자애 이쁘던데~왜)


아빠는 엉덩이에 난 종기에도 불구하고 작은 자전거를 타며 열심히 시범을 보였다. 

(그곳은, 괜찮은 거야?)


                                  

10년 뒤에 이 글을 보면 무척이나 짠해질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내 이름에 대한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