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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Oct 16. 2017

소설 대 영화, '영혼의 집'

2017.10.15.


'운명의 딸'을 읽고 알게 된 작가, 이사벨 아옌데


 나는 여자 주인공을 좋아한다. 게다가 그 여자 주인공이 굳세고, 씩씩하고 개척정신이 강하면 더욱 좋다. 중학교 때부터 나는 무슨무슨 '딸'로 끝나거나 무슨 '꽃'으로 끝나거나 아니면 소설의 제목이 여자 주인공 이름인 제목에 유독 끌렸다. 예를 들면 세상의 모든 딸들, 헤븐, 다락방의 꽃들, 내 사랑 휘트니, 가슴에 핀 붉은 장미, 테스 등등. 이 소설들의 공통점은 주인공이 여자이고, 팔자가 겁나게 센 데다가 별 풍지풍파를 다 겪지만 나름 잘 이겨낸다는 것이다. 물론 비극으로 끝나는 이야기도 많지만 사실 중요한 건 인물이 자신의 운명에 대처하는 자세이지 마지막 엔딩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운명의 딸'이라는 제목을 발견하고는 망설임 없이 빌려왔다. 이건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봐야 하는 소설이었다. '운명의 딸'이라니, 이건 마치 김치와 치즈 덕후인 내가 메뉴판에서 '김치 치즈 돈가스'를 발견한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이 소설의 작가 '이사벨 아옌데'와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 '운명의 딸'에는 참으로 당당한 여자들이 수두룩 하게 나온다. 배경이 칠레와 개척시대의 미국을 그려내서 스케일도 굉장히 넓다. 영화로 만들어질법한 내용이라 검색을 해보았지만 아직 영화화되지는 않았나 보다. '운명의 딸'을 재미나게 읽고 조사를 좀 해보니 작가가 주로 이런 진취적인 여성상을 그린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나는 '옳다구나!' 하며 요즘 이 작가 책을 정주행하고 있다.




소설 '영혼의 집'  vs  영화 '영혼이 집'

   어제 읽은 소설은 '영혼의 집'.'운명의 딸'과 마찬가지로 '영혼의 집'도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인물로 가득하다. 이사벨 아옌데는 칠레 출신의 작가다. 독특함을 넘어서서 이야기 전반에 걸친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어찌 보면 살짝 '오컬트'적인 분위기가 깔려있다. 주인공에게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능력이 있다는 설정도 그렇고, 남미 특유의 덥고 끈적거리는 분위기, 그리고  원주민들의 토속적인 느낌이 신비롭다. 남미 소설은 '백 년의 고독'처럼 어쩐지 굉장히 달고 과즙이 줄줄 흐르는 동남아 과일 같은 느낌이 난다. (어째 비유가 다 먹는 거....)


   토요일 하루 종일  뒹굴거리면서 남미 분위기에 취해 읽었다. 마지막 장을 덮기도 아쉬워 작품 해설까지 싹싹 읽었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또 뭐 없나 싶어서 검색을 해보니 세상에, 이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4년 전 영화로 만들어졌었다. 그럼 그렇지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그냥 둘 수가 없었던 거지. 그래 오늘의 토요 영화는 바로 이거다 싶었다. 게다가 이 호화 캐스팅은 뭔가. 소싯적 유명한 배우들이 한데 모여있다. 글렌 클로즈, 안토니오 반데라스, 제레미 아이언스, 위노라 라이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할리우드 배우들이다.  온라인으로 0.8달러를 결제하고 설레는 마음 아이들이 잠들 시간을 기다렸다. 이 이야기를 영화로 어떻게 만들었을까? 4대에 걸친 긴 이야기니 좀 생략도 했겠지. 이리저리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1편을 능가하는 속편이 드물듯, 원작인 소설을 뛰어넘는 영화도 별로 없다. 원작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오리지널 스토리를 그저 사실적으로 재현해서 보여주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인물의 캐릭터를 살리다 못해 그 느낌을 씹어서 먹은 듯한 신들린 배우가 있거나, 아니면 원작의 독특한 분위기를 굉장히 잘 살린 각본과 연출이 있어야 한다. 원작을 뛰어넘는 영화를 꼽으라면 개인적으로 '올드보이'(최민식 캐릭터는 길이 남을 것), 그리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스칼렛 오하라를 연기한 비비안 리도 좋고 남북전쟁 당시의 미국 상류층의 파티를 비롯한 생활상이 백미), '양들의 침묵'(지금도 소름이..)이 좋았다. (쓰다 보니 무슨 사이비 영화평론가 느낌)


  새벽 2시가 가까이 되어서야 끝난 영화. 보는 기가 차고 한숨만 나왔다. 원작을 뛰어넘을 거라고 기대도 안 했지만, 이건 너무 어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예를 들면 위노라 라이더가 군부정권의 경찰에게 끌려가 처절하게 고문을 받는 장면. 몇 번 세게 맞는 장면만 나오나중에 살아서 집에 돌아왔을 때가 가관이다. 극 중 아버지 (제레미 아이언스)가 이게 무슨 꼴이냐.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비통하게 소리치는데. 흠...보는 나로서는 '글쎄다' 싶었다. 위노라 라이더의 옷은 좀 더러워져있고 얼굴은 멍들거나 부운데 하나 없이 그냥 긁히고 지저분한 정도? 아무리 예쁜 얼굴이지만 너무 날로한 분장에 손이 오그라들었다. 책에서는 여주인공이 전기고문을 받고 개집과 같은 좁은 공간에서 독방 고문으로 죽다살아나는데...애교넘치는 스크래치라니. 그 뿐이 아니다. 다혈질의 소유자인 아버지는 고집불통에 어딘가 꽉 막힌 사나운 노인. 그런데 극 중 이 아버지 역할을 맡은 제레미 아이언스가 화를 내고 부인에게 싸대기를 날릴 때에는 그 소설 속에서 느껴지던 특유의 광기가 전혀 다. 심지어 원작에서는 싸대기를 맡고 아내의 이가 3개나 빠지게 되어 틀니를 끼게 되는데 영화에서는 입술에서 피가 좀 흐르는 정도? 광기어린 야만성이 느껴지는 장면은 단 한 컷도 나오지 않는다.     


  어릴 적에 본 80년대 오리지널 '전설의 고향'이 20년 뒤 리메이크된 '전설의 고향'보다 더 무서운 이유가 떠올랐다. 옛날 필름의 투박스러움, 생소한 무명 배우들의 못생겼지만 자연스러운 얼굴, 그래서 시골에서 정말 있었던 일일 것만 같은 그 기괴함. 그래서 '전설의 고향'은 아무리 리메이크를 해도 원작을 뛰어넘을 수 없다. 마찬가지이다. '영혼의 집'은 칠레를 배경으로 투박하고도 토속적으로 풀어나가야 했던 영화였다. 그런데 할리우드 초특급 배우들이 너무나 말끔하고 우아하게 연기를 하니 도무지 몰입이 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차라리 발리우드, 인도에서 찍었다면 더 잘 살렸을 것 같다. 끈적한 것은 굉장히 더 쩍쩍 달라붙게, 즐거운 것은 흥이 나게 그려내는데 발리우드 만 한 것이 없으니까.


이 영화는 캐스팅에 비해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는 아니다. 원작의 탄탄한 스토리가 워낙 잘 받쳐줘서 장대한 대서사시를 갖춘 영화로는 탄생을 했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 스토리를 잘 끌어나간 그뿐. 어쩐지 '운명의 딸'이 영화화되지 못한 이유도 알 것 같다. '영혼의 집'이 흥행을 했다면 아마 작가가 그 이후에 썼던 '운명의 딸'도 영화로 만들려고 여러 제작자들이 나서지 않았을까?


할리우드 대배우들의 리즈시절을 감상하는 재미 하나는 있었던 '영혼의 집'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삼삼했던 그 시절 사진을 마지막으로

이젠 이 남미 소설에서 좀 헤어 나와야겠다.


+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뽀송한 시절.






++


설렘과 기대에 충만해 찍었던

영화의 시작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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