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숑로제 Apr 25. 2016

'Made in 대구'의 가족들이 모이다.

2016. 4.25


                                                                      

나, 여동생 그리고 남동생의 출생 비화들


사실 나에겐 내가 얼굴도 못 본 오빠가 있었다고 한다. 

시골 유지의 딸이었던 우리 엄마는 아빠와 결혼을 하면서 고생길에 입문하셨다, 아빠의 어머니가 (나에겐 할머니)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서 한창 맞선 시장에서 주가를 올리던 아빠에게 빨간불이 켜졌다고 한다. 아빠는 사형제에 장남이었는데 당시 중학생이 었던 막대 동생의 도시락을 싸는 것부터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다 필요 없고 사람 하나만 똑똑하면 된다'고 굳게 믿으신 엄마가 남자 땀 냄새가 풀풀 나는 집안에 들어가셨으니, 그것은 과히 맏며느리의 배포를 이미 타고나셨다고 볼 수 있겠다. 2년 동안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시아버지와 도무지 철 들 생각을 안 하는 시동생들과 살면서 우리 엄마는 가까스로 첫 임신을 하셨다. 세탁기가 없어 찬 물로 산더미 같은 빨래를 우직하게 해냈던 엄마는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고는 생각을 못했다. 열 달을 꽉 채워 정상적으로 분만을 하였으나 아이는 탯줄로 목이 감겨 태어났다.

'스트레스'라는 단어조차 생소한 시절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자유와 해방을 상징하는 딸이다. 

사산 후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아빠는 직장에 파견 신청을 냈고, 둘은 대구의 낡은 주공아파트에서 어찌 보면 첫 신혼집을 차리셨다.  새로운 집에 채워 넣을 살림살이를 샀던 이야기는 내가 여태껏 살면서 100번 넘게 들은 것 같은데(물론 세어보진 않았지만 그 정도의 느낌으로 많이 들었다.), 그  얘기를 하실 때면 기분이 좋을 때 머리를 좌우로 짧고 빠르게 떨며 웃는 엄마 특유의 제스처가 자주 나오곤 했다. 내가 바로 그 광명의 땅 대구에서 태어난, 'made in 대구'이다. 원래 아들을 엄청 낳고 싶었던 엄마였어도 4kg에 육박하는 우량아가 건강하게 태어나준 것만으로 감사했다. 엄마는 산후 조리를 채 하기도 전에 각종 여성지나 각종 어르신들의 비법을 수집해 '아들 낳는 방법'에 몰두했다. 자궁을 알칼리성으로 만들어준다는 감자 다량 섭취부터, 베이킹소다를 이용한 각종 요령들을 신속하게 실천하시며 출산 8개월 만에 두번째 임신에 성공하셨다. (우리 엄마는 내 신혼여행 출발 전날 베이킹 소다를 꽉 채워 넣은 한약 소화제 통을 은밀하게 건네셨다.) 본인의 노력에 당연 보상받으리라 믿고 아들을 확신하셨다고 한다. 아빠까지 한 술 더 떠 남자 이름을 준비하셨다. 하지만 유난히 뽀얗고 눈이 큰 내 여동생이 나왔고,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엄마는 내 여동생을 등지고 누워 미역국도 마다했다 한다. 연이은 출산에 엄마는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졌다. 아빠는 딸 둘로 족하다고 했다지만 엄마는 세 번째 기회가 남아있음에 안도했다. 그간 노력이 부족했음을 자책한 엄마는 이번엔 아들을 낳게 해 준다는 비싼 한약도 복용하시면서 차분하게 다시 아들 만들기에 집중하셨고, 내 여동생이 3살이 되기도 채 전에 또 아이를 가지셨다. 엄마는 지금도 말한다. 내 남동생을 낳았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고 말이다.



 

어른이 되어 모이다.
꽉 찬 공간, 펄떡거리는 분위기.


 뿔뿔이 흩어져 다른 도시에서 살고 있는 내 동생 가족들이 우리 집에 모였다. 

넓지 않은 아파트에 11명이 있으면, 마치 잠자고 있던 나의 집이 아주 가쁘게 숨을 쉬는 유기체가 깨어나는 것 같다. 여동생은 나처럼 아들, 딸을 같은 순서대로 두었고, 남동생은 딸 하나만 있다. 계속 젖어있는 화장실 바닥, 화장실의 눅눅한 습기, 수건걸이에는 꽤 많은 수건들이 제멋대로 척척하게 걸려있다. 짐가방은 벽 한구석에 입을 벌리고 있고 의자란 모든 의자에는 누군가의 옷들이 있다. 장난감은 평소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어질러져 있고 (때로는 뿌려져 있기도 한다) 컵이나 스푼이 여러 개가 나와있다. 우리 아이들 중 누군가는 계속 울고, 어른들은 대화를 하다 아이 울음소리가 나면 내 아이인가 싶어 순간 긴장한다. 다용도실 세탁기 옆 빨래는 수북하고, 재활용 쓰레기는 마구 쌓여있다. 끊임없이 아이들은 배고프고, 어른들은 서로의 대화가 고프다. 


 아이들을 신속히 재우고 치킨 두 마리에 맥주를 세팅하니 12시 즈음. 본격적인 우리의 밤이 시작되었다. 이사 갈 집의 리모델링에 여념이 없는 여동생의 열정은 우리를 감탄하게 했다.  똑 부러지는 여동생의 인테리어 아이디어와 각종 시행착오들을 듣고 있자니 어쩐지 리모델링을 할 필요 없는 꼭 새 아파트로 이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긴 이야기를 들으며 다들 몰입한 나머지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매일 여의도 한복판에 위치한 임직원 어린이집으로  엄마와 함께 출근한다는 내 조카의 이야기돋 듣고, 서울에서 아이를 키우는 남동생 부인이 마치 육아 전사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육아 전쟁을 잘 치러내는 툼레이더의 '안젤리나 졸리'였다. (안젤리나 졸리의 입술과 같이 그녀의 입술도 매력적이다) 우리는 새벽 5시가 돼서야 대충 치우고 잠에 들었는데, 그 이유는 여동생 딸아이가 깨어났기 때문이다. 덕분에 각자의 자녀들이 곧 '상쾌한 아침'을 시작할까 무척 불안해하며 잠들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모두들 비몽사몽 교대로 쪽잠을 자며 늘어지는 일요일을 보냈다. 

주말 내내 미세먼지와 황사가 활약을 해준 덕분에,

뭔가 특별한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가 함께 한 일이라곤 아침에 라면 끓여먹고, 

딸아이 생일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고,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밖으로 오늘 처음 나갔다 온 게 전부다. 

(서울에 사는 남동생 가족은 점심때 출발했다) 


여유롭고 낮잠이 듬뿍 곁들여진 일요일이 끝나간다.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내일이면 다들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푹 빠져서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이제 막 전원을 끈 시커먼 TV 화면처럼,

꿀렁꿀렁 대던 우리 집이 다시 슬그머니 깊은 잠을 잔다.


작가의 이전글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