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이상적인 '나'를 꿈꾸는 나에게

-2026 새해 소망

by 미숑로제




어릴 적, 얼굴은 안 이쁜데 손 매무새가 유난히 눈에 띄는 반 친구가 있었다. 그 아이가 필통을 무심하게 잡는 손 모양이 야무져 보였다. 나보다 손이 더 하옜던 것 같기도. 글씨를 더 잘 썼던 것 같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손톱 쪽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여리여리한 그 손으로 앞머리를 넘겨 귀에 꽂는 그 모습마저도 참 우아해 보였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는데, 그때부터였을까? 나에게 없는 것을 갈망하는 '시선' 하나가 생긴 것을 보니 아마 청소년기 초입이었을 테다.


그때부터 나는 뭔가를 동경하며 '언젠가는'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소망들을 마음속 구석구석에 숨겨놓는 버릇이 생겼다. 이 바람들은 너무 소박하기도 때로는 거창하기도 해서 남에게는 말하기는 다소 부끄러운 것 들이었다. 특히 '언젠가는'이라는 태그가 붙었으므로 시급하지 않아서 부담이 없이 맘껏 만들 수 있었다. 그 태그가 붙은 마음들은 대충 이러하다.


언젠가는 매사 손 매무새를 야무지게 행동해 봐야지

언젠가는 몸짱이 되어 바프를 찍어봐야지

언젠가는 정말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우아하게 이성적으로 말해야지

...


이 밖에도 참 많지만 열거하기 조차 민망해서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언젠가는'이라는 미래는 참 부담이 없다. 존재하지도 않는 그곳에 잠시 밀어두면 어쩐지 희망적인 기분에 때론 황홀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말은 대부분은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지금은 그 '언젠가는'으로 향해야만 하는 과정이거나 미완성 상태이라는 뜻이니까.


식단 조절해야 하는데... 운동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라는 말은 다소 김새는 말이다. 이 말은 현재에 대한 '불만'과 다가올 미래에 대해 미리 '후회'를 하는 것이라, 마치 마음속의 두 마리의 토끼를 잃어버리는 느낌이랄까. 야물지 못한 나 자신이 내가 만들어서 쌓아둔 '언젠가는' 태그가 붙은 소망에 허우적거리는 모습이다. 혹자는 발전하고자 하는 마음이라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나의 마음을 찬찬히 살펴보았을 때 나는 대부분 이런 소망들에게 좀 치이는 편이었다.(기 세고 잘 나가는 언니들한테 치이는 것도 아니고, 나 자신에게 치이는 거 실화인가요...)


인생의 시간을 돌아보면 나의 '언젠가는' 소망으로 뭔가를 행동한 적도 있었고, 때로는 그 소망을 외면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부분도 있었다. 인생은 역시 선형적으로 올곧게 전개가 된다기보다는 매우 예측불가하고 가변적이다.


그렇다면 내 삶의 남은 시간 속 나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까. 무엇인가를 '언젠가는' 해보겠다는 희망을 품고 그 목표를 향해 살아가도록 길들여진 내 인생. 내 뜻대로 될 때는 기뻐하고 안되면 속으로 실망하는 아직도 미숙한 나 자신을 어떻게 어르고 달래줘야 할지 고민이 될 때도 있다.


사실 '언젠가는' 태그는 죄가 없다. 이상적인 나를 꿈꾸는 나를 탓하지는 말자. 사람이 좀 더 나아지고자 하는 열망은 생존 본능에도 가까운 아주 고귀한 것이니까. 그것은 '꿈'이라는 더 아름답고 추상적인 말로 잘 포장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면 뭘까. 때로는 나의 의욕을 앗아가는 그것은 무엇일까?


내 마음을 요리조리 잘 살펴보니 그것은 '비교'였다. 사람이 가장 기분이 나쁠 때는 바로 '비교'를 당했을 때이다. 나는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를 비교를 하며 끊임없이 실망해 왔다.


'이상적인 나라면 지금 운동을 가야 했고, 하기로 했던 일을 이미 마쳤어야 했고, 지금 이렇게 흥분하지 않았을 테고...'


이런 것들이 나를 끊임없이 힘들게 하고, 때로는 나 자신을 외면하고 싶게 만든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 현상들의 근원은 사실 내가 나를 보는 '시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마치 내가 어릴 적 손 끝이 이쁜 여자아이의 손을 동경하며 바라보았던 그 '시선'.


자, 그러면. 그 '시선'을 지금의 나한테 돌려보면 어떨까. 좀 간지럽지만 다정하고 동경하는 마음도 적잖이 담아 '현실의 나'를 잘 봐주면 어떨까. 이상적인 나에 비해서는 많이 부족하고 철없고 비이성적인 경우도 참 많지만 그래도 내가 이번 생애에는 데리고 살아야 하는 몸이고 마음이니 좀 더 주인공 봐주듯이 봐주면 어떠냐고... 설날을 맞이해 덕담 삼아 스스로에게 되뇌어본다.


이게 무슨 저스틴 비버의 'Love yourself' 같은 뜬금없는 결론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오늘의 스스로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이러하다.


'그린 파파야의 향기'라는 영화의 여자주인공이 일상생활 속에서 무심코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은 적이 있었다. 그녀가 하는 행동에 내 관심을 듬뿍 주었던 것처럼, 내가 하는 행동에 나의 의식과 마음을 실어봐야겠다. 물 한잔 마시는 것. 샤워를 하며 몸을 씻는 나의 손 매무새에 조금씩. 어릴 적 손 매무새가 예뻤던 그 아이를 바라보았던 그 시선들은 이제 나에게 모두.


이상적인 내가 아니어도


내 모습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지금의 아름다운 나'로 여물기를...


올해 새해 소망을 뒤늦게 빌어본다.



+

구독자님들 안녕하세요?

까치 까치~ 설날입니다.

새해엔 스스로에게 따뜻한 복을 많이 주는 한 해 보내시길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똥손에서 금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