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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May 17. 2016

엄마 아파서 내가 설거지 했어

2016. 5. 16



몸이 녹는다


                                                                                 

 어쩐지 주말 내내 초콜릿에 손이 가더라니 마법에 걸렸다. 하품에 눈물로 눈가는 계속 촉촉하고, 하루 종일 사우나 징하게 하고 나온 것처럼 노곤 노곤하다. 배도 많이 아픈 것도 아닌 것이 쌀쌀한 게 기분이 안 좋다. 그저 가만히 누워있고만 싶었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날이었다.


 퇴근하자마자 유치원, 어린이집에서 차례로 아이들 받아서 집으로 왔다. (중간에 아이 치과도 들렸다) 좀 쉬려고 했더니 오자마자 나가자고 조른다. 자전거 태워서 나가보니 저녁이 되면서 무척 쌀쌀해졌다. 아무래도 아이들 설득해서 빨리 들어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내 코에서 물이 조금씩 생기는 것을 느꼈을 때다. 봄인데 정말이지 너무 추웠다. 아이들에게 내 콧물을 보여주며 '엄마 지금 아파' 했더니 들어가기 싫으면서도 어느 정도 수궁을 하는 분위기다. 애들이 마음의 결정을 못하는 그 틈을 타서 집으로 곧장 들어왔다. (육아는 눈치와 타이밍!)  


  집에 들어오자마자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라 시리얼을 타 줬다. 잽싸게 담요를 꺼냈다. 거실에 있던 유아 소파에 비스듬히 앉은 듯 누웠다. (추성훈이 선전하는 바디프랜드가 필요없다. 피콜리노 유아소파 하나면! 방법은 그림 참조) 담요를 덮고 눈을 살짝 감으니, 몸이 사르르륵 녹는다. 이건 잠이 쏟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마취를 당한 것 같다. 그냥 이대로만 딱 20분만 내버려두면 좋겠다 싶었다. 으... 흠뻑 잠에 빠져든다. 딱 좋다.




깜빡 잠이 들었나?



 시간이 분명 좀 흘렀다. 익숙한 물소리가 들린다. 아들이 부엌 싱크대에서 물을 틀어놓고 뭔가 하고 있다. 딸내미는 식탁 옆에 서서 노래에 맞춰 춤 삼매경에 빠져있다.


"엄마. 아프다고 해서 내가 설거지 했어!"  아들이 싱크대에 서서 말했다.


"어... 정말?" 


"응 내가 다 해줄게. 근데 큰 거 두개는 못했어.(프라이팬이랑 설거지통)"


"그냥 둬. 고맙네... 아들이 설거지도 다하고...."


아직 몽롱했다. 멍 때리며 딸내미 쪽을 봤다. ABC송을 틀어놓고 맛깔스러운 율동을 구사하고 있었다. 딸내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영혼은 없지만 제법 과한 표정으로 미소를 날려줬다.(대한항공 승무원도 울고 갈 엄마의 서비스 마인드) 그러자 조금 정신이 든다. 갑자기 아들이 싱크대에 물을 너무 오래 틀어놓은 거 아닌가 싶다. 그래, 슬슬 제동을 걸어야겠다.  


'야 근데, 너 퐁퐁으로 닦긴 한 거야?' 하고 물어보려는 순간이었다.




 누구세요? 



"엄마 왜 그렇게 앉아있어? 의자 없어서 그래? 엄마 내가 의자 갖다 줄게."


"... 어?" 


'재가 뭐라고 하는 거야'하는 사이 

저쪽 방에서 녀석이 책상 의자를 번쩍 들어서 낑낑대고 들고 온다.


"엄마 여기 앉아"


내가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소용없다. 

뭔가 격하게 삘을 받은 건지, 

오늘 유치원 선생님이 뭘 가르치신 건지,


우리 집에 웬 사람 좋은 청년 한 명이 들어와 있었다.




단 몇 분간이긴 했지만, 

고단했던 하루,

나는 아들의 넓은 가슴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아, 나중에 아까워서 얘 장가는 어떻게 보내나...               


                                - 한 가닥 할 소지가 다분한 예비 시어머니 -            (네, 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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