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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Apr 28. 2016

내 이름에 대한 단상

2016. 4.28


Ashley? Why did you choose this english name?

 


영어작문 수업 첫 시간.

담당 교수는 젊었을 때 제법 잘 생겼겠다 싶은 50대 캐나다인이었다. 그는 밤갈색 콧수염을 엄지와 검지로 살살 쓰다듬으며 출석을 부르다가, 내 차례에 갑작스러운 질문을 하나 던졌다. 

"Ashley? Why did you choose this english name?"

난 차마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탄로가 날 것 같아서이다. 영어 이름을 준비해야 한다고 전달받았을 때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는데, 캐나다에 아주 잠깐 머물 때 사귄 친구 중 가장 쭉쭉빵빵했던 여자애가 Ashley 였기 때문이다. (Ashley는 영화배우 '리브 타일러'와 정말 판박이였다. 비율이 훌륭한 말상에 도도한 이미지, 동글 납작한 내가 당시 선망하던 스타일이었다) 중후하기 까지 했던 첫인상과 달리 장난기가 넘쳤던 그는 우물쭈물하는 나에게 이름의 뜻을 알아오라고 했다. 


 숙제 아닌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몹시 투덜거리며 이름에 관련된 사이트를 뒤졌다. 그러다 '이름에 관한 모든 것'과 같은 사이트를 발견했다. 이름의 유래나 뜻, 표기법, 그리고 심지어 이름이 등장했던 영화나 소설까지 없는 게 없이 모든 것이 다 나와있다. Ashley는 사실 남자 이름이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이 너무나 사랑했던 남자의 이름이 '애슐리'였다.) 여자 이름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여자 주인공이 Ashley였던 한 미국 드라마가 대박을 치면 서부터이다. '이 이름은 이렇게 놀림받을 수 있어요' 부분에서는 Ashley가 Ashtray (재떨이)로 아이들의 놀림감이 될 수 있다는 친절한 충고도 나와있었다.





I love Ock : 포르노 사이트? 



 내 한글 이름은 무척 촌스럽다. 마지막 글자가 '옥'자가 들어가면 어지간해선 현대적인 이름이 나올 수 없다.'자'로 끝나는 이름과 같은 운명이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이미지와 직결된다고 믿는 나는 항상 이름이 썩 맘에 들지 않았다. 요즘에 잘 볼 수 없고, 특이하다는 점 빼고는 단점만 수두룩했다. 내가 이름에 관해 들었던 중에 기억 남는 것 몇 가지를 꼽자면,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자신과 친한 양호선생님의 이름과 내 이름이 같다는 것과(그 양호 선생님은 퇴직을 앞두신 분이라 했다.), 일제 시대를 배경인 유명한 사극의 여주인공의 이름과 같았다는 것(시대의 비극을 상징하는 비운의 여주인공이었다), 외국인들이 '옥'자를 발음하기를 무척이나 힘들어한다는 점이다.('우'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싸이월드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내 미니 홈피 주소는 iloveock 이었다.(I love ock:나는 옥을 사랑한다.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뜻이었음)  직장 동료 휘트니에게 내 사진을 보여줄 겸 싸이월드 주소를 알려주었다. 그리곤 휘트니가 조심스럽게 내 주소가 좀 오해받을 수 있다고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설명인즉슨, 남자의 중요한 부분을 가리키는 은어 중 'cock'이라는 말이 있는데, 'i love ock'이 언뜻 보면, 포르노 사이트 주소로 쓰일 법하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이건 생각지도 못했다. (당연한 것 아닌가? 난 한국인이니까 ㅠㅠ) 그동안 외국인 친구에게 내 미니홈피 주소를 알려줄 때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상상하니 얼굴이 화끈거려왔다.('나는 ㅗ추를 좋아한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다 방학 때 잠깐 한국에 건너온 친구는 자기의 이름이 너무 싫다고 불평했던 적이 있다. 그는 '석(suk)'으로 끝나는 이름을 갖고 있었는데, 재수없다는 뜻의 'suck'과 발음이 비슷하다했다.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름을 갖고 놀릴 일을 없었겠지만 그래도 나는 네 맘 안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해줬었다.



이름이 만드는 얼굴의 표정



 인터넷에 떠도는 무슨 대학교의 연구결과 중 이름에 관련된 흥미로운 기사가 있었다. 발음했을 때 입모양이 모아지는 이름에 남녀 모두 성적 매력을 더 느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쉴라, 줄리아, 주디, 애슐리'를 발음하면 입술이 앞으로 쭈욱 나오는데, 그 모습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섹시하게 느껴질 수 있다나 뭐라나. 내 이름의 '옥'자가 '마릴린 먼로'스러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입을 쭉 내밀고 배시시 웃었던 기억이 난다. 기사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름을 발음했을 때 표정에 대해 아주 관심이 많다. 그러면서 이름 끝자에 대해 나만의 취향이 확고하게 생겼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이름의 끝 자는 '진, 민, 림, 빈'과 같은 글자이다.  '유진, 지민, 혜림, 수빈'과 같은 이름은 발음을 했을 때 표정을 상냥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을 부린다. 이 글자의 공통점은 모음'ㅣ'에 각진 받침이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선호하는 이름 끝 자는 '현, 전'과 같은 글자이다. '수현, 보연, 유현, 세전'과 같은 이름은 입꼬리가 적당히 올라가면서 단호하고 절제된 표정이 연출된다. 이 이름은 협상이나 계약이 중요한 비즈니스에 적합할 것 같다.

 가장 선호하지 않는 글자는 '옥, 호, 우, 유'인데, 예상하다시피 입모양이 의도하지 않게 섹시해진다. 누군가를 유혹하려고 작정한 것이 아닌 이상 평소엔 유용하지 않은 표정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내 이름 끝의 '옥'을 발음을 할 때 얼굴은 무척이나 소심해 보이기까지 한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느낌에 기반한 것이니 혹시라도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나는 무척 상냥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내가 좋아하는 이름 글자를 보니 말이다.  

이름에 계속 신경이 쓰이는 것은 상대방에게 보여주고 싶은 표정에 집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섹시한 표정의 '옥'이도 나쁠 것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설마 주먹이 날라오는건... 아니... 겠지... 요?)




글을 쓰고 나니 너무 나만의 세계에 빠져 글만 뚱뚱해졌다. 

브런치 작가 선정 이후로 내 글은 아주 약간의 '명예'를 얻고, 엄청난 '재미'를 잃은 기분이다. 

브런치에 발행할 생각에 뭔가 자꾸 힘이 들어가 큰일이다. 

내용은 자꾸만 길어지고 가독성은 떨어질 것 같고 그러다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실패할까 걱정도 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개인적인 기록도 이유지만 

누군가에게 소소한 재미를 선물하고 싶은 욕심도 있기 때문이다.  


흠...

역시 '옥'이는 소심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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