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3.9.
내 성격은 '화장지'
사람의 성격을 밀도로 표현해보자.
위인전에서나 접했던
올곧고 강직한 안중근의 성품이
'무쇠, 벽돌'과 같다면,
내 성격은 '해면체, 스펀지'
좀 더 솔직하게 '화장지' 정도 된다.
그렇다. 나는 주위 영향을 잘 받는다.
'근묵자흑'이란 사자성어도 있는데
나는 멀찌감치 묵만 쳐다봐도 쥐색으로 감쪽같이 변해있을 거다.
나는 친하게 지내는 사람을 나도 모르게 따라 한다.
특히 호감이라도 생길라치면 글씨체도 슬쩍 비슷해지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친구가 자주 쓰는 단어나 제스처를
어느새 따라 하고있다.
이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십 대 때 '타임 투 킬'이나 '펠리컨 브리프'와 같이 법정 스릴러 영화가 유행할 때, 줄리아 로버츠나, 산드라 블록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법률을 공부해가며 법정의 변론을 준비하는 모습이라도 보면 나도 싸매고 치열하게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기분'이...)
가장 최근의 예를 들면,
예전에 신랑 일을 도와주며 함께 일했던 한복 아가씨와도 그랬다.
그녀는 립스틱을 참 자주 발랐다.
밥 먹고 바르고
생각날 때 바르고
심심하면 바르고
그러다 거울이라도 보면 바르고 또 바르며
립스틱을 차라리 새끼손가락에 붙이고 싶다고 했다.
한 통을 한 달도 안돼서 쾌척하는 그녀는
일 년이 넘어도 줄 생각을 안 하는 내 립스틱을 보면서 닳지 않는 '마법의 립스틱' 이라며 신기해했었다. 그런데 이제 복직을 한 지금.
내가 요즘 립스틱을 그렇게 발라댄다. 그런다고 싱싱한 그녀처럼 젊어지는 것도 아니건만 내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주 틈틈이 부지런히 바르고 있다.
은행에 자주 가야 하는 이유
오후에 은행에 갔다.
오래 기다린 탓인지 축 쳐지는 게 나른했다.
내 신분증과 통장을 직원에게 건네고 멍하니 창구 의자에 앉았다.
창구 안에 상품으로 준비한 듯한 여행가방이 괜찮아 보여서
'어떻게 하면 저걸 얻을 수 있나요?' 하고 물어보면
너무 없어 보일라나 싶어 고민하던 찰나였다.
직원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손가락 뼈가 잠시 가출한 듯한 재빠르고 흐물거리는 듯한 손놀림.
하지만 분명히 들리는
'톡! 톡! 토. 도. 독!'
야무지고 경쾌한 계산기 소리.
그건 정말 근사했다.
게다가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타자를 치듯 무표정하게 계산기를 눌러댈 땐
저 깊은 곳에서 탄성을 우러러 나왔다.
결국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계산기를 두들이며 가계부를 좀 써볼까 하는 심정이 되어버렸다.
이제 시간 나는 대로 은행에 자주 가야겠다.
'돈'쓰는 게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나 같은 사람은
가서 야무진 직원의 기운을 좀 받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 더,
형광펜으로 종이에다 무심하게 슥슥 칠해보는 것도
어쩐지 따라 해보고 싶다.
+
누누이 느끼는 거지만,
나는 어른들이 말하는 소위 '친구 잘 만나야 하는' 타입임에 틀림없다.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