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간 미용실의 '카리스마 선생님'

2017.2.19.

by 미숑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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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선생님 취향?



어릴 적 나는 뭔가 확실해 보이는 선생님이 좋았다.


학생들이 좀 떠들어도 지적도 잘 안 하고,

수업 분위기가 영 아니어서 단체로 혼나는 와중에도,

워낙 천성이 순둥이 셔서 하나도 안 무서운 선생님이 있긴 있었다.

그런 선생님은 숙제 검사를 악착같이 하지도 않았고,

설사 숙제를 안 해온 학생이 있다 할지라도

가혹한 벌 따위는 내리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그런 선생님한텐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내가 선호했던 선생님은

성깔이 좀 있어서 혼낼 때엔 나를 움찔 하게 만들다가도

곧 이내 능구렁이 마냥 언제 그랬냐는 듯이

농담도 살살 섞어가면서 수업 내용의 핵심을 집어내 주는

뭔가 '카리스마' 비슷한 게 있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내가 숙제를 매번 착실히 해가는 범생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이유는

소싯적 좀 놀았다는 '한복 아가씨'와 이야기를 하면서이다.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 스타일을 말했더니 그녀가 말했다.


"어머, 전 그런 선생님이 젤 무섭고 싫었는데..."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내가 '선생님'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에게

나는 지금도 모종의 '카리스마'를 찾곤 한다.


사회에서 만나는 선생님은 주로 '치과' 나 '미용실'에 있다.

얼굴을 구겨가며 입을 벌려 보이며,

미용실 의자에 결박이라도 당한 듯 얌전히 미용 가운을 목에 졸라맨 와중에는

검증되지 않은 확고함 일지라도 '카리스마'에 왠지 살며시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아닐까.



처음 갔던 미용실에서 만난
'카리스마' 넘치는 선생님.



저번 달에 설을 앞두고 급하게 찾은 번화가의 미용실에서

우리 신랑은 7년을 넘게 고수해온 일명 '핑크 파마' 스타일을 청산했다.

백화점 근처라 20대들이 주로 오는 곳이었는데,

우리 부부보다 10살은 족히 어려 보이는 그 디자이너는

신랑 머리를 처음 몇 번 만지더니 무심하게 툭 내뱉었다.


"요즘 누가 이런 머리 해요?"


그때 훅 머리에 들어오던 신선함이란.


그동안 미용사들이 비슷비슷하게 만들어낸 신랑의 컬에

사실 신랑이나 나도 좀 지겨워진 터였다.

마치 '날 거부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하며 호기심을 느끼는 재벌 2세처럼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그 멘트가 좋았다.


신랑의 옆머리 뒷머리를 시원하게 쳐내고

투 블록 스타일로 윗머리는 컬을 주고

요즘 유행하는 가르마를 타자고 했다.


그렇게 화끈한 제안을 해주는 선생님은 몇 시간 뒤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신랑을 좀 더 젊고 깔끔한 이미지로 재탄생시켜주셨다.


게다가 남자 머리는 3주면 금방 지저분해지니까 정확히 3주 후에 예약을 잡으라고 했다.

어색해하는 신랑보다 내가 더 맘에 들었던지라

나는 냉큼 3주 후에 예약을 잡았고 약속대로 어제 미용실에 갔다.


'카리스마 선생님'은 신랑의 가르마 방향을 다르게 커트를 해서

또 다른 스타일을 연출해 보였다. 신랑이 샴푸를 하러 간 사이에 나에게 말했다.


"신랑분 이번에 다르게 커트해봤어요. 이렇게 두 타임 커트하고, 살짝 더워질 즈음엔

태양의 후예 송중기 머리스타일로 짧고 깔끔한 파마로 가봅시다"


이럴 수가.

이 분은 신랑의 상반기 헤어 스타일의 구체적인 플랜마저 갖고 계셨던 것이다.

재무설계사도 아니고, 보험설계사도 아니고, 학습지 선생님도 아닌데,

뭔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해주는 이 꼼꼼함에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다.


내친김에 나는 내 머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았다.


"선생님, 제가 이렇게 파마를 하고 있거든요. 염색도 할 때도 되었고..."


선생님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이리저리 보더니 역시 거침없이 말했다.


"단발머리 안 지겨워요? 난 한 스타일 계속하는 거 워낙 싫어해서요"


"아, 네. 그럼 전 어떻게 해볼까요?"


"어깨보다 내려가게 좀 더 길러봐요. 염색은... 피부가 초콜릿색이니까 와인색이 좋겠네"


어우.

카리스마.


그동안 몰랐었는데 이제 알았다.

그래.

디자이너라면.

아니, '디자이너 선생님'이라면.

진짜 이렇게 리드하는 맛이 좀 있었어야 한다.

특히 나처럼 우유부단하고

매번 하던 머리만 반복하는 사람에겐 더욱 그렇다.


나는 원래대로라면 자를 때가 한참 지난 머리를

엄지와 검지로 만지작 거리며

신뢰와 믿음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대답했다.


"네. 머리 길러서 꼭 올게요.(초롱초롱)"





+


머리 빨리 기르려면

야한 생각이라도 좀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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